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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질책하는 박정희 면전서 이병철이 한 말

Marine Kim 2016. 12. 11. 07:43

Why] 탈세 질책하는 박정희 면전서 이병철이 한 말

  • 남정욱 작가
  • 입력 : 2016.12.10 03:00

[남정욱의 명랑笑說]

"지금 같은 戰時 세제론 법대로 세금내면 망해"
직언하며 의기투합…전경련 탄생시킨 계기
손자代에 문 닫을 위기

일러스트
소통과 변화가 필요하다며 사장이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으면 뭐든 편하게 이야기해 보라 자리를 깔아줄 때가 있다.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속에 있는 소리를 다 털어놓았다가는 다음 날부터 회사 다니기 힘들어진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게 상책이다. "사장님을 뼛속까지 존경합니다. 다만 그렇게 말하면 꼭 아부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 주저했는데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다음 날부터 회사 생활이 상쾌해진다. 마주치면 어깨도 두드려 준다. 산다는 건 가끔 이렇게 현명하게 비굴해지는 것이다. 물론 진심을 털어놓고도 좋게 끝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결코 흔치 않다.

1961년 6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마주 앉았다. 당시 이병철은 부정축재자 제1호로 낙인찍혀 회사도 자기도 간당간당하는 처지였다. 박정희는 이병철을 포함한 부정축재자 11명의 처벌 문제를 놓고 어떤 이야기든 기탄없이 말해보라며 운을 띄운다. 이병철은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부정축재자로 지칭되는 기업인에게는 사실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란다고 정말 막 하네, 박정희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서슬, 쇠붙이로 만든 연장이나 유리 따위의 날카로운 부분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그 시절 박정희는 그야말로 서슬이 시퍼런 권력자였다. 최소 재떨이가 날아오거나 최대 평생 감옥에 처넣어도 하나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박정희의 반응을 무시하고 이병철은 말을 이었다. 현행 세법은 수익을 뛰어넘는 세금을 징수하도록 규정한 전시(戰時) 세제라서 법대로 세금을 납부했다가는 살아남을 기업이 없다고. 당장은 11위 안에 드는 기업인들이 구속되어 있으나 그 이하의 기업인도 실은 11위 내에 들려고 했지만 노력이나 기회가 부족했을 뿐 결코 사양한 것이 아니라고. 말없이 이병철을 쏘아보던 박정희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물었고 경제개발과 기업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이어진다. 산업화 시대를 여는 혁명가와 기업가의 협력은 이렇게 물꼬를 텄다. 정말 드물고 희귀한 직언 성공 사례다.

이병철을 중심으로 경제재건촉진회가 결성됐다. 그게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명하여 오늘까지 온 게 55년 전경련의 역사다. 그 전경련이 혁명가의 딸과 기업가의 손자(孫子)에 의해 문을 닫게 됐다. 손자는 구태(舊態)를 버리고 정경유착을 다 끊겠다며 전경련 조사(弔辭)를 낭독했다. 정경유착? 글쎄다. 소생의 생각으로는 유착이 아니라 정경협력이었다. 이병철은 경제 발전의 고전적인 코스를 밟을 시간이 없다며 순서를 바꾸자고 했다. 공업화를 먼저 하고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진국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과 정과 성과를 손자가 구태로, 정경유착으로 딱 찍어 말해버렸다. 반성은 하되 당당하게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고 정치권력에 경제에서의 철수를 주문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손자는 국회 청문회를 통과했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청문회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의 소중한 성과 하나가 또 날아갔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은 빛을 잃어가는 중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09/20161209013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