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news

LG전자 고졸 발명왕이 개발한 ‘세계 최초’ 회전식 골프 연습기

Marine Kim 2022. 3. 30. 13:32

LG전자 고졸 발명왕이 개발한 ‘세계 최초’ 회전식 골프 연습기

[창업노트 훔쳐보기] 회전식 디지털 퍼팅 연습기 ‘그린 퍼팅 마스터’ 개발기

임수민 인턴
입력 2022.03.30 06:00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거리 연습에 초점을 맞춘 퍼팅 연습기를 개발한 정범식(64) 대표. /더비비드

골프 여제 박인비는 “골프는 역시 퍼팅”이라는 말을 했다. 2년 동안 퍼팅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 마침내 LPGA투어에서 통산 20승을 달성하자 털어낸 속내였다. 컵에 공을 넣기 위해서는 정확한 거리 감각과 방향 조정이 생명이다.

많은 퍼팅 연습기가 시중에 등장했지만 대부분 방향 연습만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해도 막상 필드에 나가면 거리를 예측 못해 적응을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거리 연습에 초점을 맞춘 퍼팅 연습기를 개발한 정범식(64) 대표의 ‘그린 퍼팅 마스터’ 개발 노트를 엿봤다.

◇유일한 회전식 퍼팅 연습기

골프용품 개발 전문 업체 ‘세영골프’의 대표 상품 ‘그린 퍼팅 마스터’. /더비비드

골프용품 개발 전문 업체 ‘세영골프’의 대표 상품 ‘그린 퍼팅 마스터’는 골프 퍼팅 연습을 돕는 기기다. 골프에선 공을 쳤을 때 그린 위에서 공이 ‘어디’로 굴러가는지 아는 것 만큼, ‘얼마나’ 굴러가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린 퍼팅 마스터는 이런 ‘거리 감각’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원형 퍼팅 연습기에 골프공이 매달려 있다. 자세를 잡고 공을 치면 공이 360도 회전하며 최대 13m까지 거리를 측정한다. 좁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퍼팅 연습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보통 퍼팅 연습기는 길쭉한데, 저희 제품은 원형이라서 1평 남짓한 공간에서도 퍼팅 연습이 가능합니다. 이런 방식은 세계 최초예요.” 온라인몰(https://bit.ly/3qIaIOV)에서 한정기간 공동구매 행사중이다.

◇LG전자 20년 근무한 ‘발명왕’

정범식 대표는 영월공업고등학교 전자과를 졸업한 후 LG전자에 입사했다. 주로 전자 제품 생산을 위한 장비를 만들다 문제가 생기면 방법을 찾아내는 역할이었다.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회사 내에서 ‘박사’라는 호칭까지 붙었다. 각종 부품을 가공할 때 가공 위치를 쉽고 정확하게 찾는 보조 기구인 ‘지그’를 개발하고 공로를 인정받아 LG전자가 직원에게 주는 ‘발명왕’도 받았다.

최초이자 유일한 회전식 퍼팅 연습기를 개발한 정 대표. /더비비드

-회사를 나와 창업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여 년 가까이 회사에 다니다 보니 이제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2년 창업한 뒤 주로 삼성이나 현대 등 대기업 제품을 위탁 제조하는 업체로 출발했습니다.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퇴직금도 다 잃을 만큼 고됐어요. 차라리 나만의 장점인 ‘개발’에 집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5년부터 골프용품 개발을 시작하게 됐어요.”

-왜 골프 분야였나요.

“2005년 거래처 사람의 제안으로 골프를 시작했어요. ‘연습’이 중요한 운동인데 그때만 해도 마땅한 기구가 없었어요. 덕분에 잠재돼 있던 개발 욕심이 샘솟았죠. 지그를 개발해서 제품 불량을 줄인 것처럼, 골프 연습기를 개발해서 제대로 골프 실력을 늘릴 수 있는 연습 기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 ‘회전식 디지털 퍼팅 연습기’ 개발 노트

정범식 대표가 그린 퍼팅 연습기로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다. /더비비드

기존 퍼팅 연습기의 문제점부터 분석했다. 퍼팅 시 거리감과 방향감 둘 다 중요한데, 기존 제품은 ‘방향감’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 연습도 실전처럼 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라 (발상과 기획: 2015년~)

-제품 개발 계기가 뭔가요.

“퍼팅은 오로지 사람이 치는 기술에 좌우돼요. 자신만의 노하우와 기술을 갖기 위한 연습이 중요하죠. 기존 아날로그식 퍼팅 연습기는 기다란 매트에서 홀에 공을 넣는 연습밖에 못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필드에 나가면 거리감이 없어 적응을 못하고 헤매기 마련이죠. 필드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연습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거리 연습이 왜 중요한가요.

“퍼팅은 거리 감각이 있어야 정확한 타격이 가능해요. 직관적인 거리 감각을 키우려면 제대로 된 연습 기기가 필요하죠. 예를 들어 초보자가 골프장에 가면 프로가 방법을 알려줘요. 설명을 들을 때는 느낌으로 알 거 같은데 막상 혼자 연습을 하며 나도 모르게 방향이 다르게 엇나갈 확률이 높아지죠. 방향뿐 아닌 거리 감각까지 키울 수 있는 연습기기가 필요한 이유였어요.”

직접 제품을 수리하고 있는 정범식 대표. /더비비드

-거리감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좁은 공간에서도 거리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연습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떠올린 아이디어가 ‘회전식’이었습니다. 공을 쳤을 때 원을 그려 돌게 하면 거리 측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퍼팅 연습기를 동그랗게 만들고 그 중앙에 고정 장치를 둬서 가느다란 막대에 공을 매단 뒤 한자리에서 뱅뱅 돌게 하는 거죠. 한 바퀴 돌아가면 1m, 두 바퀴 돌아가면 2m 이런 식으로요. 주변에 얘기하니까 좋은 아이디어 같다며 개발해보라 하더군요. 특허부터 내고 제품화에 들어갔습니다.”

2. 확신이 있다면 10년이 걸려도 도전해라 (개발과 설계: 2016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까진 좋았는데, 완제품을 출시하는 데 10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혼자서 사업을 운영했던데다 당장 돈벌이가 되는 다른 골프용품 제조에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제품 측면에서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린 원인은 뭔가요.

“기존에 없던 제품이어서 여러 문제에 부딪혔어요. 디자인부터 기기 구성 원리, 골프공을 오차 없이 회전하는 방법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어요.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며 제품을 완성하고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더군요.”

 
완제품을 출시하는 데 10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더비비드

-어떤 점이 문제였나요.

“골프공이 돌아갈 때 거리를 측정하는 고정축이 문제였어요. 골프공을 치면 기기가 흔들려서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거든요. 기기 중심축을 잡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정축 밑 부분에 4개의 지지대를 만들었는데 부품을 수없이 교체해가며 정확도를 높였어요. 결정적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부품을 교체한 뒤 제대로 축을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

-거리를 측정하는 원리는 무엇인가요.

“골프채로 공을 치면 공이 고정축을 회전하면서, 그린으로 치면 공이 굴러간 거리가 측정됩니다. 중심축에 있는 광센서가 지나가는 공 스피드를 감지해 1~13m까지 거리를 디지털로 알려주죠. 느림(2.0m), 보통(2.6m, 국내 골프장 평균 스피드), 빠름(3.2m) 등 3가지 그린 속도를 설정해서 훈련할 수 있어요. 정확도가 중요한 만큼 따로 실전 검사용 로봇을 개발해서 거리 측정 실험을 했습니다. 덕분에 오차 없이 거리 기준을 잡을 수 있는 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3. 소비자에게 팔기 전 가족과 친구들에게 먼저 팔아라 (제품 생산, 테스트: 2016년 9월~)

정 대표는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품 출시 전 가족이나 지인에게 제품을 주고 꼭 피드백을 받아보라 조언했다. 오랜 개발 과정 끝에 제품화에 성공했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를 발견하면서 대량 생산했던 제품을 폐기해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완제품으로 나오기 직전의 모습. /더비비드

-어떤 문제 때문이었나요.

“골프채로 공을 고정해둔 중심대를 치다 보면 가루가 나오는 거예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포에 있는 한국전기시험 연구소를 찾아가 문제 해결을 의뢰 했습니다. 열처리를 너무 강하게 해서 강도가 약해졌다는 답을 받았어요. 이미 3000개를 생산한 상태에서 날벼락과 같았죠. 다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000만원 정도 손해를 봤어요. 심기일전해서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찾아다니면서 열처리 테스트를 다시 했어요. 파주에 있는 한 공장에서 샘플을 생산해 보니 중심대를 쳐도 가루가 안 나오더군요. 덕분에 완벽하게 골프공을 매달 수 있는 부품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테스트를 해보지 않았다면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겠네요.

“네, 맞아요. 제품을 개발하면 주위 분들에게 써보라고 해야 합니다. 남보다 더 냉혹하고 솔직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요. ‘너라면 사겠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변을 받은 뒤 제품을 출시해야 합니다.”

제품에 대해 계속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는 판서들. /더비비드

2017년 제품을 출시했다. 좁은 공간에서도 퍼팅을 할 때 중요한 방향, 거리 감각을 키울 수 있다. 온라인몰(https://bit.ly/3qIaIOV)에서 한정기간 공동구매 행사중이다.

-다른 제품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회전식 연습기는 처음이라 그 자체만으로 이점이 있어요. 공이 자동으로 돌아오기에 다시 주우러 가지 않아도 되고요. 프로들은 공을 하루에 1000개씩도 치는데 공이 고정돼 있으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연습을 이어갈 수 있어 자세 연습도 확실히 되고요. 또 한쪽으로만 연습할 수 있는 다른 퍼팅 연습기와 달리 왼손잡이랑 오른손잡이 가리지 않고 누구나 편하게 연습할 수 있어요.”

4. 생생한 목소리 들으려면 박람회로 가라 (판매 전략 수립과 판매: 2017년 11월~)

매년 10개 이상의 박람회를 참가하며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제품을 개선하고 있다. 낯선 제품이기 때문에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설명하는 것이 주효한 홍보전략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골프용품 개발 전문 업체 ‘세영골프’의 대표 상품 ‘그린 퍼팅 마스터’. /더비비드

-제품을 처음 본 소비자 반응은 어땠나요.

“첫날 제품을 하나도 못 팔았어요. 공이 회전하는 게 무슨 퍼팅 연습기냐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죠.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제품이다 보니, 받아들이기까지 심리적 장벽이 있더라고요. 소비자 의견을 계속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꾸준히 골프 박람회에 참가해 제품을 홍보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설득했나요.

“이 제품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했어요. 나만의 기준 거리를 만들어야 퍼팅이 쉬워진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했죠. 비싸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가격도 조정하고요. 처음에는 의심쩍은 눈으로 보시던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도 사람인지라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 조금 위축된 순간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한 골프 프로 선수가 유심히 저희 기기를 지켜보더라고요. 제품을 하나 구매하시더니 한 달 뒤에 다시 전화가 와서 제품을 또 보내 달라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제자에게 선물해서 연습을 시켰는데 9홀 기준 46타 치던 사람이 36타로 10타수나 줄였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그때 이 제품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그 뒤로 수원시에서 수출개척지원단에 추천돼 해외 박람회로 영역을 확장해나갔습니다.”

◇10년을 버텨낸 이유

정범식 대표 뒤로 보이는 상장과 특허증들. /더비비드

좋은 제품을 개발했다고 해서 늘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건 아니다. 해외 시장을 노리고 홍콩,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수출길이 잠시 중단됐다.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 한마디를 한다면요.

“제품을 개발한다면 문제 의식을 느꼈던 첫 순간을 가슴에 지니고 있어야 돼요. 개발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세상에 없는 골프 연습 기기를 만들겠다는 초기 생각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거든요. 이 점을 명심하고 난관을 극복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정범식 세영골프 대표 주요 경력

-1958년생, 영월공업고등학교 전자과 졸업
-1978년, LG 전자 입사
-1992년 10월, 대기업 제품 위탁 제조업체로 ‘범일전자’ 창업
-2005년, 골프 제품 개발 시작
-2017년, ‘그린 퍼팅 마스터’ 출시
-2019년 법인명 ‘세영골프’로 변경
·개발비용: 1억원
·첫 아이디어 기획부터 출시까지 걸린 시간: 10년
·실제 개발기간: 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