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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 뺨치는 적중률, 몸값 100억 '일타 강사'

Marine Kim 2016. 11. 23. 07:49

점쟁이 뺨치는 적중률, 몸값 100억 '일타 강사'

교육을 위해 이사까지 불사하는 '맹모삼천지교'는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더 익숙한 말이다.

교육 트렌드의 첨단에 서있는 학원강사의 인기도 자연스레 뜨거워졌다.

해외 축구스타 못지 않은 몸값을 자랑하는 '일타 강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걸어 다니는 중소 기업' 일타 강사]
 

노량진 공시족(公試族)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 ‘혼술남녀’ 한 장면. 파란색 포르셰를 타고 출근한 국가고시 국사영역 ‘일타 강사’ 진정석(하석진)의 몸값은 계약금·연봉을 합해 100억원대다. 손수 집필한 교재의 인세와 인강(인터넷 강의) 매출은 별도 수입. 적중률이 높아 “신내림 받았다”고 불리는 진 교수(대형 학원은 강사를 ‘교수’라 부른다)의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 앞은 새벽부터 장사진이고, 강의를 생중계해주는 ‘모니터 교실’만 수십 개에 달한다. 200여 명이 들어찬 첫 현강(현장 강의)에서 마이크를 집어든 진정석은 말한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제가 보내는 눈빛, 제가 풍기는 냄새까지 반드시 시험에 나옵니다. 토씨 하나 놓치지 말고 잘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공시(公試) 학원 강사 역을 맡은 하석진(왼쪽)과 박하선. /tvN

‘일타’란 담당 과목에서 최고 매출을 기록한 강사를 칭하는 사교육 업계 은어다. 숱한 강사 가운데 일선(一線)에 선 모습이 야구에서 공격 선봉장 역할을 하는 ‘1번 타자’와 비슷하다고 해 붙여졌다. 인터넷·현장 강의 수강생 수와 매출, 교재 판매량 등을 합산해 ‘랭킹 1위’를 차지한 강사만이 누리는 명예이자 60만 대입 수험생과 26만 공시생이 달아준 훈장(勳章). 과거엔 ‘업계 1위’를 일타로 봤지만, 메가스터디·이투스·스카이에듀 등 온·오프라인 강의를 모두 제공하는 대형 학원이 늘면서 현재는 ‘학원 내 매출 1등 강사’에게도 일타라는 호칭을 붙여 수강생 모집에 활용한다.

살인적인 일정 속 ‘100억 돈방석’

드라마 속 진정석의 ‘100억 계약’은 현실성 있을까. 스카이에듀 관계자는 “일타 강사 연봉은 ‘비공개’가 업계 불문율”이라면서도 “연간 100억 이상도 가능한 수치”라고 했다. 일타 강사에게 일시불로 지급되는 계약금은 연간 10억~15억원 수준. 여기에 시급 20만원 내외 ‘종합반’ 현장 강의료, 전체 수강료 중 절반을 가져가는 ‘단과반’ 현장 강의료, 전체 매출의 40%를 가져가는 인터넷 강의료, 한 권마다 10% 남짓한 인세를 합친 금액이 이들의 총 연봉이다. 한 학원과 독점 계약하는 인터넷 강의 수입은 대체로 고정돼 있고, 현장 강의 수에 욕심을 낼수록 총 수입이 높아지는 구조다.

강의·시험 분석·학생 상담에
365일 살인적인 일정

고(高) 수입인 만큼 업무 강도는 센 편. 국가고시 일타인 한 강사는 “365일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한다”고 말했다. “4시간 분량 강의를 ‘한 타임’으로 본다. 일주일 중 엿새를 일한다고 할 때 나흘은 두 타임을, 이틀은 한 타임을 소화한다. 정규 수업뿐 아니라 교재 감수, 매달 있는 공무원 시험 분석 및 해설, 해설 특강, 수업 준비, 학생 상담까지 하면 사생활이 없다”고 했다. ‘혼술남녀’에서 국어강사 역을 맡은 박하선은 종영 인터뷰에서 “작품 준비하면서 엿본 노량진 학원 강사의 삶은 날마다 치열했다. 뒤처지면 안 되는 무한 경쟁의 연속”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일타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표본이다. 학벌·전공이 이름값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일타를 ‘보장’하는 스펙은 없다. 노량진 입성 자체도 험난하다. 수능 일타인 한 강사는 “최소 지방 원정 강의 경험이 있고, 풍부한 수능·고시 강의 이력이 있어야 한다. 유명 강사를 보좌하는 조교로 교재 집필 등을 할 경우 이들의 소개로 진입할 수도 있으나 극히 드문 형태다. 어떤 과정으로 진입하든 시강(시험 강의)을 거쳐 냉엄한 평가 후 선택된다”고 했다.

‘혼술남녀’에서 이름값 없는 국어강사 박하나(박하선)의 시급은 3만원. 노량진 갓 입성한 강사들의 시급도 드라마처럼 3만~5만원 선이다. 시급 없이 ‘비율’로 받는 경우도 있다. 수강생이 10명인 박하나가 ‘비율’로 정산을 받는다면 ‘수강생 수(10명)’와 ‘전체 수강료 중 절반(5만~6만원)을 곱한 50만~60만원 사이가 월급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량진으로 이력서와 자신의 교재를 들고와 ‘급여도 수입도 필요 없으니 강의만 하게 해달라’는 강사도 많지만 열이면 열, 이들이 듣는 대답은 ‘노(No)’다. 밑바닥부터 올라가는 학원 업계의 특성상 일타는 자수성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출제 문제 예상하는 ‘용한 점쟁이’

일타는 흔히 ‘용한 점쟁이’로 비유된다. 이목 집중시키는 ‘언변’과 출제 문제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점괘’가 필요해서다. 수능이나 국가고시는 한 문제로 당락이 좌우되는 터라 수많은 강사 가운데 일타가 되려면 무엇보다 점쟁이 뺨치는 ‘적중률’이 탑재돼야 한다.

국사 과목 일타 강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설민석 강사. /조선일보 DB

일타와 이타(업계 2위), 삼타(업계 3위)의 간극을 멀게 하는 것도 바로 ‘적중률’. 지위를 수성하려는 일타와 왕좌를 탈환하려는 도전자가 맞붙는 ‘타이틀 방어전(戰)’에서 유리한 선수는 언제나 일타다. 일타에겐 비서 역할을 하는 ‘조교’가 5~10명 남짓 붙기 때문. 강의 외 부차적인 일은 ‘새끼 강사’로 불리는 조교가 처리하는 구조라 일타의 아성(牙城)은 공고해진다. 아성에 균열을 일으키려면 일타 못잖은 강의 실력과 적중률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원 업계 발 들인 지 10년 만에 노량진으로 입성해 6년 후 수능 일타가 된 한 강사는 “강의만 재밌게 해선 위로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출제 경향 파악하고 예상 문제 뽑기 위해 하루 3~4시간만 자며 공부했다. 일타가 된 후엔 자금과 시간을 더 투자하고 있다. 위협받지 않으려면 더 치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적중률’에 욕심 내다가 탈이 나기도 한다. ‘가비’라는 별명으로 10여년간 국어 일타로 이름을 날렸던 이모(48) 강사는 6월 치러진 대입 모의평가를 앞두고 평소 친분이 있던 고교 교사에게 3억원 상당 금품을 건네고 시험지를 불법 입수한 혐의로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모의 수능 유출 국어 교사, 학원강사로부터 3억 받아…다른 교사들에 '재하청'"

대형 학원 명운 달린 ‘일타’ 이적(移籍) 경쟁

서울에만 20여명…프로스포츠
못지않은 영입 경쟁

이적 시장 열기도 뜨겁다. 다시 ‘혼술남녀’ 1화의 한 장면. 노량진 한 횟집에서 조우한 진정석의 전·현 학원 원장 두 명은 그의 이적을 두고 승강이를 벌인다. 일타를 빼앗긴 원장(김희원)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우리는 곡(哭)소리가 가득한데 너희는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남의 학원에서 키워놓은 스타 강사 쏙쏙 빼가니까 좋으냐”며 소리치지만, 일타를 차지한 원장(김원해)는 “업계 1위를 위하여!”란 건배사로 승리를 만끽한다.

드라마에선 약 오른 김희원이 김원해에게 회식비를 떠넘기고 도망가는 귀여운 복수로 끝나지만, 현실에선 대형 학원의 명운(命運)을 두고 법정 공방도 불사하는 쟁투가 벌어진다. 연 매출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일타의 이적이 업계 판도를 뒤바꿔놓기 때문이다. 지난 7일엔 ‘삽자루’란 별명으로 유명한 한 수학 강사가 지난해 5월 학원이 ‘불법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계약 조항을 어겼다는 이유로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가 이투스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해 126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인터넷 강사 삽자루(본명 우형철ㆍ46). /조선일보 DB

재작년엔 수학 일타인 신승범 강사가 이투스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전 소속이던 메가스터디로부터 ‘강의 서비스 제공 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스카이에듀 관계자는 “FA(Free Agent·자유계약 신분)가 된 일타의 영입 경쟁은 여느 프로 스포츠 못잖게 치열하다. 일타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자 대형학원 하나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생명력 가진 ‘브랜드’”라고 말했다.

'학종 시대'에도 끄떡없는 사교육 시장

일타 강사 의존도 더 높아져

사교육 전성시대는 현재진행형이다. 대입(大入)의 경우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시대로 전환되며 사교육 감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고교생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에 따르면 사교육비는 학종이 본격화된 2010년 21만8000원에서 지난해 23만6000원으로 되레 상승했다. 지난 2월 교육부가 발표한 ‘2015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메가스터디·이투스·스카이에듀·디지털대성 등 대형 학원 4곳의 매출액은 2014년 4630억원에서 2015년 5030억원으로 증가했다. 학종 이후에도 여전히 사교육이 강세인 이유에 관해 한 수능 일타 강사는 “내신 망치면 복구할 기회가 없는 학종 세대가 종국에 돌아오는 입시 제도는 결국 수능”이라며 “올해 ‘불수능’ 여파로 ‘수능 복귀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타를 비롯한 유명 강사들의 아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능―EBS 70% 연계 발표 후 사교육 위기론이 일었지만, 유명 강사들 수입은 오히려 늘었다. 파이(pie)가 작아지면 타격은 아래서부터 받는다. 수능 선발 비율이 줄어들면서 소수 유명 강사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수능·논술)의 한 축을 담당하다 최근 입시 비중이 줄어든 ‘논술’도 마찬가지. 대치동의 한 논술 강사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대입에서 논술 비중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시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 수강생 쏠림 현상이 심화된다. 실력 없는 강사는 과목을 바꾸거나 퇴출 수순을 밟는다. 유명 강사에겐 되레 호재(好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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