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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아이디어를 단톡방에 올렸다 '드라이브 스루' 진단법은 그렇게 시작됐다 조선일보 김미리 기자

Marine Kim 2020. 5. 2. 14:26
입력 2020.05.02 03:00 | 수정 2020.05.02 09:55

[아무튼, 주말_김미리 기자의 1미리]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코로나 1번 확진자, 첫 메르스 의심환자 진료… '바이러스 수문장'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를 고안한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그는 “한국이 코로나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던 데는 40대 젊은 의료진의 순발력과 역발상이 있었다”고 했다.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를 고안한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그는 “한국이 코로나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던 데는 40대 젊은 의료진의 순발력과 역발상이 있었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사태가 심상치 않아요. 빨리 대규모 진단 방안을 만들어야겠어요."

지난 2월 20일 밤 11시 30분, 대한감염학회 신종감염병위원회 정책태스크포스(TF) 단톡방에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SOS를 쳤다. 이 교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수퍼 전파자인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후 패닉에 빠진 대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밖에서 해야 해, 밖! 감염을 막으려면.' 메시지를 보자마자 김진용(45)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온종일 의심 환자가 몰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동차 아이콘을 하나씩 붙여 파워포인트로 만든 개념도를 단톡방에 올린 시각은 21일 오전 3시 53분. 코로나 관련 최고의 한국산 수출품으로 히트 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DT) 선별진료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저는 밑그림을 그렸을 뿐입니다. 다들 합심해 빨리 대응한 덕분이죠." 지난달 20일 인천 송림동 인천의료원 6층 감염관리실에서 만난 김 과장은 쑥스러워했다. 사무실 바로 옆은 확진자가 입원한 국가지정 음압치료 병상. 레벨D 보호복, 고글, 이중 장갑으로 전신을 감싼 간호사들이 오가는 전장(戰場)의 한가운데서 드라이브 스루의 비밀을 들었다.

IT 마니아 의사의 역발상

―각국에서 드라이브 스루를 벤치마킹했어요. 지식재산권은 갖고 있습니까?

"안 그래도 동료가 특허등록을 하라던데 지난 3월 동료 의료진과 함께 대한의학회지(JKMS)에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관련 논문을 내면서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어떤 점이 적중했다고 봅니까.

"사생활 보장과 접근성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만희 신천지 교주가 몰래 와서 드라이브 스루 검사 받는 걸 보고 사생활 보장은 확실하구나 싶었습니다(웃음)."

―아이디어를 어디서 착안했습니까.

"2년 전 이재갑 교수와 생물 테러 때 세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예방적 항생제를 배포하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드라이브 스루 배포를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2010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인플루엔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비해 드라이브 스루로 진단과 백신을 배포하는 모델을 논문으로 발표한 게 있어서 힌트를 얻었어요. 차이라면 스탠퍼드 논문은 치료 백신이 있는 경우였고, 코로나 19는 백신이 없는 고위험 병원체를 진단해야 한다는 거였죠. 전자가 아이디어 차원이었다면 우리는 현실에 적용했고요."

―4시간 반 만에 뚝딱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틀 뒤 칠곡 경북대병원에 진료소가 개설됐어요. 엄청난 속도였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안(案)을 공개한 다음 날 권기태 칠곡 경북대병원 감염관리실장님이 연락해 몇 가지 물어보고 이를 토대로 만 하루 만인 23일 진료소를 개소했습니다. 대응을 무척 빨리 하셨죠."

지난 2월 대구 영남대병원에 설치된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지난 2월 대구 영남대병원에 설치된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연합뉴스
―순발력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TF가 40대 초중반 의료진으로 구성된 싱크탱크입니다. 의학계에서 주니어에 해당하는 연령대 의사들이 이렇게 주축이 돼 움직인 건 이례적이에요. 기존 전통적인 감염병은 경험 많은 원로가 대응하기 좋지만, 신종 감염병에는 경험치가 통하지 않습니다. 497(40대, 90년대 학번, 1970년대생) 세대 의료진의 역발상과 순발력이 통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요?

"사태 초반 위원회 윗사람들은 회의실에서 도시락 먹으면서 대책회의를 하자고 했습니다. 40대 의사들은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해 줌, 스카이프, 카톡방으로 실시간 대응을 했어요. 자택 자가 격리 매뉴얼도 단톡으로 소통하며 몇 시간 만에 만들었고요."

―평소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많이 썼나요.

"새 기기와 서비스에 호기심이 많아요. 병원과 집(과천) 근처에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가 생겼을 때 바로 가서 해봤어요. 이런 경험이 드라이브 스루 아이디어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수도 있겠네요."

―얼리 어댑터인가 봅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광이었어요. 중학교 때 고향(전남 함평) 읍내에 컴퓨터 학원이 처음 생겼는데 어머니가 선뜻 보내주셨어요. 광주광역시에서 고등학교 다닐 땐 광주 반도상가에 가서 컴퓨터 부품 사서 조립하는 게 취미였고요."

그가 프로젝터 스크린을 펼쳐 기자에게 구글 드라이브 계정을 열어 보여줬다. 입원 환자 기록이 담긴 문서, 구글 포토로 연동한 음압 병동 사진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됐다. 작은 '코로나 실시간 상황판' 같았다.

“2014년 국내 첫 에볼라 의심 환자(나이지리아인)가 입원했는데 감염 위험 때문에 종이를 들고 갈 수 없어 애를 먹었어요. 이후 병실마다 아이패드를 배치하고 구글 드라이브로 연동해 병실 밖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했어요. IT 마니아의 잡스러운 취미를 진료 현장에 다 써먹고 있어요(웃음).”

김진용 과장은 “코로나 19는 너무 완벽해서 무서운 바이러스”라며 “사람들이 대충 눈감고 덮어 놓은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든다”고 했다.
김진용 과장은 “코로나 19는 너무 완벽해서 무서운 바이러스”라며 “사람들이 대충 눈감고 덮어 놓은 가장 취약한 부분을 파고든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관문 도시 인천의 ‘바이러스 수문장’

공항과 항만이 있는 관문 도시 인천은 요즘 같은 때엔 ‘바이러스 관문’이다. 인천의료원은 인천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공공의료기관. 공항 검역소에서 이상 증세를 보인 환자들이 직행하는 병원이다. 이곳 감염내과를 이끄는 이가 김 과장이다. ‘해외 유입 바이러스를 막는 수문장’인 셈이다.

―국내 1번 확진자 주치의였지요?

“1월 19일 일요일 오후 3시였어요. 아이들(중1·초3)하고 중국집에서 밥 먹고 있다가 인천시에서 의심 환자가 생겼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인천공항에서 환승해 우한에서 일본으로 가는 중국인 관광객(여·35)이었어요. 동행한 아이, 시어머니는 공항에 있다가 우한으로 돌아가고 혼자 병원에 입원했어요. 질병관리본부로 검체를 보냈는데 다음 날 확진 판정이 났어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올 것이 왔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열이 38도로 좀 높았지만 증상은 없었는데 사흘쯤 지나니 기침이 심해졌어요. ‘일부러 폐렴을 숨기고 바이러스를 퍼뜨리려고 들어온 것 아니냐’는 악담도 쏟아졌어요. 저는 의업(醫業·의사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자고 생각했습니다. 환자 입장에선 낯선 타국, 그것도 음압 병동에 갇혀 있으니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환자가 100%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대화는 어떻게 했나요.

“환자가 영어를 거의 못해 아이패드에 구글 번역기를 깔아 대화했어요. 퇴원할 무렵 그 친구가 번역기 돌려 영어로 쓴 손 편지를 건네주더군요.” 편지엔 ‘의자인심(醫者仁心)’이란 표현이 있었다. ‘병을 고쳐주는 의사의 어진 마음’에 감사를 표했다. 편지 원본은 규정에 따라 폐기했고 사진 파일로만 남았다.

SUPER SUV, 트래버스

―2013년 8월 국내 첫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 환자 대응도 했다고요?

“국내 신종 감염병 첫 대응이었습니다. 의심 환자도 확진 환자와 똑같이 다뤄야 하거든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귀국한 한국 근로자 두 명이 인천공항에서 우리 병원으로 왔습니다. 간호사하고 저하고 둘이서 떨면서 병실에 들어갔어요. 결국 음성 판정이 났지만요.”

2015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도 현장을 지켰다. 그때 큰아이 반 학부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 아빠, ○○이 위험한데 학교 다녀도 괜찮아요?”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이번에도 언론 인터뷰를 최대한 미뤘다”고 했다.

―1번 확진자가 생기고 의료진이 불안해했겠습니다.

“저희 감염내과 식구들에게 말했어요. 만에 하나 우리 의료진이 감염된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겠다고.” 겉으론 대범한 척했지만 흔들린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우리 간호사들이 위험수당을 못 받습니다. 부당한 처우에 화가 나 관둘까도 생각했는데 전쟁 중 지휘관이 관둘 수 없기에 맘을 다잡았습니다.”

김진용 과장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4시간 반 만에 만든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개념도. 거의 그대로 논문에 실렸다.
김진용 과장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4시간 반 만에 만든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개념도. 거의 그대로 논문에 실렸다.
비주류의 힘

학연·지연 뿌리 깊은 의료계에서 그는 ‘비주류’다. 조선대 의대를 졸업하고 가천대 길병원에서 수련의·전공의를 거쳐 2012년부터 인천의료원에서 일했다.

―비주류가 콤플렉스는 아니었나요?

“오히려 힘이 됐어요. 드라이브 스루의 핵심인 ‘달리 생각하는 법’도 그 덕에 기른 것 같고요.”

―장점으로 승화했다는 말인가요?

“과거 해외 학회에 가보면 세미나 끝나고 라인별로 삼삼오오 나뉘어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더군요. 저만 혼자 다녔는데 오히려 생각할 여유가 생겼어요. 주류 라인에 있으면 참신한 아이디어 내기도 어렵습니다. 눈치 봐야 하니까. 저는 다른 학교 교수님도 다 내 스승이다 생각하고 좋은 것만 받아들이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비주류가 준 자유인가요.

“신종 감염병 대응에선 ‘열린 마음’이 필수예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타분야 전문가와 협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대체로 배타적입니다. 가진 것만으로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으니, 자기 영역을 침범받기 싫어해요.”

―드라이브 스루 논문 공동 저자에 성민기 세종대 건축공학과 교수 등 타분야 전문가가 있더라고요.

“2013년 ‘공중보건 위기 대응 사업단’을 하면서 단장이었던 한양대 예방의학교실 최보율 교수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수학, 예방의학, 통계학,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계시는 분들과 협업했어요.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인천의료원도 큰 병원은 아닌데요.

“여긴 도시 환자와 시골 환자가 섞여 있어요. 다양한 환자를 접할 수 있다는 건 의사로서 축복입니다. 서울의 대형병원은 환자 편식이 심해요. 돈 있는 부자 환자, 중증 환자가 전국에서 모여듭니다. 비록 저는 돈 많이 못 버는 월급쟁이 의사지만 돈을 떠나 소신껏 진료할 수 있어 보람 있어요. 환자들이 더 잘 압니다. 이 의사가 나를 돈벌이로 생각하는지, 진짜 나를 위하는지.”

―바이러스와 등 맞댄 인생입니다.

“가끔 제 삶이 바이러스와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바이러스는 평소엔 그냥 단백질 조각인데 사람의 수용체에 딱 맞아떨어졌을 때 왕성하게 증식해요. 저도 평소엔 지방 의료원에서 조용히 있는데, 신종 감염병이 창궐하면 바이러스가 수용체를 만난 것처럼 폭발적으로 일해요(웃음).”

―감염내과는 어떻게 지원했나요.

“내과가 꾸밈이 없는 과예요. 제일 생명에 근접해 있죠. 사망진단서 가장 많이 쓰는 과이지요. 그중 감염내과는 규모가 아주 작은 과예요. 전국에 전문의가 250명 정도밖에 없어요. 전공의 2년 차에 감염내과 주치의를 했는데 교수님 외래 차트를 보니 ‘치료 종료’라고 적혀 있었어요. 내과 진료에서 호전은 있어도 완치는 거의 없거든요. 의사인데 병을 완치시킨다? 멋져 보였습니다.”

―적성에 맞습니까.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서 과거 대학에서 서체학을 청강한 경험을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이 없었다면 애플의 아름다운 폰트가 안 나왔을 거라며, 점이 결국 연결된다고 했죠. 본과 때 유급한 적이 있어요. 이후 맘잡고 두 과목을 열심히 했는데 약리학, 미생물학이었어요. 그게 감염내과의 뼈대거든요. 재미 느끼는 일에 몰두하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1월 중순 김 과장이 보호복을 입고 국내 1번 확진자의 검체를 채취하는 모습.
지난 1월 중순 김 과장이 보호복을 입고 국내 1번 확진자의 검체를 채취하는 모습. /김진용
바이러스는 정직하다

―코로나 19를 현장에서 보니 어떤가요.

“완벽해서 무서운 바이러스입니다. 잠복기가 긴데 감염 초반 3~5일에 바이러스가 집중적으로 나와요. 이때 사람들이 증상이 없어 감염된 줄 모르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집니다. ‘걸어 다니는 폐렴’이라고들 하는 이유죠.”

―영악하네요.

“바이러스는 정직합니다. 사람들이 대충 눈감고 덮어 놓은 가장 취약한 부분을 귀신같이 파고듭니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청도 대남병원, 노인요양병원이 그렇죠. 또 불편부당(不偏不黨), 공평합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찰스 왕세자도 똑같이 대합니다.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리는 비굴한 인간들 보란 듯이. 슬슬 리오픈(재개) 얘기도 나오는데 대충 마무리하면 코로나가 봐주지 않을 겁니다. 미국 감염병 학자들이 처칠의 명언을 인용해 경고했어요. 지금은 ‘끝의 시작’이 아니라 ‘시작의 끝’이라고.”

그의 페이스북엔 ‘Respond to COVID- 19, Prepare for COVID-2n’란 글이 있다. ‘코로나 19에 대응하면서 코로나 2n을 준비한다’는 얘기다. ‘2n’은 2020~ 2029년 사이 언젠가를 뜻한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2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 19가 왔어요. 주기가 점점 짧아져요. 영화 어벤져스에서 타노스가 손가락 튕기면 인류 절반이 먼지가 돼 사라지는 것처럼 강력한 감염병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어요.”

―비관론자인가요.

“아내(산부인과 의사)가 저더러 감염내과가 딱이라고 합니다. 보수적이고 고지식하다고(웃음). 감염병엔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의 카톡 프로필엔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진이 걸려 있다. “코로나를 정복하고 이 싸움이 끝나는 날 사진을 바꾸겠다”고 했다. 사진 아래 영화 ‘인터스텔라’ 명대사에서 따온 문구가 그의 다짐을 대신했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우린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1/20200501014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