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리뷰] 잊어서는 안되는 민족의 슬픔이 남겨진 군함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지난가을 찾아갔던 나가사키 평화의 공원 조선인위령탑 앞에서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고 있었다.
나라를 잃은 백성이 겪어야 했던 항거하지 못하는 슬픔과 절망의 나날들은 미국의 원폭투하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 끔찍한 상황의 현장에서조차 한반도에서 끌려간 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면서 죽어간다.
일제 식민지 초기에 모집이라는 명목을 붙여 광부들을 모았으나 태평양 전쟁의 궁핍과 자원부족으로 조선의 나이 어린 소년들까지 마구잡이로 탄광으로 끌려가는 잔혹 행위가 시작되었다.
춘천에서 정미소를 하는 친일파 아버지 덕분에 어려움을 모르고 살던 청년 지상은 징용장을 받은 형 대신 갓 결혼한 아내 서형을 남겨두고 낯선 땅 나가사키에 도착한 후 다시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端島) 섬으로 이동이 된다. 나가사키에서 18.5km 떨어진 다카시마(高島)에는 일본 최대의 해저탄광인 미쯔미시 타카시마 탄광이 성업 중이었고 이 섬에서 5km 떨어진 작은 섬이다. 풀도 물도 나무도 없이 채탄시설과 광부 숙소만으로 뒤덮인 곳이 미쯔비시 광업 하시마 탄광이 존재하는 하시마 섬이다. 전체를 둘러싼 드높은 방파제 때문에 그 모습이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같아서 하시마라는 이름 대신 군함도라고 불리고 있었다.
섬에서 만나는 모든 불편한 일상이 지상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인간 이하의 피폐함으로 한없이 절망하지만 춘천고보시절에 학생운동으로 알고 있었던 우석을 만나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 강인한 의지를 지닌 우석이었으나 그 역시 식민지의 징용병으로 끌려온 하시마에서 살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에게 순종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음에 절망한다.
징용병들을 끌어 온 하시마는 절대 고립의 강제수용가 되었고, 그 절망의 사이로 어느 순간 유곽의 조선 여인 금화가 우석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기 시작한다. 삶의 어느 순간에나 존재하는 사랑의 기운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기도 하지만 금화 역시 스스로 운명을 자율적으로 살아갈 힘이 없다. 우석이 섬의 탈출을 시도하던 날 금화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바다에 몸을 던진다.
금화의 영혼은 바다로 떠나고 발을 다친 우석은 탈출하지 않고 섬에 남는다. 우석이 하시마에 남은 진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바다로 떠난 금화를 화장하고 남은 그녀의 뼛조각 하나를 자신의 옷에 꿰매어 간직하면서 언젠가는 그녀의 영혼과 함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맹세를 한다.
하시마에 끌려온 징용공들의 지옥 같은 삶과 죽음, 저항과 탈출로 이어지는 마지막 시간이 다가온다. 미국의 철저한 계획과 사전 조사로 원폭투하 지점이 결정되고 몇 가지 분석으로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가 이루어진다.
단 한 번의 원폭투하로 24만 명으로 추산되던 사망자 수가 그 해 연말까지 7만 4천 명이 늘어났다. 수많은 사람이 무너져 내린 시가지에 매몰되었고 한순간에 타버려 가루가 되어 흩어진 이들의 죽음을 일본은 사몰(死沒)이라 표현하였다. 이 수치 안에 조선인 사망자 1만 명과 부상자 구호활동을 위해 투입된 2차 방사능 피해를 당한 1만 명의 징용 공들이 더해진다.
머리카락이 다 타 없어진 사람, 얼굴과 손의 살점이 떨어지고 피부가 온통 타버린 사람들의 무섭고 끔찍한 모습에 지상은 고개를 숙이고 깊옆으로 비켜섰다. (2권, 407 P)
저자인 한수산 작가는 1989년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작은 책자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오카 마사하루(岡政治) 목사와 '나가사키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멤버들의 피해 생존자인 서정우 씨와 함께 군함도에서 현장을 샅샅이 뒤지고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여 2016년도 군함도가 탄생하기까지 27년이 소요되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금화도 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하시마 '기업 위안부'로 끌려왔다가 자살한 젊은 여인이 모티브가 되었다.
폐허가 되었던 섬 군함도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하시마 탄광의 유구(遺構)'로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하나로 등재되어 있다. 일본인이 자랑하는 하시마 탄광의 역사에는 부정할 수 없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절망과 분노와 희생의 처절한 삶이 숨어있다. 나가사키 피폭 조선인희생자들의 영혼에 바친다는 소설 군함도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되는 민족의 슬픔과 분노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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