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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청년의 시대

Marine Kim 2021. 5. 25. 22:44

[만물상] 50대 청년의 시대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1.05.25 03:18

움베르토 에코의 ‘책으로 천 년을 사는 방법’에는 갈수록 젊어지는 세상에 대한 콩트가 실려 있다. 에코는 자신이 젊었을 시절 20대 중반이면 이미 ‘청년'은 넘어선 나이였다며 향후 펼쳐질 ‘50세 청년’ 세상의 모습을 그렸다. “말씀 낮추십시오. 저는 겨우 쉰 살입니다”라고 말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요즘 50대가 버스 앞쪽 경로석에 앉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20년 전만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51세 골프 선수 필 미켈슨이 그제 끝난 PGA 챔피언십에서 사상 첫 50대 메이저 우승 기록을 세웠다. 스무 살 아래 브룩스 켑카와 챔피언조로 나서 승리했다. 준우승한 남아공 루이 우스트히즌도 우리로 치면 40세다. 축구·농구 등 격렬한 종목을 빼면 40대 현역이 흔해지면서 노익장이란 말 자체가 어색해졌다. 체력 소모가 심한 테니스에서 나달·조코비치와 함께 세계 무대를 3분한 로저 페더러도 두 달 뒤면 40세다.

▶골프에서 나이가 문제되는 것은 근력보다는 순간 집중력 저하라고 한다. 미켈슨도 대회 전 “우승은 몸이 아닌 정신적 문제”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2030에 전혀 뒤지지 않는 장타와 함께 높은 집중력도 발휘했다. 스포츠 의학에선 미켈슨이 2030 못지않은 집중력을 유지한 비결로 체력 훈련을 꼽는다. 미켈슨은 껌 씹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씹는 행위가 뇌 혈류를 최대 40% 늘려 집중력을 높이고 뇌를 젊게 유지한다는 연구도 있다.

 

▶50대 메이저 우승은 미켈슨이 처음이지만 결코 그가 끝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60대 우승도 나온다. 이미 톰 왓슨이 목전까지 갔다. 도쿄 노인의학연구소가 2007년 87세 노인의 건강과 체력을 조사했더니 1977년 70세에 해당했다. 30년 사이 17세가 젊어졌다. 요즘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하면 아버지 세대의 신체·정신·사회적인 나이와 맞먹는다고 한다. 지금 87세는 아버지 세대의 61세인 셈이다. 유엔이 65세를 고령자 기준으로 정한 것이 1956년이다. 여기에 0.7을 곱하면 45세다. 65세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니란 얘기다. 정년 연장, 더 나아가 아예 정년을 없애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환갑' ‘진갑' 운운도 우스운 시대가 됐다.

▶세계에서 셋째로 평균 수명이 긴 홍콩은 노인을 ‘오래도록 젊다는 뜻’의 장청인(長靑人)이라 한다. 평균 수명 100세를 사는 ‘호모 헌드레드’가 인류를 규정하는 표현이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길어진 젊음을 어떤 열정으로 채우느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