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박근혜 시대'
- 입력 : 2017.03.11 03:13
정치적 해결을 바랐다. 박근혜 청와대를 그의 취임 때부터 3년2개월 출입했던 기자로서 그가 파면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탄핵 소추에서 헌재 결정까지 외길 수순이었다. 38년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서울 신당동 사저로 나왔을 때는 어린 두 동생이 있었다. 이제 삼성동 사저에는 누가 옆에 있게 될까.
▶박 전 대통령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라는 정치적 유산에 '원칙과 신뢰'라는 자기 브랜드를 얹어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다. 첫 여성 대통령이었고 1987년 이후 대선에서 유일하게 득표율 50%를 넘겼다. '정치인 박근혜'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은 아니다. 1998년 정계 입문 이후 겪었던 부침(浮沈)과 신산(辛酸) 그리고 자기 노력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대부분은 무너져 내렸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 평화통일 기반 조성 등 4대 국정 기조를 제시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첫해부터 인사 실패와 정통성 시비(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휘말렸다. 2년 차에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과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개혁에 시동을 걸었으나 세월호 참사와 비선 실세 문건 파동이 발목을 잡았다. 야당은 다른 대가를 주지 않으면 법안 처리를 가로막았다. 어느 순간부터 박 전 대통령도 야당을 탓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작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나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켜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다"고 했다. 사드를 반대하는 시 주석 면전에서 사드 배치 불가피를 얘기한 것이다. 그 몇 달 전에 북 김정은이 4차 핵실험을 하자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어깨는 좁고 연약해 보인다. 악수를 하면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해산, 전교조 법외 노조화, 한·일 위안부 합의, 역사 교과서, 비박(非朴) 축출 등 극단적 반대와 논란을 야기할 결정을 밀어붙였다. 기가 질렸던 것일까. 참모들은 자기 생각이 있어도 지레 포기했다. 많은 사람이 일찍 청와대를 떠났다.
▶최순실만 없었다면…. 오래전 '최순실 청와대 출입설'을 들었다. '문고리 3인방'에게 사실 여부를 여러 번 확인했다. '경호실이 있는데…'라며 딱 잡아떼는 그들에게 "만약 사실이라면 끊어야 한다"고 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최씨 일가와의 40년 질긴 인연이 끝내 질곡(桎梏)이 됐다. 훗날 역사는 '박근혜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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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0/20170310029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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