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 전파
한말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에는 김해의 백월산에 있는 죽로차(竹露茶)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인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이 적혀 있다.
또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 중 <흥덕왕 3년 12월조>와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일연선사(一然禪師)의 《삼국유사》에 전재된 <가락국기> <명주 오대산(溟州五臺山)의 보질도태자전기(寶叱徒太子傳記)> <오대산의 오만진신(五萬眞身). <월명사(月明師)와 도솔가(兜率歌)> <경덕왕(景德王)과 충담사> 등의 문헌과 중국에서 부처님께 차를 달여 공양하는 종파로서 신라에 전래된 연대(天台宗은 540∼575, 律宗은 602, 密宗은 635, 華嚴宗은 671, 禪宗은 826년경) 등에 의하여 차씨가 전래된 828년 이전에도 신라에서는 차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차의 생산지는 남부지방에 국한되어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므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차가 수입되었으며, 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차도 수입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1292년에는 고려시대의 향차(香茶)가 원나라에, 1627년, 29년, 36년에는 천지차(天地茶)와 작설차(雀舌茶) 50봉(封)씩이 후금에, 1637∼45년에는 차 1,000포(包)씩이 청나라에, 1923∼45년에는 정읍(井邑)의 천원차(川原茶)가 오사카[大阪]에, 1944년경 보성(寶城) 차밭에서 만든 5만 개의 전차(錢茶)가 몽골[蒙古]에 보내졌다. 또 73∼77년에는 대한다업과 마루베니[丸紅]회사와의 계약에 의하여 매년 10∼15 t의 보성녹차가 일본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차 전파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