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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 뼈는 몇 개?"… 조선시대 바다 생물을 기록하다

Marine Kim 2015. 5. 5. 13:24

정약전 '자산어보'

실학자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
약 14년간 해양 생물 155종을 관찰, 생김새·요리법 등 생생하게 적어
바다생물 이름 짓고, 방언까지 표기… 백성 삶 개선하려 한 염원 담았어요

자산어보는 조선 시대 바다 생물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큼 물고기에 대한 자료를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어요.
자산어보는 조선 시대 바다 생물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큼 물고기에 대한 자료를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어요. /한국농어촌공사 블로그

세계지도를 펼쳐 우리나라 위치를 확인해 보세요. 유라시아 대륙 끝에 있는 작은 반도가 보일 거예요. 이번에는 세계지도를 거꾸로 돌려 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작은 반도 위에 광활한 태평양이 펼쳐질 거예요. 이처럼 우린 작은 육지가 아닌 커다란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국가이기도 하죠. 하지만 과거 조상은 국가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육지보다 바다에 관심을 덜 기울이곤 했어요.

이는 조선 시대에도 다를 바 없었어요. 어업은 등한시하고 농업을 중시했죠. 그런데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시각이 바뀌었어요. 특히 '자산어보'는 바다에 관심을 기울인 보기 드문 책이죠. 이 책은 정약전(1758~1816)이 전라남도 흑산도에 유배돼 있을 때 지은 것이에요. 그 지역에 서식하는 여러 해양 동물의 이름, 모양, 크기, 습성, 맛, 쓰임새, 분포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죠.

총 3권으로 이뤄져 있지만, 현재 원본은 없고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청이라는 사람이 필사한 것만이 남아 있답니다. 자산어보의 머리말을 볼까요?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어서 흑산이라는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의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 자산이라 쓰고 있었다. 자(玆)는 흑(黑)과 같다."

정약전은 약 14년에 이르는 유배 기간에 해양 생물 155종을 분석하고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어류도감에 해당할 정도로 훌륭한 업적이에요. 더군다나 그 분류 역시 매우 독창적이고 체계적이죠. 비늘이 있는 '인류'(1권 73종), 비늘이 없는 '무린류'(2권 43종),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개류'와 물고기가 아닌 바다 생물인 '잡류'(3권)로 분류해 설명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설명이 매우 객관적이랍니다. 흑산도 주민의 도움을 받아 바다 생물들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했기 때문이에요. 책에 자주 등장하는 '창대'라는 마을 아이는 청어의 척추를 세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어요.

"영남산 청어는 척추가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는 척추가 53마디입니다."

이처럼 사실에 바탕을 두고 치밀하게 쓰인 자산어보는 당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과학적 탐구 방법을 보여주고 있어요. 또한 그림이 없는 대신 설명과 묘사가 매우 치밀해 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 주고 있죠.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문어의 생김새에 대해 '다리 밑 한쪽에는 국화꽃 모양의 둥근 꽃무늬가 두 줄로 늘어서 있다'고 표현하거나, 말미잘에 대해 '모양은 오랫동안 이질을 앓은 사람의 항문이 밖으로 빠져 버린 것 같다'고 표현하는 등 바다 생물에 대한 생생한 전달에서 정약전의 재치 있는 글솜씨가 여실히 드러나지요. 또한 절반이 넘는 바다 생물의 이름을 직접 짓고, 당시 방언도 함께 표기해 놓는 등 작가의 노력이 엿보여요.

정약전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경기도 남양주 두물머리(양수리) 부근의 마재에서 태어났어요.

"어려서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격이 강했고, 커서는 길들지 않은 사나운 말과 같았다"는 정약용의 묘사처럼 그의 학문 세계도 남달랐어요. 출셋길이 보장된 과거보다 청나라로부터 들여온 서양 학문과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데 매진했죠. 그의 지적 호기심은 유배지에서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 결실이 방대하고 정밀한 자산어보라는 책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썼던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예요. 정약전은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흑산도 주변에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 생물을 관찰하고 연구했죠. /송혜진 기자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썼던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예요. 정약전은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흑산도 주변에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 생물을 관찰하고 연구했죠. /송혜진 기자

자산어보는 단순히 바다에 대한 백과사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의 실학과 천주교에 바탕을 둔 민본주의를 실천하려 했던 정약전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바다 생물의 생김새, 습성, 분포뿐 아니라 식용 여부, 요리법, 양식법, 약성 등 쓰임새까지 폭넓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죠. 바다 생물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통해 흑산도 어부들뿐만 아니라 많은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던 그의 염원을 엿볼 수 있어요.

[함께 생각해봐요]

최근 바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어요. 생물자원뿐만 아니라 지하자원을 차지하려고 바다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마찰이나 북극해를 둘러싼 유럽 및 러시아의 주도권 다툼 등이 그것이죠.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김대근·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