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갈곡리 공소는 옛날에는 칡이 많던 곳이었는지 칡의 계곡(갈곡 : 葛谷)

Marine Kim 2015. 9. 8. 19:28
도로변의 공소 표지석.의정부에서 서북쪽으로 20km, 문산에서 동쪽으로 12km 지점에 있는 갈곡리(葛谷里) 공소는 옛날에는 칡이 많던 곳이었는지 칡의 계곡(갈곡 : 葛谷)으로 불리었고 순수 우리말로 칡울(칡의 마을)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원래는 ‘칠울 공소’라고 불렸다. 이 마을이야말로 파주 지방 천주교 신앙의 요람이다. 이 마을은 6.25 전만 해도 수풀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험한 지대였고, 동쪽에 있는 커다란 고개를 넘으려면 20여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하여 ‘스르내미’(스물 넘어) 고개라 불렸다.
 
이렇게 험한 첩첩산중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10년 전이다. 홍천과 인근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처음에는 칠울에서 남동쪽 6km 떨어져 있는 ‘우골’(현 우고리, 우묵하게 들어간 골짜기)이라는 곳에 정착하여 살다가 5년째 되던 해인 1896년 김근배 바오로, 김연배 프란치스코, 박 베드로 가족이 이곳 칠울로 이주 정착하게 된다.
 
이로써 구한말 갈곡리와 신암리(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일대에 박해를 피해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옹기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던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곳 칠울에 정착하게 된 동기는 칠울과 우고리 고령 등 인근에 옹기그릇을 만드는 점토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지며, 성당 앞마당도 옹기를 굽던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갈곡리 공소는 옛날에는 칡이 많던 곳이었는지 칡의 계곡(갈곡 : 葛谷)으로 불리었고 순수 우리말로 칡울(칡의 마을)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원래는 ‘칠울 공소’라고 불렸습니다. 홍천과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칠울 인근 우골에 정착해 살다가 1896년 김근배 바오로, 김연배 프란치스코, 박 베드로 가족이 칠울로 이주하면서 구한말 갈곡리와 신암리 일대에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옹기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던 교우촌이 형성되어 파주 지방 천주교 신앙의 요람으로 성장했습니다.

1898년 약현(현 중림동약현) 본당 칠울 공소로 설립되어, 1901년 송도(개성) 본당 공소, 1923년 신암리 본당 공소, 1934년 덕정리 본당 공소, 1947년 의정부 본당 공소, 1963년 법원리 본당 공소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51년 6.25 전쟁 중 1936년에 마련한 공소 강당이 소실되자 당시 미군 해병대 군종이었던 에드워드 마 신부의 도움을 받아 1955년 현재의 의정부 주교좌성당을 본뜬 공소 성당을 건립하였습니다. 2008년에는 기존의 낡은 칠울 강당을 개보수하여 단체 피정이나 연수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