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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소소한 스캔들 /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Marine Kim 2016. 11. 19. 07:59

태평로] 이토록 소소한 스캔들

  • 입력 : 2016.11.18 03:15

김기철 문화부장
야단났다. 이렇게 가다간 대통령 비선(秘線) 세력의 국정 농단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길라임'과 '민머리'로만 대중의 기억에 남게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전인 2011년 차움의원을 여러 차례 찾아 진료를 받으면서 드라마 '시크릿 가든' 여주인공 '길라임'이란 가명을 썼다는 게 화제를 모았다. 배우 하지원이 연기한 길라임은 어릴 적 소방관이던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어렵게 스턴트우먼의 꿈을 키워가는 강인한 여주인공. 2010년 늦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1월까지 방송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35%를 넘는 인기를 누렸다. 대통령이 '길라임'을 가명으로 쓴 걸 보면, 이 드라마의 열혈 팬이었던 모양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중대한 국사(國事)를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여성에게 의존해 결정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연설문이 됐건 인사(人事)가 됐건, 그럴듯한 전문가와 의논했다면 대통령이 이토록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스캔들이 피부에 더 와 닿는 것은 입시 비리, '태반 주사', '흙수저', 옷, 가방처럼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생활 밀착형 뉴스가 쏟아지며 공분(公憤)을 샀기 때문이다. 비자금 사건이나 무기 도입 비리, BBK 사건 같은 역대 정권의 비리 또는 의혹을 이해하는 데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이번 스캔들은 듣기만 하면 호기심을 자극하고, 핏대 올리게 하는 흡인력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정부와 기업 시스템을 망가뜨린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본질을 파고드는 데 걸림돌이 됐다.

서울 강남구 차움의원 모습. /뉴시스
싸이와 이효리 뮤직비디오를 찍고 광고계에서 꽤 유명하다는 차은택이 문화계 배후 세력으로 등장한 것도 스캔들을 연성화(軟性化)하는 데 한몫했다. 대통령 비선 실세인 최순실의 수족이 돼 자기 사람을 정부 곳곳에 심고, 이권 사업을 챙기기에 바빴던 차은택의 행위는 몰염치했다. 그런데 며칠 전 법정에 출두하는 과정에 민머리가 드러나면서 범죄행위에 대한 비판은 약화되고 사건 자체가 희화화됐다.

차은택이 외삼촌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은사(恩師)를 문화체육부 장관에 앉힐 만큼 위세가 대단했으니 '실력자' 행세를 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를 '문화계 황태자'로 부르는 게 온당한지 모르겠다. '최순실 일당'의 행동대장 격인 차은택이 잠시 문화계를 놀이터 삼아 분탕질 쳤을 뿐이다. 문화 예술인들이 그를 이 분야를 대표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진 않을 것 같다.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연예인들 이름을 거론하며 무책임한 폭로가 이어지는 것도 초점을 흐리는 일이다. 국회의원이 구체적 근거를 내놓지 않고 '○○가 최순실과 관련 있다더라' '특혜를 받았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을 남발하면서 '억울하면 고소하든지' 식(式)으로 나오는 건 꼴불견이다. 매일 쏟아져나오는 '특종'을 확인 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버거운데, '정보'라는 이름으로 묻지마식 '지라시'까지 활개 치는 건 말 그대로 공해다.

광복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며 성공의 역사를 써온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비선 세력의 권력 농단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사생활을 파고드는 가십을 곁눈질하지 말고 이번 사건을 국가와 지도자의 품격(品格)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키워드 정보] MB는 당선인 시절 'BBK 특검' 방문조사 받아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