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s & sea

수천년 된 건축물 수두룩… '세상의 절반'이라 불린 도시

Marine Kim 2016. 12. 29. 13:48

수천년 된 건축물 수두룩… '세상의 절반'이라 불린 도시

고속도로와 선로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이동에 어려움이 많은 이란. 힘든 일정에도 이란에 온 여행객이 반드시 가는 도시들이 있다. 시라즈와 이스파한이다.
'세상의 절반'이라고 불렸을 만큼 오랜 역사와 화려한 건축물을 간직한 이란의 대표적인 도시다.

  • 정영효 시인
  • 입력 : 2016.12.29 04:00

[정영효의 중동야화] 이란 '이스파한·시라즈'

이란의 국토는 한국의 열여섯 배가 넘는다. 웬만한 도시와 도시 사이는 한국에서 일본이나 중국을 가는 거리와 맞먹는다. 그래서 일반 버스 외에 좌석이 넓은 VIP 버스가 따로 있고, 모든 고속버스에는 운전사의 피로를 덜기 위해 승무원이 동승한다. 장거리를 운행하는 열차 역시 침대칸을 제공한다. 여행자들은 싼 운임 때문에 비행기보다는 기차와 버스를 선호한다. 그러나 고속도로와 선로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단순히 ㎞로 도착 시간을 계산하면 낭패를 본다. 중간에 차가 고장 나는 상황까지 왕왕 생긴다. 게다가 모든 버스가 똑같은 영화를 틀어준다. 목적지 바뀌고 버스 회사가 바뀌어도 같은 영화를 몇 번씩 봐야 한다. 이런 힘든 일정에도 이란에 온 여행객이 반드시 가는 도시들이 있다. 시라즈와 이스파한이다.

시라즈 인근에 있는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의 역사가 시작된 거대한 궁전으로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대 문명의 독특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정영효
시라즈 인근에 있는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의 역사가 시작된 거대한 궁전으로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대 문명의 독특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정영효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란은 국왕이 통치하는 왕정국가였다. 이런 이란 왕조의 시작엔 우리가 잘 아는 '페르시아(Persia)'가 있다. 페르시아, 그리고 페르시아어를 가리키는 '파르시'(Farsi) 모두 시라즈 인근에 있는 '파르스'(Fars)에서 유래했다. 파르스에는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대왕이 건설한 아케메네스 제국의 도시 페르세폴리스(Persepolis)가 있었다. 한동안 번영을 누리며 세계의 중심지로 자리했던 페르세폴리스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당한 뒤 무참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란 왕조들은 페르시아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자신들이 페르시아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페르시아의 시작을 알기 위해 지금까지도 페르세폴리스를 찾는다. 이란과 페르시아가 늘 함께 연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은 술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나라다. 그럼에도 이란인들은 술을 즐긴다. 위스키·보드카·와인·맥주처럼 밀매되는 외국 술을 마시는가 하면, 서아시아 지역의 전통주 '아락'을 직접 담그거나 사서 마시기도 한다. 알코올 중독이 사회문제가 된 걸 보면 이란엔 술을 마시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듯하다. 밀매되는 술은 상당히 비싸며 종류와 유통 과정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다. 이란에선 위스키 한 병에 대략 100달러이고 맥주는 작은 캔 하나가 15달러다. 거나하게 마시려면 돈이 엄청 든다. 그리고 밀매는 위험하다. 단속이 심하지 않지만 적발되면 처벌을 받게 되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술이 불법인 이란에서 여전히 술로 기억되는 도시가 시라즈이다. 시라즈는 한때 와인으로 유명했다. 일조량이 풍부한 기후 때문에 포도가 많이 생산됐고 시라즈 사람들은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지금은 시라즈에서 와인을 보지 못하지만 포도로 만든 음료가 와인 대신 시라즈를 채우고 있다.

이맘광장의 낮과 밤이 눈부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 그 안에 1619년 완공된 셰이크 롯폴라 모스크가 화려한 위용을 뽐낸다.
이맘광장의 낮과 밤이 눈부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 그 안에 1619년 완공된 셰이크 롯폴라 모스크가 화려한 위용을 뽐낸다.

사파비드 왕조의 수도였던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이라고 불렸을 만큼 오랜 역사와 화려한 건축물을 간직한 이란의 대표적인 도시다. 수백 년 동안 도시의 남과 북을 이어온 시오세폴 다리, 아르메니아인들이 세운 반크교회, 왕조의 위엄을 상징했던 하시트 베헤시트 궁전까지. 이스파한에서는 어디서든 장엄한 건축물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인 이맘광장에 우뚝 솟은 셰이크 롯폴라 모스크는 낮이나 밤이나 화려한 자태를 새기고 있다. 이스파한은 인구가 많은 대도시이지만 이맘광장은 분주함과 소음에서 떨어져 차분하면서 조용하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여유롭게 산책로를 거닐고 아이들은 한쪽에서 공놀이를 한다. 여럿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차를 마신다. 자전거를 신나게 타는 여성들도 보인다. 이스파한을 걷다가 지치면 시내 중앙에 위치한 이맘광장으로 가서 잠시 쉬면 된다. '잠시 쉰다'는 건 두 발로 길을 경험한 뒤에 두 발을 멈추고 길을 회상하는 일이다. 길에 있었던 나를 확인하면서 길에서 잠시 떠난 나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맘광장에 놓인 벤치 하나는 다른 공간을 만들어주는 작은 '넓이'로 다가온다. 시선을 둘러보게 해주는 반가운 '틈'으로 새겨진다.

이란 지도

이란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 이란은 분명히 매력적인 나라다. 시라즈·이스파한·야즈드·타브리즈 같은 고·중세의 도시와 테헤란 같은 대도시를 하나의 국경 안에서 볼 수 있다. 수천 년 된 건축물과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가 가득하다. 현지에서 만난 친구는 "이란에선 몇백 년 된 건축물은 오래된 게 아니다"고 농담할 정도다. 게다가 내륙으로는 광활한 사막과 산맥을 품었고, 남과 북으로는 카스피해와 페르시아만을 품었다. 조금만 여유롭게 돌아본다면 이란의 다양한 기후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여행자가 이란을 거쳐 아시아와 유럽으로 이동을 한다. 이란에 머무는 동안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기 힘들었다. 다른 아시아인에 비해, 그리고 유럽인에 비해 여전히 이란은 한국인에게 낯선 여행지다. 누군가는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지킬 것만 지킨다면 서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이란은 안전하다. 국경 통제와 치안 유지에 이란 정부는 많은 힘을 쏟는다. 내년에는 한국과 이란을 잇는 직항 노선이 생긴다고 한다. 이란이 한국인에게 조금씩 가까운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타진
타진

◆ 이란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은 ‘타진’이다. 타진은 사프란으로 물들인 밥 사이에 닭고기를 넣어서 만든 요리인데 엄청 담백하고 밥알이 꼬들꼬들하다.

◆ 시라즈와 이스파한에는 저렴한 여행자 숙소가 많다. 그러나 예약을 하는 게 안전하다. 여행자들이 몰리면 방을 구하기 힘들다.

◆ 이란에서 외국인이 제일 주의해야 하는 건 사진 촬영이다. 군사 구역과 통제 구역이 많은 이란에서 무턱대고 사진을 찍었다가 적발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촬영 장소가 특수한 곳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높은 담장, 안테나, 군인 중 하나만 보여도 그곳에서는 사진을 안 찍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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