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파병 이야기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25]
●월남전 당시 국가가 파월장병들의 전투근무수당을 삥땅치다.
미군이 국군에 자국군과 동일한 전투근무수당과 동일한 금액을 지급했는데 중간에서 국가가 90%를 가로챘다는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 월남전쟁 개요
1955~1975년까지 공산국가인 북월맹과 자유우방인 남월남간의 내전에 미국이 주변 라오스,캄보디아,태국 등으로의 도미노현상을 우려하고 있던차 1964년 8월 통킹만공해상에서 미국 군함이 북월맹의 공격을 받자 이를 빌미로 북월맹에 대한 보복폭격 등 본격적인 군사개입으로 확전된 전쟁임. 월남전은 자유월남정부와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군과 태국, 오스트리아, 호주, 필립핀 등 연합군이 참전했으며 한국은 1964~1973년 8년6개월간 총 312,853명이 참전 약5,000여명이 전사하고 11,000여명이 부상당했다. 한편 미국은 현대전에 필요한 장비 등 물질적인 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유했음에도 55만 3천명 파병에 5만 8천명의 전사자를 내는 등 2.4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들이고도 공산월맹의 승리로 막을 내렸음.
• 패망원인은
①월맹군과 민족해방전선(베트공)의 게릴라 전술의 성공과 ②월남 지도층의 부정부패 그리고 ③공산월맹을 지지하는 정치, 언론, 종교계 등의 반전시위와 ④오랜 식민지를 경험한 월남인들에게 민족공조로 자주적 통일을 이룩하자는 베트공들의 교묘한 모략전술과 이간책으로 월남국민들의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⑤한편으로 파리협상을 정략적으로 이용 1973년 미군 및 한국 등 연합군을 철수 시키고 1975년 4월 30일 자유월남정부의 항복선언을 받아냈다.
▣ 한국군의 파병배경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미국의 요청과 당시 한국내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제반 요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볼수 있다. 1964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월남에서의 전황이 예상외로 어렵게 되자 한국을 포함하여 25개 자유우방국에 월남전 지원요청 서한을 보낸 것이다. 당시 5.16 혁명후 박정희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경제 및 군사원조가 절실했던 시기로 과거 한국동란시 연합국에 진 빚에 대한 명분 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동남아 전략속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으로 경제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만일 미국의 월남전 참전요청을 거부 했다면 주한 미군 2개사단이 월남전에 투입 될 것임으로 한국방어의 공백은 물론 한.미동맹의 심각한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 이외도 가시적인 성과는
①군원 이관을 중지케 하고 군수관련 공장 증설과
②군사원조 및 한국군의 장비 현대화와
③3개 예비사단을 전투사단으로 개편 하였고
④한국군의 최초 해외파견과 현대전 경험축적 등을 들수있다.
▣ 월남전 파병일지
1664.9.22 : 제1차로 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교관 파병
1965.3.16 : 비들기부대(육군.해병공병 건설지원단) 파병.
1965.10.14 청용부대(제2해병여단) 캄란파병
1965.10.20 : 주월 한국군사령부 사이공 개소
1965.11.2 : 맹호부대(수도사단 1연대) 1차본대 퀴논파병
1966.4.19 : 맹호부대(26,연대 등) 브라운각서 교환. 추가파병
1966.6.1 : 십자성부대(100군수사령부) 파병.
1966.10.3 : 백마부대(제9사단) 닌호아 및 캄란파병
1967.8.20 : 청용지원부대 증파. 해병여단을 사단으로 개편
1973.3.13 : 주월 한국군(맹호,백마사단 등) 철군완료
▣ 한국경제 기사회생의 돌파구
1962년부터 의욕적으로 시작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출발부터 자금란으로 적자가 누적되어 1963년 수출 8.600만$에 경상수지 적자는 무려 2억 4000$ 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경제 기사회생의 돌파구로 작용한 것이 월남전 파병이었다. 한.미동맹의 결속과 경제 및 군사원조 등 난제들이 한꺼번에 해결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욱이 1966년 월남전 확전으로 미국이 한국군 전투사단 증파를 요청 해 옴으로써 또한번 우리 정부의 실리를 최대한 반영한 브라운각서에 의한 합의사항을 문서로 받아 내는 성과를 이룩했다.
▣ 브라운각서란?
1966년 3월 미국정부가 한국군 전투사단의 월남 추가파병을 요구 해 옴으로서 우리정부가 그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양해사항을 당시 브라운 주한 미 대사를 통해 한국정부에 전달한 미국정부의 공식문서다. 한국은 1964년 비전투부대 파병에 이어 1965년 10월 국군 맹호사단 본대를 월남에 파견 했으나 월남정부는 전세가 불리 해 지자 미국을 통해 추가로 전투사단 파병을 요청 하였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추가 파병에 따르는 국가안보에 대한 담보와 경제원조 및 미군 수준의 참전수당 등 선행조건을 미국정부에 제시했고 미국은 이에 대한 보장과 약속을 각서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통고 해온 것이다.
군사원조
1.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해 수년동안 상당량의 장비를 제공한다.
2. 베트남 추가 파병에 따른 소요경비와 병력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제공한다.
3. 한국에서 추가병력 훈련 및 소요재정을 부담한다.
4. 한국군의 대간첩 활동을 위한 필요한 요구가 있을시 이를 지원한다.
5. 한국군의 탄약소요 증가에 따른 병기창 확장시설을 지원한다.
6. 베트남 주둔부대와 서울, 사이공 정부와의 통신망을 확충한다.
7. 한국군 작전을 위해 C-54 대형 수송기 4대를 지원한다.
8. 한국군의 막사,취사,오락실 등 부대 복지시설 개선을 위해 잉여물자를 제공한다.
9. 한국군 처우개선을 위해 1966. 3. 4일 비치 유엔군 사령관과 김성은 국방장관이 합의한 비율에 따라
미국이 한국군의 해외참전수당을 부담한다.
10. 전,사상자는 한.미합동군사위서 합의한 액수의 2배를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경제원조
1. 한국군 1개 사단과 1개 예비여단 편성에 소요되는 예산을 방출한다.
2. 한국군 파월 기간중 군원이관을 중지한다.
3. 파월 한국군에 필요한 보급물자, 용역 등 을 한국에서 발주한다.
4. 한국의 수출진흥을 위해 기술협력을 강화한다.
5. 현재 지원중인 1억 5천만$ AID차관외 한국의 경제발전을 돕기위해 추가로 1억 5천만$을 제공한다.
6. 베트남 수출지원을 위해 1천5백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 문제점 제기
2005년 외교통상부가 월남전 비밀문서를 30년만에 공개했으며 국방부도 당시 파월장병들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 내역을 사실대로 밝혔다. 그러나 1965년 전투사단인 맹호부대 추가파병을 조건으로 정부가 호주,태국,카나다 등 다른 참전연합국 군인과 동일한 수준의 전투수당을 요구한 자료와 당시 김성은 국방장관과 드와이트 비치 유엔군 사령관 사이에 합의했다는 영문원안은 지금까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해외근무수당과 전투수당은 다르다
가. 박정희 정부는 1965년~1973년까지 8년동안 한국군 약32만 여명을 월남전에 파병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해외근무수당을 대통령령 제1895호 규정에 의거 아래와 같이 지급 했다. ( 1968년도 환율 : 1$=272,55원 )
일병 : 40.5 | 상병 : 45 | 병장 : 54 | 하사 : 57 | 중사 : 60 | 상사 : 75 |
준위 : 105 | 소위 : 120 | 중위 : 135 | 대위 : 150 |
소령 : 165 | 중령 : 180 | 대령 : 195 | 준장 : 210 | 소장 : 240 |중장 : 300|
나. 1975년 종전후 국내는 물론 미주 등에 거주하는 파월 장병들이 월남전 당시 해외참전수당(근무+전투)이 미군 및 연합국이었던 호주나 필립핀, 태국군에 비해 20%수준 이었음을 지적하고 정부에 진상조사 청원서를 내자 2005년 5월 국방부가 몇가지 근거를 들어 파월장병 수당은 적법하게 지불됐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공개한 내용은 해외근무수당과 전투수당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당시 협상의 주인공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김성은 국방장관이 작고 함으로서 전투수당에 대한 의혹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브라운각서 제9항(한국군 파월장병 대우)에 비취 유엔군사령관과 김성은 국방부장관과 합의 했다는 계급별 해외근무수당에 대한 지급세항 영문원안이 없는 상태(은닉 또는 파기추정)에서 당시 대통령령으로 지급된 위 해외근무수당이 마치 해외근무수당+전투수당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
한국군의 베트남참전에 관한 <국방정책연구> 자료에서 서울대 박태균 교수는 월남파병 군인들의 월급 및 수당은 얼마를 받았는지 의혹만 남아 있다고 했다. 또한 다른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한국군의 월급과 전투수당 등이 미국과 호주, 카나다, 뉴질랜드 등 다른 참전국과 비교 할때 크게 차이가날 수 없다며 전쟁터에서 목숨바처 피를 흘린 대가성 문제는 참전명분에 타격을 줄수 있음으로 지금까지 하나의 신화로 묻혀가고 있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2) 전투수당 지급 근거 및 자료
군인보수법 국방부제정 법률 제1338호(1963.5.1) 제17조(전투근무수당)에 의하면 전시, 사변, 국가비상사태시 등 전투에 종사하는 자에 대하여는 국가가 각령이 정하는 바에따라 전투수당을 지급한다로 되어있다.
1964년 최초 이동외과병원 및 비들기부대 등 비전투 부대원들에게는 해외근무수당을 지급한 것은 맞다. 그러나 1965년 맹호부대 증파부터 는 실제로 전시작전에 의한 전투대원으로 참전하였음으로 전투수당 지급근거는 명확하다.
1975년 미.육군성이 발간한<월남참전 동맹국에 대한 연구>논문 P-155를 보면 1965년 6월23일 김성은 국방장관이 증파에 따른 국회동의를 앞두고 주한 유엔군사령관 비치장군에게 파병조건으로 제시한 10개항 중 8항에 의하면,
( Provision of financial suport to Korean units and individual in Vietnam, including combat duty pay at the same rate as paid to US personnel.---)
註) 파병되는 한국군 장병들에게 미군에 지불되는 동일수준의 전투수당을 지불 하기로 하고 전상자의 보상금과 현지 월남 고용인의 급료도 미국이 지불한다. 로 되어있다.
위와같은 근거자료로 보아 최종적으로 합의 할시 조정 되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연합군의 20%수준은 턱없이 적은 액수로 박정희=김성은, 비치장군=김성은 장관 사이에 이면계약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박정희 영도력<베트남 파병과 한국과학기술>책자에도 월남파병장병의 해외근무수당 가운데 일부가 이면계약을 통해 전용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했다.
3) 전투수당 증언과 천문학적 자산
2012년 4월 18일 한국군 2대 주월사령관이 었던 이세호 대장(예)은 서초동 전자랜지 강당에서 있은 안보강연에서 월남파병 해외근무수당에 대해서 언급 하면서 정부가 미국측으로부터 병장기준 500$을 받아서 1/10인 50$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고에 귀속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기간산업 확충을 위해 썼다고 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박정희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보고 1968년 2월 착공하여 1970년 7월, 2년 5개월만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대역사로 그동안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사비 430억으로 월남파병 대가로 받은 미국의 원조, 그리고 월남특수 및 파월장병 전투수당 유입으로 충당했다.<국토연구원>자료에 의하면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국가경제적 시너지효과는 연간 13조 5천억으로 평가 된다고 한다.
한편 1964년~1973년까지 약 8년동안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함으로서 얻은 ①미국의 군사원조는 약 17억$로 한국의 국방비 지출을 경감케 하였고 ②월남수출확대 급증과 ③물자수송 및 용역 등 전쟁특수로 12억 ④국내기업과 근로자의 월남진출에 따른 효과 등을 계산할 경우 총 외화수입은 대략 50억$로 추정했다. 당시 이 액수(5조)는 5천년 역사상 월남전 참전으로 얻은 천문학적 자산이라고 했다 <채명신사령관 회고록>
▣ 결 론
지난해 5월21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월남참전자회와 사)파월전사연구소에서 공동주최한 “월남참전 유공자의 공훈과 예우”에 관한 세미나에서 유영옥 경기대교수와 제성호 중앙대교수 등은 월남참전유공자와 타 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고 법무법인“주원”의 고정욱 변호사는 참전군인들의 전투수당요구는 정당한 권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하겠다고 했으며 현재“월남참전권익포럼”주관으로 공청회 및 전국적인 서명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월남전 파병으로 인한 국익증진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재조명돼야 함은 물론 이들의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할수있는 특별법 제정 등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 명 재
안중근의사숭모회 연구위원
월남참전권익포럼 공동대표
[출처] 월남전 당시 국가가 파월장병들의 전투근무수당을 삥땅치다.|작성자 오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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