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 1,2

Marine Kim 2021. 1. 16. 15:04

Marine Story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

 

서 문

 

짜빈동 대첩의 화려한 명성으로 해병전사에서 그 빛이 묻혀버린 푸옥록의 전투는

이제 서서히 해병 모두에게서 잊혀히고 있습니다.

그 때의 용감한 전사들은 지금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 가고 있습니다.

투망작정에서 상당히 전사나 부상을 당하였고 그중에 전사한 소대장2(전창우소위, 김진철 소위)

당시 선임하사 이영구(7년 전에 병사)가 세상에 없는 처지이라서 안타깝습니다.

청룡9중대의 푸옥록30고지 전투는 반드시 후배 해병대원의 정신교육에 꼭 전수되어야 하고,

해병전사에 당당히 그 진정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용안작전의 1부분으로 취급되어 있으나 이 전투는 전사에서 독립적으로 부각시켜주어야 합당합니다.

 

그 당시 전과는 추라이지역 전투사에서 숫자상으로도 확연히 돋보일 만하였고 적 사살 110명이나 됩니다. 추라이 전선에서 이처럼 많은 적을 사살한 예가 짜빈동 대첩이외에는 없습니다.

 

용안작전 초기에 2대대의 고전으로 피해가 막대할 때 대규모 부대와 싸워서

추라이 지역에서 최초의 대 승전으로 청룡부대 전체가 사기충천의 계기다 되었고,

최전방 중대들은 포병 화력지원을 적절히 운용하여 작전에서 필승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한 전투였기때문에 전술, 전략적으로 월남전에서 중대전술에 전기(轉機)가 되었다는 면에서 다시 재조명하여야 합니다.

 

짜빈동진지는 거의 완벽한 야전 축성진지의 방어전이었다고 본다면,

청룡해병 9중대 2개 소대는 전혀 다른 열악한 지형 조건이었고,

진지 역시 매복진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적 접근을 저지할 장애물은 물론 철조망도 없는 낮은 공동묘지 기슭에서

겨우 2개 소대 대원과 해포7중대 관측반4, 81미리 박격포반 5,

월남육군2(통역), USMC ANGLICO 대원 2명을 포함하여 80명 정도의 병력으로

지역 베트콩 지원병력과 월맹정규군 제48대대 및 46대대의 합동공격을 격파한 위대한 전투였습니다.

 

청룡전사에서 이런 정도의 전과와 용맹을 보여준 사례가 없습니다.

또한 짜빈동대첩 이후에 적들의 정보판단보고를 보면 푸옥록30고지 전투에서

 

치명적인 월맹군부대 피해는 포병의 막강한 화력 때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청룡 해병전사에서 포병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또 이를 중시(重視)하는 재평가를 해야 합니다.

 

위 청룡부대 김세창 중위님은 ~~

해간33기로서 짜빈동전투에서 철모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습니다...

당시 직책은 ...2개연대를 맞써 싸우는 청룡부대 11중대 관측장교로 배속

당시 정경진중대장 신원배소위 배장춘하사....

포병장교 김세창중위는 짜빈동 기습방어전을 승리

신화를 남긴 해병대의~~전통을 수립한 분입니다.

해병6대전투에 빛나는 ~~짜빈동전투!!

 

해병대의 신화!!

 

하지만 그이전

푸억록전투에 김세창 중위님은 투입이되엇다고 합니다...

청룡9중대(짜빈박전투 주력중대)에 배속되었던 것입니다.

푸억록전투가 빛을 발하지 못한것은~~

푸억록 대첩을 거두고도 짜빈박 패전으로 인해

상기지휘관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

 

이임하시는 이봉출 청룡부대장님은 ~신임 김연상장군에게 ...말합니다

포병 관측장교 중위 김세창을 그곳 짜빈동에 두시오

짜빈동은 앞으로 중대한 역할을 감당해야할곳이오

김중위는 전장을 선구하는 억세게운이 좋은 사람이니...

그한마디에 김세창중위는 짜빈동에 상주케되고 야음을 틈탄

월맹군의 짜빈동 기습공격을 막아냅니다...

......

노병이 말씀하시는

푸억록전투는

짜빈동전투보다 더치열했던 전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전투가 왜 해병전투사에서 잊혀진 전투가 되었는지??

 

김세창중위님의 증언을 통해....

유용원의 군사세계....선후배님들께...알려드리고 해병정신 해병혼을 계승하고자 하십니다.

해병대를 사랑하는 선후배님들의

많은 격려 바랍니다.

 

푸옥록의 피빛어린 전투가 드디어 고개를 내밉니다~~ 해병대 월남 파병 전투캄란~ 투이호아에 이은~~ 추라이 時代~~짜빈동.테로이 매복작전.강구작전... 하물며 패배하는 짜빈박전투 까지도 모범 전투사례로...해병대 월남전사를 연구하는 모든사람들의 연구자료가 되지만 푸억록고지 전투는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전쟁이 되고 맙니다 .

 

대한해병대 청룡부대의 65개월 월남전선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안다고 자부를 하며 <청룡부대의 흔적을 찾아서...>자칭 타칭월남전 연구가로 4번씩이나 월남전선을 헤메이던 저희들도 생소한 푸억록고지... 푸억록전투 !!! 지난 3월의 탐방 피빛어린 전선을 되돌아보는 리코미 김세창 중위님의 푸억록30고지 ..회한속에 푸억록을 계속 되뇌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 이미 짜빈박에서 전사하신 전창우 소위님 김진철.이하사님.. 재조명,증언을 하셔야할 청룡용사는 이미 ~~돌아오지않는 해병이 되었기에... 아픔만 더해 가신다는 서언의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아무쪼록 푸억록 30고지... 잊혀져버린 전쟁을 오늘에 되살려~~ 땅에 떨어진 이나라의 국가관.민족관.자주국방에 경종을 울리는 금과옥조,,,,, 옥고가 탄생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리코미 선배님의 말씀처름 ((청룡9중대의 푸옥록30고지 전투는 반드시 후배 해병대원의 정신교육에 꼭 전수되어야 하고, 해병전사에 당당히 그 진정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 해병이라면 그누구라도 푸억록전투가~

 

발굴 재조명되고 푸억록 전투가 대한해병대...통일이후의 한국을 내다보며 대양 일본과 대륙 중국에 맞서 이길수있는 강군.. 우리 대한민국.. 한국군의 지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곁들여 봅니다 무엇보다~ 짜빈동의 신화..푸억록 고지 그 치열했던 양대전투에서 의연히 살아 돌아오신 모습 출세욕 명예욕을 앞세운 군인의길 이전에~~ 부귀공명을 뒤로한체 ...의연히 학자로서의 길을 원했었기에... 차라리 가슴에 묻어버린 전투..

 

잊혀져버린 전투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왜인지요??.... 그런상념에 젖어듭니다 이시대를 풍미한 월남전 그 전투사에 획을 긋는 족적을 남기신.. 짜빈동 .푸억록 양대전투의 지휘관으로서~ 전장을 선구하는 해병혼 /해병정신으로 살아돌아오신 대선배님 리코미 해병중위 김세창 님께 후배해병은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가슴아픈일들~~ ((전쟁은 이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최악입니다. )) 하지만 신화를 남긴해병대 청룡부대의 신화 이지구상 존재하는 최강부대였던 청룡부대~~~ 짜빈동전투가 살아움직이듯 푸억록전투를 이곳 해병대 천자봉기슭에서 9중대의 역사가 이렇게 다시 살아재발굴 될수 있슴은 오늘날 해병중위 김세창이라는 위대한 전술 위대한 전투가가....이땅 에 살아계시기에 가능한것입니다. 우리는 두눈을 부릅뜬체...

 

우리는 해병중위 김세창이라는 이름을 주시 않을수가 없습니다...... ((해병대에 내한몸을 던질수 있었던것은 이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월남전선에서 한국군 최고의 전투가이자 최고의 맹장이셨던 .. 까튜산 전투의 ~~오윤진 2대대장님의 말씀이십니다 . ..많은 동료를 이국만리 월남땅에서 김세창중위님은 잃엇습니다.... 그숨져간 넋을~~위로해줄사람이 누가 있으랴~~ 말씀은 없으셔도 가신님 그신넋을 위로해줄 이는 .

 

당신들뿐이시라 는 것을 우리 -靑龍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꼭 푸억록으로 가시어 그당시를 되돌아 보시려합니다. 가시는 걸음 그무거운 길을 <<청룡부대의 흔적을 찾아...>>다시 가시고자 합니다 . 그리고 푸억록전투를 반드시 재조명.재발굴하시어 이땅의 전투가들 이땅의 육해공은 물론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 국토보위를위해...... 송두리째 바치시려 합니다... 우리는 젊은청룡 김세창중위님을 이곳..천자봉 쉼터에서 해병으로 해병대 이름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선배님 후배님들의 많은 열과성을 격려를 기대합니다

 

리미코 :

 

안이기님 저는 짜빈동대첩에서도 관측장교를 하며 전투를 하였습니다.

소총은 한발 도 쏘지않었던 단지 충실한 포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은 아니지만 청룡 9중대 전투전우들에게 더 많은 공로의 점수를 올립니다.

저는 푸옥록 30고지 전투에서는 적과 뒤섞이기도 하고 2~3미터에서 갑자기 다가선 적에게 권총도 쏘고 발길질도 하며 전투를 하였습니다.

 

 

제가 관측장교인데 3소대장 전창우소위 곁에서 칼빈도 쏘아가며 포탄 유도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짜빈동에서의 육탄전이 있었지만 그래도 철조망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오는 적들이어서 이동 동선에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푸옥록에서는 거의 4면에서 접근하는 적과 들개처럼 육박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도 대대병력의 적을 단지 2개소대가 물리 쳤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9중대원의 한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정말 빛나는 청룡의 혼을 불살린 9중대원들입니다. 그후에 소대장 2명이 투망작전에서 전사하였고 선임하사 이상사도 몇년전에 병사하였습니다. 당시의 전투소대장 김원식 소위(중령예편)한명만 생존하고 김윤형대위님은 지금 포항에 생존하셨는데 몸이 병약하여 전화통화가 힘이 들정도입니다.

 

이제 이 안타까운 잊혀저가는 시간속에서 몇자 올렬봅니다.

 

[출처]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 -- 서문 |작성자 오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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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2)

 

1. 보이지 않는 그림자들.

용안 작전(196611)이 시작되고 1대대 병력이 1번 도로 서쪽지역 일대를 작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임무를 3대대가 인계를 받았다.

이 작전을 계속하러 짜빈동 진지를 떠나던 오전의 기상은 월남의 우기였다.

 

첫 출발 부터 억수 같은 세찬 비를 맞으며 출발을 하였다.

행군출발 1시간 첫 휴식을 하는데 그 많은 비가 오는 곳에서도 맨 땅에 앉아 장비 정비며 무기를 휴대하기 좋게 재조정하고 있었다. 출발 직후부터 온 몸이 젖어서 군복 주머니의 지갑이나 담배, 작전용 지도 등은 모두 비닐봉지에 밀봉 테이프로 방수 작업을 하고 행군을 하였다.

특히 어려운 점은 관측장교의 필수품인 지도, 나침반, 무전기 송수화기의 방수처리가 무척 부담을 주었다.

최초 행군 출발 한 시간이 되어서 15분간 휴식을 하던 중에 관측반원 한명이 배변을 보러 보고하고 바로 옆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놀라서 허리춤을 잡고 숲속에서 뛰어 나왔다.

 

....베트고 ...콩 입니다!”

 

순간에 놀라 총을 잡고 5미터쯤 떨어진 그곳에 찾아가니 억수 같은 빗줄기만 보일 뿐,

베트콩은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빗줄기 가 내리 쏟는 관목 사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관측반원의 배설물이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풀숲에는 베트콩이 던졌다는 안전핀도 빼지 않은

미제 세열수류탄 한 개만 보였다.

아군 관측반원이 쭈그리고 앉아 있던 그 순간에 척후 정찰을 나온 적의 정찰병이

우리 관측반원을 보고 놀라 베트콩이 던지고 간 수류탄이었다. 안전핀도 뽑지 않고 던져진 수류탄이라....

그것도 노획무기에 들던가....?

 

용안작전 기간 중에 비가 오지 않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는 동안 헬기 공수로 잠시 작전지역에

찾아온 공병병과 동기생(안광남?)이 카메라를 들이 대었습니다

 

그렇치 않아도 체중이 60kg겨우 가던 체격에 작전 중에 보급이 중단되어

4끼씩이나 굶어가며 물도 못먹던 상태에서 찍은 사진이니 체력이 뚝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입고있는 방탄복은 구형 미해병대 방탄복으로 특수 프라스틱조각으로

몸을 보호하는데 실제 총탄에는 보호능력이 좋다하지만 수류탄등이 파편에는

신형방탄복이 더 좋았습니다. 특히 세열수류탄에는 신형이 좋았는데

구형보다는 더위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청룡작전 시작부터 적들은 이미 우리 9중대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작전 중에도 농부로 위장한 베트콩 한명이 숲에서 도망치다 우군의 총에 피살되었는데

놀랍게도 그의 수첩에서는 잘 다듬어진 몽당 색연필이 있었는데

지도 상항판에 쓰는 세 가지 적, 청 흑색의 연필이었다. 이는 분명 작전지도 표시용 필기구였으며

부비추랲 용 인계철선도 주머니에서 나온 걸로 보아 전방 관측병이나 정찰요원이었다.

 

보이지 않는 맹수처럼 계속 그림자같이

청룡부대의 작전을 여기저기서 관측하고 있었다.

 

작전개시 4일째인가? 식량이 떨어져서 물도 먹지 못하고 굶은 채 정찰 및 적 탐색은 계속되었다.

만 하루가 지나 4끼를 굶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물이 없어서

대원들은 지휘관 몰래 도랑에 맑은 물을 보면 엎드려서 물을 먹었다.

손으로 물을 떠먹으려도 손에 흙이 묻어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1118일 보급 헬기 수송이

2차례나 연기되더니 기상이 조금 좋아진 오후 2시가 되어서 헬기가 날아왔다.

무슨 일인지 헬기가 선회만 하였는데 앵그리코 팀에게 물어 보니 적색 연막탄 표시를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숲속에 은폐지역에 중대원이 있어서 헬기도 우리중대를 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중대장에게 요구하여 적색연막탄을 구하였다.

 

가끔 VC가 무전으로 헬기를 자기지역으로 유인하여 보급품은 물론

헬기까지 추락시키는 사고가 있기 때문에 헬기 조종사들이 조심을 한다고 했다.

완전 개활지에 의지할 곳도 없는데, 적색연막탄을 던지고

나 홀로 논바닥으로 뛰어나가서 양팔을 벌리고 헬기를 유도하여 착륙위치를 표시하였다.

온 몸이 오그라들고 마음이 초조해서 손발이 떨리는 데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중대장에게 보고도 못하고 자원하였다.

저격을 할 경우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17일에도 헬기가 여러 개의 물통을 5갈론 통에 담아서 높은 곳에서 물통을 떨어트려서 물통이 터졌으니

물은 없고 프라스틱 통만 보급한 꼴이었다. 물을 공급받으려면 완전히 착륙을 해야 하였다.

 

만 하루가 지나서 오랜만에 씨레이션 식사를 마치고 정찰작전에 임하였다.

중대 방석인 짜빈 진지 멀리 서측방의 고무농원 근처를 돌아 제 7일 째인 19일에도 오후 3시가 되어

숙영할 진지를 찾아야 했다.

김세창 :

 

그간 마음이 무거워 감히 글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다시 수정할 것이라도 있나하여 제 3소대장 김원식소위(당시)를 불러내어 이야기 소재를 당시 전투 상황으로 돌려 말하였으나

전혀 기억을 못한다네요. 소대장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리였습니다.

죽기살기로 싸웠다는 말 밖에 할말이 없대요.

 

하는수 없이 전에 써두었던 원고를 수정없이 올립니다.

그러나 다시 원고를 보니 한숨이 나옵니다.

다듬어 지지 않은 서툰 글이 말입니다.

하지만 진솔한 마음으로 옮겼으니 어슬픈 표현이나마 이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2) |작성자 오해병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 -- 서문 푸옥록전투 / 해간33기김세창

 

계속 (사진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