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의 철수작전 10

Marine Kim 2021. 1. 16. 15:09

Marine Story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의 철수작전

 

19661120일은 하늘도 구름이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새벽에 4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온몸은 천근처럼 무거웠으나 살아있다는 안도감으로 빗물에 젖은 옷의 불편함도 잊고 잔디와 흙이 묻은 C-ration 깡통을 옷에 문지르며 아침을 마쳤다

2중대가 작전으로 전과 확대를 하는 상황이라서 경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마음은 다소 이완된 상태였으나 중대원들은 각자의 무기점검과 탄약 정비를 정성을 다하여 실시하였다.

 

60미리 박격포는 포탄이 바닥난 상태였고 81미리는 포반원 3명 모두 전사한 터라 포탄처리에 골몰하며 페기 처분하는데 애로가 있었다. 냇가를 지나오다 물이 있는 수풀 속에 버린 기억이 난다.

마지막 도보로 철수하면 1번 도로에서 차량으로 귀대한다고 하였다.

 

부대는 1열 행군대열로 출발하면서 중대 본부는 중앙 위치하고 긴 대열로 출발하였다.

Vinloc(3)마을을 지나며 여기 저기 수색과 정찰을 하였으나 마을 주민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먹이를 찾아다니는 돼지 두서너 마리가 우리 밖에서 군데군데 지나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두려운 순간이기도 하였다. 누군가 돼지를 보고 오조준으로 총을 쏘는 바람에 돼지들이 기겁을 하여 달아나고 바짝 긴장을 하고 행군하던 나도 화들짝 놀라서 명령 없이 총을 쏘았다고 고함을 쳤다.

 

늘 그러하듯이 조용한 마을이 두려웠다.

행군 종대로 개인간격 10보 정도로 유지하며 행군을 하다 행군속도를 조절하기 위하여 마을이 보이는 낮은 언덕 가까운 곳에서 중식을 하고 휴식을 취하였다.

 

오늘 새벽에 고장이 났다던 prc-10무전기가 작동되고 앞에 멀리 보이는 연초록빛 논에 어우러진 평화로운 마을이 정녕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오수도 취하였다.

햇볕이 뜨거워서 수건으로 머리를 덮고 앉아서 잠간씩 소위 겉잠(nap)을 청하기도 하였다.

 

 

간간히 들려오는 구형 무전기에서 희미한 전파로 들렸다 안 들리기도 하던 고전음악들을 내혼자 즐기기도 하였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음악처럼 나른함을 더해주는 그런 음악이 들리는 오후였다.

구형이지만 예비 무전기로 음악을 듣는 전장 터의 행복한 낭만의 군인이 되는 멋스러움을 즐기던 순간이었다.

 

통신을 하다보면 미스테리 처럼 아주 먼 곳의 전파가 잡힐 때도 있다. 당시의 무전기로는 20키로의 거리도 통화가 힘드는 무전기들이었지만 간혹 시간대에 따라 예외가 있다.

그 예로 추라이지역에서 포병대대 작전상황실 미도파와 교신을 하다보면 밤 9시에서 11시 경에 한국에 있는 인천경찰서 무전이 월남에서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통신보안상 위법이기는 하지만 한번은 인천경찰서 경관에게 부탁해서 명동에 있는 저의 내자에게 월남에 있는 나의 안부를 전한 사례도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 신비로운 전파의 세계이다.

간혹 KBS에서 방송되는 fm 방송이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에 들리는 경우가 있었다. prc-10에서 들리는 주파수대이니 일반 라디오에서는 들리지 않는 방송으로 미루어 당시 남산 KBS에서 남양 송신소로 보내는 주파수가 아닌가? 추측하여 보았다. 아무튼 이 방송시간에는 거의 고전음악만 들을 수 있고 아나운서의 말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하였다.

 

중식을 마치고 1시간정도 휴식 후에 도중에 지나치는 작은 마을은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 마을을 거의 지나 냇가를 건너가면서 행군 방향에서 좌측에 다소 경사가 급한 야산이 보였다. 이 산은 행군대열과 평행선을 긋고 있으면서 다소 경사가 급한 상태였고 나무가 그리 많지 않은 산으로 우리 측을 감제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은 개활지였고 논으로 이어져 지형으로 보면 적들이 있다면 매복 공격에 아주 한 곳처럼 보여 두려움이 있었다는 기억이 생생하였다.

당시 9중대는 2개 소대이지만 전사자와 부상자를 제외하면 80명도 채 되지 않는 소부대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냇가를 건너가는 중에 갑자기 수십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냇물에 있는 자갈 위로 총탄이 튀었다. 북쪽에 위치한 감제고지(瞰制高地)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은 것이다.

반격이라고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냇가 바로 옆에 제방 위를 내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 우측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중대장과 나는 급히 제방 아래에 엎드렸다.

연거푸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 떼처럼 후미의 부대원들이 그 좁은 제방 아래로 밀어 닥쳤다.

장소가 협소한 데다 제방이 낮아서 결국은 허리 정도 빠지는 자세를 낮추고 움츠리고 있었다.

 

적들의 위치는 정확히 파악할 수 도 없었고 우군이 제방 아래로 대피하자 총성이 멈추는걸 보면 완전하게 우리를 감제하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다행히 부상자나 전사자도 없었다. 중대원 대부분이 못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허리까지 물에 빠져서 불편하기도하고, 적을 관측하려고 좀 더 얕은 곳으로 나아가 제방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발에 무엇이 걸렸다.

 

구부리고 집어 올려보았다.

아니 ? 우리 청룡의 얼룩무늬 군복 상의와 빈 배낭, 철모, 탄대등이 여기 저기서 아주 많이 건져졌다.

어느 부대였던가? 며칠 전에 푸옥록 교량부근에서 보병2대대가 크게 피해를 보아 1개 소대가 거의 전멸하였다던 기억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우선은 제방에 가려서 직사화기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적들이 82미리나 61미리 박격포로 공격을 해오면 손 한번 못 쓰고 전멸할 상황이었다.

 

즉시 포병 사격임무를 요청하였다.

여기는 미도파, 촉성루 나와라

여기는 촉성루 사격임무 좌표.........”

촉성루 여기는 미도파 사거리 미달로 지원사격을 할 수 없다

포병대대 작전참모 이병무 대위의 마지막 대답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청룡 해포대 지원사격 범위를 벗어난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시간이 거의 3시경이었다.

정말 사전에 이 지역이 포병지원사거리에서 벗어난 지역이었으면 철수계획을 변경하였어야 했고, 여단 본부에서는 수송차량과 접선하는 위치도 변경되었어야 했다,

더구나 제2대대 6중대가 피습되어 많은 피해를 본 바로 그 지점을 통과 시켰으니 마치 호랑이의 입에 머리를 드밀어 넣는 꼴이 되었다.

 

저수지 수면 밑에 가라앉은 해병대의 의복과 장구들이 바로 6중대 어느 소대인가 전멸하였다는 확증을 주는 무서운 곳이었다.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바로 이 순간이었나 보다.

 

해포대 지원이 불가하다는 보고에 중대장 김윤형 대위도, 소대장들도, 분대장들도, 대원 모두가 잿빛처럼 창백하게 변하고 사기는 완전 바닥으로 떨어 졌다.

간간히 총성이 들리고 기관총 소리도 들리는 가운데 다시 고개를 들어 전방을 주시하였다.

불과300내지 400정도의 거리의 산 중턱에서 아래로 사격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깊은 생각에 빠지면서 잠시 무전기 생각을 다시 하였다.

 

무슨 다른 대책이 없을까?

 

! 바로 바하의 무반주첼로소나타의 기억을 되살리자 ...!

서수병에게 구형 무전기prc-10의 주파수를 확인 시켰다. 바로 한 시간 전에 들었던 그 주파수이다.

서수병 불러주는 주파수를 바로 PRC-25에 장입시키고 조정 클릭을 앞뒤로 한 칸씩 옮기며 여러 번 반복해서 사격임무를 내렸다.

 

작전기간 내내 구형 무전기로 듣던 KBS FM 주파수와 동일한 주파수에 미군포병 무전 주파수가 같아서 가끔 미군들의 사격임무 소리를 들렸던 기억을 해내었다.

 

“Fire mission from 촉성루!"

주파수 조정용 다이얼의 클릭을 다시 상향으로 한 개씩 또는 하향으로 한 개씩 클릭을 돌리면서 무전이 잡히기를 바랐다.

“Fire mission from 촉성루!"를 반복하였다.

 

! 정의와 자유의 전위부대 해병대에게 영광이 있을 지어다 !

 

갑자기 수신기에 반응이 왔다

This is Charlie, This is Charlie !

촉성루가 어느 부대인가?( “What is 촉성루? “ )

CharlieQuang Ngai에 있는 미군 175미리 포병중대이다.

 

엉뚱하게도 우리와 작전 협조가 없었던 미군에게 촉성루가 사격지원을 요청한것이다.

미군에서 촉성루라는 이상한 호출부호에 놀랐던 것이다.

 

어쩌면 내 스스로도 놀라웠다. 막힘없이 술~술 전혀 모르는 미군부대와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하였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해병혼의 신기(神氣)가 내린것이다.

 

무조건 포를 쏘아 달랜다고 OK 할 리가 없었다.

청룡부대(Blue-dragon Brig.)의 화력지원협조본부(FSCC :Fire Support Control Center)에게 촉성루가 연합군임을 확인하고 응답하라고 하였다.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기는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어느 누구도 내가 누구와 무전을 하였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5분 정도나 되었나?

무전기에서 반가운 응답이 영어로 나왔다.

다시 사격임무를 내리라는 것이다.

정말 닭살이 돋을 만큼 신나는 순간이었다.

 

즉시 전방 마을 뒷산에 위치한 적진지를 목표로 사격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러기를 한 1~2 분 후

전방을 주시하라는 명령이 나오고

~~~~하는 포탄 비과 소음과 동시에 전방 산 3부 능선에

거대한 폭음과 함께 두발의 포탄이 폭발하였다.

해병대 포병에서 175미리 포에 사격 임무를 내린 유일한 관측장교가 되는 순간이 되었다.

그 위력이 155미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거대한 구름 같은 폭발 효과가 보였다.

 

이 포는 원래 전략 포이기에 보병 중대에서 사격요청을 하지 않는 게 관례이다.

그 폭발지역에서는 고막이 터져서 모두 전멸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적이 있는 곳과 우군사이에 거대한 구름이 아니 화산이 터진 것처럼 분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일은

OP 확인(confirm it! OP)을 하고 다시 같은 탄종으로 한 번 더 쏘아줄 것을 요구하였던 일이다.

175미리는 앞서 말한 대로 항구나 교량등 전략적인 요충지에 쏘는 포이지 인마살상용 포가 아니기 때문에 목표를 적 1개 중대(enemy 1 company")라고 말하고

재차 사격을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미군들이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bullshit라고 내뱉으면서도 “ ROGER! ROGER! "라고 쾌히 대답하였다.

즉시 2발을 같은 지역에 퍼부어주었다.

 

진갈색과 진한 노란 색 먼지와 흙이 솟아올라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완전한 연막차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대장이 힘을 주어 철수명령이 내려지자 대오도 없고 순서도 없이 전 부대원이 뛰었다.

둑을 따라 70여 미터를 달리다 보니 콘크리트 교량에 도달하였다.

 

이 다리가 바로 6중대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푸옥록 교량이다.

얼마를 달리다 잠시 뒤 돌아보았다. 800미터나 되었을까?

아직도 적들이 있는 그곳은 흙과 먼지로 가득한 연막이 가로막고 있었다.

 

서서히 부대의 대오를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1소대장 김원식 소위가 2열 행군 종대로 먼저 출발하고 있었는데

나는 낭심이 아프고 아랫배가 땡겨서 자리에 잠시 앉아있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왼쪽 엉덩이에 있던 수통이 앞으로 돌아와 양 다리 위 그 중심에

사정없이 타격을 가했는데도 모르고 뛰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이가 없지만 그래도 죽지 않은 것만은 다행이 아닌가?

 

적의 사격 가능 거리에서 벗어난 허허 벌판인 개활지에 있는 도로를 행군하였다.

Hajai 마을 밖에서 일직선으로 난 1번도로 까지 약 4 키로 정도의 도로를 행군하는 기분은 쾌적하고 어깨가 가벼운 멋진 길이었다.

 

1번 도로에 있는 차량 부대 까지 걸어오던 길 바로 527번 도로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6중대는 지옥의 길이였고 치욕의 도로였지만, 미군의 도움으로 부상자 한명도 없이 귀대하던 9중대 2개 소대는 개선해서 당당히 폼 잡고 걸어온 길이었기에

더욱 그 길 527번 도로가 기억이 새롭다.

 

작전기간 동안 내내 힘들었던 초췌한 모습과 그을리고 땀에 얼룩진 대원들의 모습이었지만

수송 차량 10여대에 분승하여 청룡여단본부로 귀대하던 기분은 정말 하늘을 날을 듯이 기뻤다.

 

억수 같은 빗줄기를 맞으면서도 비 한번 피해보지 못하고, 무한정 도보로만 작전을 계속했던 지난 1주일이 있었기에, 차량으로 이동을 하는 기분은 멋지고 신나서 추럭 위에서 힘차게, 신나게 해병대 곤조가를 소리처 불러대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였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편지를 띄우고...........”

 

[출처] 청룡투혼의 위대한 승리 푸옥록30고지 전투후 철수이야기 |작성자 오해병

청룡투혼의 위대한 승리 푸옥록30고지 전투후 철수이야기 푸옥록전투 / 해간33기김세창

 

계속 (사진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