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s & sea

비켜주고, 뛰어넘고

Marine Kim 2016. 12. 17. 14:47

[시니어 에세이] 비켜주고, 뛰어넘고

새벽 서너 시에 눈을 뜰 때가 잦다. 몸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감사함부터 마음에 일어난다. 아무런 일이 잡혀있지 않아도, 오늘 숨 쉬며 이 하루라는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냥 감사하다. 여든은 넘어야 이런 마음이 되는 건 줄 알았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고, 그만큼 성취감과 대우가 따르며, 어디에선가, 누구로부턴가 인정받아야 감사한 줄 알았다. 그래서 가정과 직장일 외에 늘 한두 가지는 더 해야 성에 찼다. 열심히 산다는 건 곧 바삐 사는 것이었으니,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을 “빨리 빨리”로 몰아붙였다.

30년간 붙은 관성의 힘은 셌다. 퇴직 후에도 자신을 가만두지 못하고 뭔가 하도록 다그쳤다. 나를 동동 뛰게 했던 아이들은 이제 커서 제 앞가림은 하게 됐고,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줄어드는데 말이다. 알람을 켜놓지 않아도 출근 때보다 더 일찍 깨어났다. 여기저기에 한 다리 걸치고, 이것저것을 배우고, 만나고, 다니고…하지 않으면 나태하다는 자책이 따랐다. 아줌마로 퍼져 앉고 말면 어쩌지, 불안감마저 들었다. 직장에서의 마지막 직위로 불리는 게 계면쩍으면서도 은근히 안도감을 줬다.

아들이 출근하고 내가 배웅한다는 게, 낮에 집안이나 동네에 있다는 게 여전히 낯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았다. 퇴직 동료들도, 아랫집 아저씨도 그런 것 같았다. 서로 출퇴근하다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곤 했던 그 이웃은 퇴직을 했는지 평일 대낮에 보게 되자 얼굴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심정을 알 듯 싶었다. 질주하던 우리들 모두는 제동거리가 필요한 것이었다. 한해 두해 지나면서 이따금 지인들의 암 투병과 죽음을 접할 때마다 브레이크가 세게 걸리기는 했다. 열심히 사는 게 다가 아니구나.


‘액티브 시니어’

그러면서도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근속기간의 두 배는 걸려야 그 직업의 물이 빠진다는 말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못 벗어나는 거 아닌가? 사실 못 벗어나는 게 아니라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끈 떨어진 갓’이 끈 비스무리한 것을 잡으려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일지 몰랐다. 끈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갓을 다시 잡아 쓰고 내로라하려거나, 어떻게든 갓을 벗지 않으려고 아둥바둥하는 이들도 가까이서, 또 멀리서 본다. 그중에는 내가 바로 ‘액티브 시니어’라는 듯 꽉 찬 1주일 스케줄을 자랑하는 노년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사진=조선일보DB
그런데 활동적이고 능동적이라는 뜻의 영어 ‘active’를 내세운 이 신조어가 나는 썩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강한 소비 성향과 외적인 활동만 부각하고, 이를 부추기는 것 같아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해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라는 마당에 유통업체들이 좋아할 명칭이라서만은 아니다.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할 돈을 여유가 있어 쓴다면 경제에도 보탬이 될 테니 누가 뭐랄 수 있을까. 하지만 웬만큼 누렸고, 살만한데도 돈이 되는 일과 역량을 드러낼 자리를 좇아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액티브’는 자칫 노욕일까 두렵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에서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희망, 꿈 포기라는 ‘7포’로, 다른 것도 다 포기하는 ‘n포’로까지 치닫는다지 않는가. 얼마 전 르네상스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가 군 장병들과 함께한 ‘인문소풍’에 참석했다.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된 고흐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그의 삶에 대해 듣는 행사였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세상을 끊임없이 그리다가 37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흐. 그와 같은 후기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은 대회에 출품되는 족족 고전주의 심사위원들에 의해 낙선됐다. 젊은 작가들은 “루브르를 불태우자”며 도전과 항거의 기치를 높였다.

이를 달래기 위해 낙선전이 열리게 됐다는 얘기 끝에 이어진 김 교수의 말이 내 귀를 잡아당겼다. 그는 젊은이들의 사명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며,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이 정말 어렵다, 그들을 위해 길을 비켜 열어줘야 한다, 자신부터 머잖아 자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앞으로 10년은 보장될 교수정년을 차버리겠다는 것이다. 익히 알고 있던 고흐의 삶보다 향후 그의 삶에 더 관심이 갔다. 굳이 교수 자리가 아니더라도 강의나 저술 등 할 일이야 많으리라. 하지만 돈이 안 돼도, 자리가 빛나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현실을 뛰어넘는데 도움이 돼주길 바란다면 너무 기대가 큰 걸까.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요즘의 누구처럼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라, 잘 나갈 때 “내려놓겠다” 선언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 가능한 상승하려는 ‘본능’만 강하게 작동하기 십상이다. 나 또한 재직 시절에 그러했고, 퇴직하고도 수년간 작동이 멈춰지지 않았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에는 모른다. 다 먹고 일어나야 비로소 얼마나 과식했는지 알게 된다…. 먹는 순간 바로 아는 사람은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이다. 이렇게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일갈했지만, 나는 일어나서도 몰랐던 것이다. 외적 액티브에만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가며 더욱 필요한 게 내적 액티브란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만 내려놓고, 인정받음도 보수도 없이 정중동한다고 뒷방 늙은이가 되는 건 아니다. 앞자리에 ‘모시지’ 않는다 하여 행사에 불참하지 않고, 뒷자리에서 경청하고 박수로 격려하는 분이 있다. 가진 게 없고, 병석에 누워있어도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이 있다. 바로 내적 액티브의 동력을 발휘하는 진정 액티브 시니어가 아닐까. 활동이 멈춘 듯 보여도 멈춘 게 아니며, 손에 쥐는 건 없어도 풍요롭다. 돈과 명예가 주는 풍요에 비할 바 없이 길게 가는 풍요다.

그리고 멋지다. 지금 어려운 이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뛰어넘게끔 뒷심이 되어주는 노년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멋지다. 본능을 거슬러 나를 내려놓고 남을 올려주니 그러하다. 몸은 노쇠해지고, 돈을 벌지도, 여봐란 듯 쓰지도 못하며, 꼭 필요한 존재가 점점 아니 되어갈지라도 액티브 시니어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무엇보다 눈을 뜨면 그냥 감사한 하루가 열릴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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