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審理 무효 논란에도 불구, 헌재의 탄핵 결정은 최종 현실 -그래도 판결엔 승복해야 한다

Marine Kim 2017. 3. 12. 00:15

특별 기고] 그래도 판결엔 승복해야 한다

  • 복거일 소설가
  • 입력 : 2017.03.11 03:14

審理 무효 논란에도 불구, 헌재의 탄핵 결정은 최종 현실
불복은 또 다른 문제 낳으니 나라 걱정으로 광장에 나갔던
깨끗하고 힘찬 에너지를 모아 대한민국 미래 위해 써야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촛불 집회와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거세지면서 헌법재판소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는 얘기가 자주 나왔다. 그 얘기는 양쪽 주장이 동질적이라는 판단에 바탕을 두었다.

촛불 집회 측은 탄핵 인용을 헌재(憲裁)에 요구했다. 자신들이 바라는 것과 다른 판결이 나오면 심판 과정이 공정했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이 온다"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났다. 태극기 집회 측은 탄핵 과정이 부적절했음을 지적했다. 국회의 소추 과정에도 문제가 있고 심판도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심판 결과보다는 과정을 주목한 것이다.

따라서 헌재의 판결에 승복하라는 얘기는 촛불 집회 측엔 적절했다. 누구도 재판정에 특정 판결을 강요할 수 없다. 문 전 대표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고 "기각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물러섬으로써 이 점이 부각되었다. 판결에 승복하라는 얘기는 태극기 집회 측에 대해선 설득력이 약했다. 그것은 불의(不義)에 맞서지 말라는 얘기다. 합리적 태도는 먼저 소추와 심판이 실제로 공정하게 진행되었는가 확인하는 것이다. 만일 불공정했다면 바로잡을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절차 없이 헌재의 판결에 승복하라고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사이엔 이런 본질적 차이가 있었다. 이 점을 놓쳤기 때문에 헌재 판결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지당한' 얘기가 태극기를 든 시민에게 공허하게 들린 것이다. 어떤 판결이든 그 자체로는 내재적 가치가 없다. 적법 절차를 따라 진행되었을 때 재판은 공정해지고 그 판결은 가치와 권위를 얻는다.

실제로 탄핵 과정은 문제적이었다. 국회의 탄핵 소추는 검찰의 공소장에 바탕을 두었다. 당연히 근거가 빈약하다. 국회는 자신이 설치한 특검과 청문회의 조사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소추하는 비논리적 행태를 보였다. 헌재 주심 재판관이 소추 근거 13항목을 5가지로 간추려야 했을 만큼 소추서는 조리가 없다. 주심 재판관은 탄핵 심판이 일반 형사재판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탄핵 심판이 형사재판에 속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탄핵의 사전적 뜻은 '입법부가 공무원에 대해 제기하는 형사소송'이다.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한다는 헌법 규정에서 탄핵은 형사소송임이 분명해진다. 탄핵 제도가 비롯한 영국이나, 많이 쓰인 미국에서도 탄핵은 형사소송이다. 이어 주심 재판관은 형사소송 절차와 민사소송 절차를 선택적으로 준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탄핵은 형사소송이므로 형사소송 절차를 엄격히 따라야 한다. 헌법재판소법도 '탄핵 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고 규정했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일반 형사소송 절차를 따르며, 영국에선 파면만이 아니라 수감까지 선고할 수 있다.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형사소송에선 국가가 자신의 절대적 권력으로 피고인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하려 시도한다. 그래서 형사소송 피고인에겐 민사소송 피고보다 훨씬 너른 권리가 허용된다. 여기서 주심 재판관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는 형사소송 절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에게 허여(許與)될 법률적 특권을 주지 않으려고 규정을 어기면서 민사소송 절차를 선택적으로 따랐고, 그런 조치를 정당화하려고 탄핵 심판이 형사재판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런 근본적 잘못에서 갖가지 문제가 나왔다. 오죽했으면 변호인단이 기피 신청까지 냈겠는가.

이런 근본적 문제들은 심리 무효를 구성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현실적으로는 헌법 수호자로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으므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헌재가 판결했다. 그리고 그 판결은 최종적이다.

소추도, 심판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에서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헌재의 심판 과정은 문제적이었지만, 그래도 그 판결엔 승복해야 한다. 판결로 분쟁을 끝내는 것이 우리 사회 원리다. 시민이 판결에 불복하면 그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새로 낳는다.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광장에 나간 것이다. 그 뜻은 그만큼 순수하고 강렬했다. 그렇게 깨끗하고 힘찬 에너지가 과거에 머물러 사그라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 에너지를 한데 모아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써야 한다. 삶은 미래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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