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파병 이야기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 [23]
●駐韓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경제성장의 종자돈 마련
軍 수뇌부와 시민들이 부산항에서 월남으로 파병되는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駐韓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경제성장의 종자돈 마련
월남 파병을 결정한 朴正熙 정부가 염두에 둔 두 가지 전략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파병을 통해 국가안보를 확실히 하고, 둘째는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는다는 것이었다.
월남 양민학살 주장은 게릴라戰이라는 월남전의 특징을 무시한 것
李春根
1952년 서울 출생. 연세大 정외과·同 대학원 졸업. 美 텍사스州立大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역임. 現 자유기업원 부원장. 가나와 비견되던 대한민국
1960년대 초까지도 한국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교되는 나라였다.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는 대한민국이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선진국이었다. 그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멤버로 인정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월남전 참전이었다.
건국한 지 20년이 되지 않는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현대국가의 가장 돋보이는 능력인 「전쟁 수행력」을 과시했다.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혁혁한 戰功(전공)은 세계인들로 하여금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다시 확인해 보려는 호기심과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전쟁을 한다는 일이 좋은 일은 아니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월남전에 참전한 것은 당시 국제정치 상황과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고, 한국군은 나라의 부름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임했던 것이다.
한국은 6·25 당시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는 북한의 침략으로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지만,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지원으로 겨우 국가의 목숨을 부지했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은 한국전쟁에서 우리가 받았던 도움에 대한 빚을 갚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월남전 역시 국제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한 싸움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전쟁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운 代價(대가)로 받은 월급을 꼬박꼬박 한국으로 送金(송금)함으로써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되는 종자돈의 역할을 했다.
월남전 참전은 巨視的(거시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이 성숙한 국가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은 것과 같은 계기가 되었다.
월남전은 美帝의 침략전쟁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는 월남 전쟁에 관해 왜곡·과장 및 악의적으로 오도된 說(설)들이 만연되어 있다. 『한국군은 美帝의 용병이었을 뿐이며, 한국군은 양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야만적인 군대』라는 주장이 그런 것들이다.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에 관한 부정적인 견해들을 유포하는 자들은 월남전을 국제정치학이나 戰爭史(전쟁사) 차원에서 제대로 연구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미국을 반대하고 북한을 선호하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더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미국을 미워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사상에 대한 가장 숙적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월남전 참전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개 『북한이 민족의 통일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미국이 참전하는 바람에 민족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호찌민이라는 민족주의 애국자가 월남 통일을 위해 벌인 노력을 미국이 방해한 것이 월남전』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이나 월남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의 대상이었다는 주장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미국이 진정 제국주의 국가라면, 자원이 풍부하고 공업이 발달했고 시장이 큰 다른 지역을 침략했어야 한다.
그런 지역은 세계 도처에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이나 월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先制(선제)공격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대한 반응이었다. 공산주의 침략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미국의 개입도 없었을 것이다.
게릴라戰이 양민학살說의 원인
「한국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주장도 논리적 비약이다. 월남전은 기본적으로 정규군 간의 정면 대결이 아니라 게릴라戰이었다. 게릴라戰은 군인이 양민으로 가장해서 양민 틈 속에 숨어 있다가 적군을 공격하고 달아나는 전쟁이었다.
蔡命新(채명신) 초대 駐越 한국군사령관이 『월남전 참전 당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베트콩과 양민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양민 틈에 숨어 있는 베트콩의 모든 활동은 월맹(北월남)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지령에 따라 이뤄졌다. 베트콩은 남부에서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월맹의 지령下에 월남을 赤化(적화)통일 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蔡命新 장군은 월남전에서 양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월남전뿐 아니라 현대의 모든 전쟁에서는 군인보다 양민이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입는다. 현대국가들의 전쟁은 「왕들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들의 싸움」이며 국가 전체가 동원되는 총력 전쟁이기 때문이다. 敵(적)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敵의 산업 시설이 공격의 표적이 된다.
더군다나 양민과 군인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전쟁터가 월남이었다.
필자는 軍 복무 당시, 월남전에 참전했던 선배 장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군이 행군하는 것을 보며 「따이한! 따이한!」 하며 손을 흔들던 마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국군이 다 지나갈 무렵 뒤에서 한국군을 향해 총을 갈겨 댔다. 우리도 돌아서서 응사했다. 그런 일들이 非一非再(비일비재)했다. 월남전은 그런 전쟁이었다』
이런 사례들이 월남전 당시에는 월맹에 의해 「한국군의 양민학살 사례」로 선전되었다. 그리고 그런 선전들이 오늘날 여과 없이 한국군의 월남전 양민학살 사례로 국내에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왜 월남에서 손을 떼게 됐나?
월남전은 冷戰(냉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개의 강대국에 의해 양분 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 방방곡곡 어떤 허술한 지역이라도 상대방에게 양보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남한을 양보하는 것은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이 남한을 점령하는 것을 내버려 두는 일로 인식되었고, 월남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월맹이 월남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월남을 차지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월남전이 격화되던 1960년대 중반 이후 소련과 중국의 갈등은 노골화되었고 이같은 상황은 미국으로 하여금 월남에서의 공산주의 준동을 중국 공산주의 세력이 국제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의 하나로 해석하도록 했다.
1964년 중국이 核무기 보유에 성공한 이후 미국의 東아시아 정책은 「월남에서 중국의 팽창주의를 근원적으로 막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월남에 개입한 국제정치 이론적 근거는, 월남이 赤化(적화)되면 그 옆 나라들도 줄줄이 赤化된다는 「도미노 이론」이었다. 그래서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시절, 미국은 월남전이라는 빠져나오기 힘든 늪 속으로 주저하면서도 한발 한발 발을 담그게 된 것이다.
『전쟁이란 애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던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처럼 전쟁은 자기 나름대로의 다이내믹이 있으며, 월남전쟁은 결국 美軍 52만 명 파병이라는 상상 못 할 상황까지 진전되었다.
미국은 월남전을 치르면서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월맹에 대해 「공산주의의 外皮(외피)를 쓰고 있는 민족주의 세력」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미국은 통일된 월맹이 중국의 앞잡이가 아니라 중국과 맞서 싸우는 「민족주의」 세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미국은 월남에서 민족주의를 거슬러 가며 전쟁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월남 민족주의의 힘을 이용해서 중국·소련 공산주의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를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관측대로 赤化통일된 월남은 같은 공산주의인 중국의 앞잡이 혹은 중국 세력 확장을 위한 교두보가 아니라 중국 세력의 확장을 막는 쐐기가 되고 있다.
1979년 월남과 중국은 전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베트남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 21세기 미국 패권에 대한 잠재적 도전자 중국을 견제해야 할 미국은 이제 베트남을 중국을 견제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용한, 보이지 않는 동맹국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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