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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링, 내로남불리시, 내로남불러… K정치 키워드 된 내로남불

Marine Kim 2021. 5. 25. 22:42

내로남불링, 내로남불리시, 내로남불러… K정치 키워드 된 내로남불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입력 2021.05.25 03:2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내로남불, 집권 세력의 표리부동과 허위의식을 꼬집는 한국 대중의 촌철살인이다. 온라인 국어사전엔 이미 올라갔다. 웹스터 영어사전에 등재될 가능성도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naeronambul’을 한국 정치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한 바 있다.

내로남불에 딱 들어맞는 영어식 표현은 무엇일까? 한평생 시를 써온 60대 중반 미국인 은사께 여쭸다. 은사께선 온종일 생각해 보았지만 ‘자기 편의적 위선(self-serving hypocrisy)’ 정도밖엔 안 떠오른다 하셨다. “영어의 어떤 단어도 내로남불만큼 날카롭게 정치인의 표리부동을 꼬집지 못한다”며 “앞으로 ‘내로남불링(naeronambuling)’하는 ‘내로남불리시(naeronambulish)’한 녀석을 보면 ‘내로남불러(naeronambuler)’라 부르겠다!” 하셨다. 시인의 위트에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 단어가 영어권 정치학 교과서에 실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선거구 변경), 필리버스터(filibuster·의사 진행 방해), 머드슬링잉(mudslinging·흑색선전), 머크레이킹(muckraking·사생활 캐기) 등 영미에서 흔히 쓰는 정치 용어는 모두 내로남불처럼 구체적 정치 상황에서 인구에 회자됐던 풍자와 해학의 신조어였다. 내로남불은 더 널리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 한마디에 근현대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근대국가 형성 과정은 낱낱이 쪼개져서 대립·투쟁하던 부족 단위 지방 권력을 해체하고 통일국가로 재편하는 거대한 통합의 역사였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전쟁을 야기했다.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 과정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에서만 650만명이 사망했다. 중국의 근현대사 역시 지속적 군사화 과정이었다. 1912~1928년의 짧은 기간에만 군벌 1300여 명이 출현해 대규모 전쟁을 140여 회 벌였다. 아직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지역 맹주들 사이의 부족 전쟁을 종식하는 과정이다.

전쟁으로 병합된 여러 지역 다문화의 인간들을 새로운 국가의 국민으로 만들려면 보편법 확립이 급선무다. 지역·부족·인종·성별·신분의 차이를 넘는 보편법이 없다면 근대국가란 있을 수 없다. ‘법 앞의 평등’이야말로 근대국가를 지탱하는 최고의 헌법적 가치다. 반면 신분·성별·가문·지역·직종으로 나뉜 전근대 사회에선 전통과 관습이 더 중시됐다. 공평무사한 보편법 확립보다는 “우리 가문, 우리 혈족, 우리 지역”이 더 우선시됐다.

 

전근대 부족 전쟁에 참여한 부족의 성원은 오로지 부족의 이익에 복무했다. 설령 잘못이 자기 부족에 있다 해도 집체적 생존을 위해 적대적 부족을 향해 총칼을 휘둘렀다. 부족 단위의 공동 생활에선 인류적 보편 도덕보다 부족의 계율, 부족장의 명령이 더 중시될 수밖에 없다. 조직의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마피아의 ‘오메르타(Omertà·묵계)’나 오야붕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야쿠자의 ‘기리(義理)’도 마찬가지다. 결국 내로남불의 뿌리는 전근대 부족주의와 암흑 세계의 불문율이다.

지난 4년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은 내로남불을 일삼아 왔다. 집권 세력 개개인의 사적 일탈보다 더 큰 문제는 자기편 내로남불러들은 무조건 다 감싸주는 대통령의 내로남불링이다. 부족민의 상처를 핥아주는 부족장, 대자(代子)를 안아주는 마피아의 대부(代父), 꼬붕의 뒷배를 봐주는 오야붕의 모습과 과연 다른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이 그토록 내로남불리시할 수 있나?

자신들만 민주 세력이라 믿는 허황된 선민의식, 스스로 ‘진보적’이라 여기는 오도된 자기 확신, 적대 세력과 사생결단한다는 낡은 운동권의 망념 때문이다. 마피아적 집단주의, 파당적 진영 논리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현 집권 세력의 상습적 내로남불링은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하는 반민주적 헌법 짓밟기다. 특히 통치자의 내로남불링은 법률을 도구 삼아 법치를 파괴하는 노골적 독재 행위다. 대한민국은 그들만의 부족국가가 아니다. 법의 지배를 받는 잘 발달된 자유민주주의 국민국가다.

어쩌다 ‘naeronambul’이 K정치의 키워드가 됐나? 해결책은 단 하나,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서서 ‘내로남불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명정대한 ‘내불남불 정권’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 그래야만 ‘naeronambul’이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실릴 때 법치 재건의 아름다운 고사로 기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