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년 된 태안 폐가의 벽지 뜯었더니, 조선시대 한시가…
입력 2020.07.23 18:56 | 수정 2020.07.23 22:19
태안 신진도의 177년 된 건물
19세기 수군 역사와 시대상 보여줘
침몰 사고 잦았던 안흥량 바다 묘사도
‘사람이 계수나무 꽃 떨어지듯(바다에 빠지니)…’
충남 태안 신진도의 177년 된 폐가(廢家) 벽지에서 다수의 한시(漢詩)가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조선 수군의 군적부가 발견돼 화제를 모았던 폐가에서 수거된 벽지를 해체했더니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한시가 적혀 있었다”고 23일 밝혔다.
태안 폐가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한시.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는 내용이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발견된 시구는 이 집이 19세기 태안 안흥진 수군(水軍)의 물자 관리소였음을 보여준다.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는 시가 대표적이다. 1843년 7월 16일 집을 짓고 이듬해 잔치를 열었음을 알 수 있다. ‘군포(軍布)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라는 구절도 있다. 군포는 군복무를 직접 하지 않는 병역 의무자가 그 대가로 납부하던 삼베나 무명을 뜻한다. 진호신 연구관은 “당시 삼베와 무명을 내는 게 원칙이었는데 곡식으로도 거뒀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란 구절이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류가 빨라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잦았던 태안 앞바다 안흥량에서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시구도 나왔다. ‘사람이 계수나무 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 당나라 시인 왕유의 오언절구 시 ‘조명간(鳥鳴澗)’ 형식을 빌려 능숙한 초서체로 썼다. 진 연구관은 “왕유의 시 원문은 ‘사람은 한가하고 계수나무 꽃이 떨어진다[人閑桂花落]’인데, 한 자만 다르게 써서 ‘사람이 계수나무 꽃 지듯 떨어진다’는 의미로 바꾸었다”며 “수많은 사람이 안흥량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능숙한 초서체로 '사람이 계수나무 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라고 썼다. 수많은 사람이 안흥량 앞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실제로 ‘승정원일기’에는 “안흥량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것이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을 만나 사고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1667년 현종 8년)는 내용이 전한다. 고려를 찾은 송나라 문인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안흥량을 지나던 순간을 이렇게 썼다. “파도 앞 돌부리 하나가 바다로 들어가 있어서 물과 부딪쳐 파도를 돌려보내는데, 놀란 여울물이 들끓어 오르는 것이 천만 가지로 기괴하여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조류가 빨라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잦았던 태안 안흥량 앞바다의 관장목.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이 집에 거주했던 후손 최인복씨 증언에 의하면,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이며, 260평 대지에 방 5칸, 광 6칸, 부엌 3칸, 소 외양간 1칸, 말 우리 등을 갖추고 있었다. 연구소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인근 초등학교 주변으로 조선시대 건물로 추정되는 전통 기왓집이 많이 남아있었다”며 “수군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보여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18세기 조선 정조 때의 수군진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소는 24일 오후 1시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하는 ‘제2회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대회에서 이 유물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3/20200723041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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