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횡성 성당은 화강석 석조 건물로 전쟁 직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 서양 로마네

Marine Kim 2015. 9. 8. 19:26
1955년 맥마흔 신부가 미군의 도움을 받아 전쟁 때 파손된 성당을 신축하여 이듬해 봉헌식을 거행했다. 2008년 등록문화재 제371호로 지정되었다.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읍상리 387-1 소재. 1930년 3월 20일 풍수원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천지의 모후.
 
횡성 지역에는 1830년대에 이미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에는 강원도에서 가장 교세가 성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신자들이 체포되어 교우촌은 와해되었고, 다시 공소가 설정된 1880년대 이후에는 풍수원 본당의 관할하에 있다가 1930년 3월 풍수원 본당 2대 주임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에 의해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정규하 신부는 횡성 본당을 위해 대지와 건물을 마련해 두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양덕환(梁德煥) 안드레아 신부는 그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본당 설정 당시 신자수는 약 400명이었고, 관할 지역은 횡성군의 횡성면 · 우천면 · 둔내면 · 청일면 · 갑천면 · 공근면과 서원면의 금대리 · 유현 3리, 원주군의 고산리 · 영산리였으며, 관할 공소는 모두 17개소였다. 설립 당시부터 횡성 본당은 비교적 넓은 지역을 담당하였는데, 현재도 교구 내에서 가장 많은 공소를 관할하며 공소 사목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횡성 지역에는 1830년대에 이미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강원도에서 가장 교세가 성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체포되어 교우촌이 와해되고 다시 공소가 설정된 1880년대 이후에는 풍수원 본당 관할이 되었습니다. 1930년 3월 풍수원 본당 2대 주임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에 의해 본당으로 승격되었는데, 설정 당시 신자수는 약 400명이었고, 관할 공소는 모두 17개소였습니다.

초대 주임 양덕환 신부는 본당 설립 3년 후인 1933년 5월 현 사제관 자리의 초가집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개축하고, 4년 과정의 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939년 춘천 지목구의 신설로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사목을 담당했습니다. 맥마흔 신부는 1955년 미군의 도움을 받아 전쟁 때 파손된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해 이듬해 5월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1969년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로 소속이 바뀐 횡성 성당은 2000년 10월 본당 설정 70주년을 맞이하여 교육 복지관을 준공했고, 2002년 9월에는 성당 뒷동산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습니다.

횡성 성당은 화강석 석조 건물로 전쟁 직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 서양 로마네스크 양식을 간략화하고 성당 가운데 종탑과 함께 주출입구를 배치했습니다.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수입한 종과 천장 상부 목조 트러스 구조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사각형 평면 위에 팔각형 공간을 설치한 뒤 그 위에 돔을 얹어 구성한 종탑이 매우 특징적입니다. 내부 바닥은 마루이며, 1984년 제대 양측 창에 유리화를 설치했습니다. 건물 폭과 높이에 비해 길이가 매우 길며, 천장이 가운데는 평평하고 양쪽으로 경사진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부속 건물에는 변화가 많았으나 본당의 외형은 비교적 잘 보존되었습니다. 2008년 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71호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