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성지, 지상순례] 한국의 루르드, 성모당
성모님께 봉헌된 은총의 성지이자 성모신심의 중심
대구 도심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경내에 우뚝 서 있는 성모당. 대구대교구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신앙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이곳은 연중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대구대교구의 전신)가 설립되고 초대 대목구장(교구장)으로 부임하신 드망즈(안세화) 주교님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교구의 기틀을 마련하시고자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보인 루르드의 성모님을 교구 주보성인으로 삼으시고 허원을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가난하고 힘든 교구의 재정을 맡아 주시기를 청하며 주교관 건축, 신학교 설립, 주교좌성당의 증축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교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성모님께 봉헌하고 그곳에 루르드의 성모동굴 모형대로 성모당을 지어서 모든 신자들이 순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드망즈 주교님의 허원대로 성모님께서는 1913년 주교관을 짓도록 도와 주셨고, 이어 1914년에는 영남 최초의 대학인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완공되었습니다. 전쟁의 발발로 늦춰질 뻔했던 루르드 성모동굴 공사는 드망즈 주교님의 기도로 오히려 앞당겨져 1917년 7월 31일에 시작되었고 주교좌성당 증축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그 이듬해 1918년 10월 13일 성모당 축성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날 드망즈 주교님은 대구교구에서의 7년 동안 성모님께 한 청원이 모두 성취되었다고 알렸습니다. 성모당 전면의 라틴어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는 ‘1911년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님께 한 허원에 따라 1918년에 지어 바침’이라는 뜻입니다.
성모당은 그 후 대구대교구의 가장 대표적인 순례지와 기도 장소가 되었고 교구에서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성모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행사를 열었습니다. 1973년부터 매년 5월 성모성월이면 대구 시내 각 본당별로 성모당에서 성모의 밤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1981년 5월 4일에는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 성녀께서 성모당을 방문하셨고, 1984년 5월 5일에는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이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2009년 3월 27일에는 로마 성모대성당과 영적 유대관계를 맺게 되자 성모당은 전대사가 주어지는 성지의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순례지가 된 성모당은 2010년 3월부터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에 고해성사와 묵주기도,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드망즈 주교님은 유시(諭示)를 통해 성모당 참배를 권면하면서 세 가지 이유를 전하셨는데 첫째는 그저 성모님을 공경하고 감사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영혼이나 육신의 은혜를 얻기 위해 성모님의 특별한 효험을 믿으며 참배하는 것이고, 셋째는 허원에 의해 미리 영혼이나 육신의 은혜를 받은 후 그 허원을 채우기 위해 참배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9호이기도 한 성모당은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 교구를 지켜주신 성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성모당을 자주 찾아 하느님의 어머니이시자 가장 훌륭한 신앙인이라 할 수 있는 성모님의 삶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017년 5월 14일 부활 제5주일 대구주보 4면]
'Catholic Church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빙엔의 힐데가르트/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역사상 가장 매혹적 인물 (0) | 2017.05.18 |
---|---|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0) | 2017.05.18 |
농부들의 수호성인 성 이시도로 (0) | 2017.05.18 |
조선을 갈망했지만 ‘선교의 황무지’ 샴(태국)으로 발령 받아 /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9) 새 선교 임지가 정해지다 (0) | 2017.03.27 |
교황께 올린 탄원서와 성직자들의 조선 입국 방책 (0) | 2017.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