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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국민들이 가장 행복한 이유

Marine Kim 2015. 5. 3. 16:17

 

알랭 드 보통 매뉴얼(3)-행복

책시렁: 드 보통 매뉴얼(3)-행복

※스위스 태생의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46)은 ‘일상의 철학자’로 불린다. 우리 주변에 흔한 사물이나 생각에 인문학적 렌즈를 들이대 재발견하는 기쁨을 선물해온 이야기꾼. ‘알랭 드 보통 매뉴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이 남자의 생각 그 세 번째 글감은 행복(happiness)이다.


유엔이 지난 23일(현지시각) 발표한 ‘2015 세계행복지수’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984점을 받아 158개국 중 47위를 차지했다. 2013년보다 6계단 하락하고 말았다. 2년 전 한국인보다 덜 행복했던 이웃나라 일본인은 이번엔 46위(5.987점)으로 우리를 살짝 앞질렀다. 0.003점 차이니까 ‘도찐개찐’인가. 유엔은 GDP, 기대수명, 관용의식, 갤럽이 실시한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과 선택의 자유, 부패지수 등을 0~10점까지 점수를 매겨 국가별 행복지수를 산출한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10시간쯤 날아가야 하는 스위스(1위·7.59점)에 살고 있었다. 세계 경제를 움직인다는 미국(15위)이나 중국(84위)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유명한 철학자를 낳은 그리스(102위)도 아니었다. 2013년 조사에서 1위였던 덴마크는 3위로 밀려났고 아이슬란드가 2위, 노르웨이가 4위, 캐나다가 5위로 나타났다. ‘2015세계 행복지수’에서 북한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가장 불행한 나라는 토고(158위)로 나타났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슬픔이 주는 기쁨'
알랭 드 보통이 쓴 '슬픔이 주는 기쁨'
스위스는 알랭 드 보통의 모국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그는 에세이 ‘슬픔이 주는 기쁨’(청미래)에서 “지난 200년 동안 서양 세계에서 취리히만큼 철저하게 유행을 타지 않는 곳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한다. 진지한 찬사다. 우리는 보통 ‘이국적’이라는 말을 낙타나 피라미드와 연결시키지만 이 작가는 “뭐든지 다르고 또 바람직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덧붙인다.

가장 행복한 나라 스위스에서 취리히는 ‘찬란하게 따분한 도시’다. 거리는 고요하고 깔끔하다. 드 보통은 “전체적으로 아주 깨끗해서 점심으로 보도블록을 깨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썼다. 어쩌면 일부러 벽에 욕을 쓰거나 비명을 질러 조금 흔들어놓고 싶은 곳일지도 모른다. 드 보통은 여자친구들이 취리히에 흥미를 가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를 향해 어머니는 “따분해하는 사람은 주로 따분한 사람”이라는 비범한 지혜를 들려준다.

“나는 자신의 내부가 흥미로워 굳이 도시까지 흥미롭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원했다. 정열의 샘에 늘 가까이 있어서 도시가 재미없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사람 말이다. 삶의 어둡고 비극적인 면을 잘 알고 있어서 취리히의 고요를 고맙게 생각할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따분한 장소의 매력에 대해 들려주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이를테면 머리에 이가 없는지 확인해주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우리 세계 어디에나 있어 흔히 무시해버리는 것들에서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드 보통 말마따나 안타깝게도 이 점은 계속 잊혀간다. 우리는 매일 아이의 머리를 빗질하고 이부자리를 펴는 것이 경이로운 일임을 잊어버린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평범한 삶’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이렇게 썼다.

“적의 방어선을 뚫고 외교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화려한 행위이다. 그러나 꾸짖고, 웃고, 사고, 팔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가족과 함께 상냥하고 정의롭게 사는 것, 늘어지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더 주목할 만한 일이다. 더 드물고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그런 한적한 삶에서 이행해 나가는 의무들은 다른 삶의 의무들만큼이나 어렵고 또 긴박한 것들이다.”(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알랭 드 보통이 쓴 '행복의 기원'
알랭 드 보통이 쓴 '행복의 기원'
철학자 탁석산이 쓴 책 ‘행복 스트레스’(창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1886년 10월 4일자 한성주보(漢城週報)에 ‘행복’이란 낱말이 처음 등장했다. 300년 전에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신의 은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누구나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드 보통의 말처럼 “이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그렇게 신을 대체하며 ‘세속종교’가 되었다.
탁석산은 “지금 행복과 불행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은 개인주의”라고 진단한다. 신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개인은 고독해졌다. 반면,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시대는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부른다.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로 행복하지 않은 현실 사이의 괴리를 행복이라는 추상명사가 메워주는 셈이다.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하고 ‘좋아요’나 ‘RT(리트윗)’를 누르며 ‘싸구려 인정’에 목매지만 외롭다는 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는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은메달리스트는 아깝게 놓친 금메달 생각에 속이 쓰리다. 동메달리스트는 표정이 밝다. 정말 한심한 선수는 4위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교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진다. 여성들이 패션잡지를 보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비교 때문이다.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을 쓴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의 과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첫 시간에 늘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희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사건은 무엇이냐?” 강좌를 개설한 16년 전부터 해마다 1위는 한결같다. ‘복권 당첨.’ 하지만 미국에서 100억원짜리 로또를 맞은 21명을 추적해 당첨 1년 뒤 행복감을 조사했더니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복권 당첨=행복’은 답이 아닌 것이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왜 ‘경제수준과 행복이 동행한다’는 일반론을 거스를까. 한국인은 행복의 잣대를 자신 안에서 규정하지 않고 획일적이고 사회적인 잣대를 쓰기 때문이다. 한국심리학회의 2011년 ‘한국인의 행복’ 조사도 그렇게 나타났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내가 행복하다고 할 만한 삶을 살고 있나’ 자문하는 경향이 높았다. 서은국 교수는 “타인이라는 거울에 반사된 내 모습을 행복의 잣대로 삼는 것”이라며 “40대 남자라면 자식이 어떻고 직함이 어떤지로 행복을 평가하기 때문에 승자(勝者)는 극소수”라고 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까닭은 복지나 GNP 때문이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결정적인 것엔 참견 안 하는 개인주의적 철학, 자유 때문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