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율법 교사의 질문에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봅니다. 자신의 삶 안에서 늘 마주치는 불확실성과,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인간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이 두려움을 이겨 내려고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찾던 하느님의 모습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하느님을 “절대적 타자”, 곧 우리와 완전히 다른 분으로 인식했던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분과의 계약, 곧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바칠 만한 절대적 충실함은 오히려 인간에게 더 큰 짐을 지워 줍니다.
반면, 우리에게 다가오신 메시아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분이 아니고, 하느님의 모상이시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 드려야 할 봉헌도 율법 안에서의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들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은 비록 무시와 경멸을 당하는 사람이었지만, 종교적으로 거룩한 직분을 가진 이들이 그냥 스쳐 지나갔던 그 가엾은 사람에게 다가가 치료해 주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 쉴 곳을 마련해 줍니다. 모든 것에 앞서 그의 근본적인 선택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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