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첫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발간한 초기 한국교회 주역
-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복자는 최초의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펴내고 명도회의 초대 회장을 수행하는 등 우리나라 초기 교회를 이끈 신앙선조다.
1760년 경기도 광주 마재에서 태어난 복자는 교리를 배우기 전부터 진리를 찾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삶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 과거 공부도 뒷전으로 하고 철학과 도덕, 도교 등에 심취했을 정도다. 그런 그였기에, 1786년 천주교 교리를 접하면서 교리를 깊이 연구하고 그 안에 담긴 참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1791년 윤지충(바오로)이 순교하자 복자의 형제들은 천주교를 멀리 했지만, 복자는 고향을 떠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경기도 양근 지역에 머물며 교리를 실천하는데 열중했다.
복자는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족과 이웃에게 적극 전했다. 또 인근 지역 신자들과 자주 교류했고, 이웃들을 집에 불러 교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 복음 전파의 정성으로 그의 가족들도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1801년에는 그의 아들 복자 정철상(가롤로)이, 1839년에는 그의 부인 유조이(체칠리아), 아들 정하상(바오로), 딸 정정혜(엘리사벳)가 순교했다.
1794년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복자는 한양을 찾아 주 신부를 도와 교회의 일을 맡기 시작했다.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첫 회장직을 맡았을 뿐 아니라, 그동안 연구한 교리를 바탕으로 누구나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두 권을 편찬했다.
- 천진암성지의 한국교회 창립선조 묘역. 정약종, 이승훈, 이벽, 권일신, 권철신의 묘.(왼쪽부터)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교회 활동에 앞장서던 복자의 이름은 가장 먼저 체포명단에 올랐다. 복자는 신앙을 부정하는 말도, 교회나 신자들에게 해가 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순교를 뜻에 두고 있던 그는 오직 천주교 교리의 옳음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의 설교는 박해자조차 당황하게 만들었고, 결국 체포된 지 겨우 15일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복자는 사형집행을 위해 서소문 밖에 끌려가면서도 모여든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천주를 위해 죽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의 울음은 진정한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고, 당신들의 즐거운 웃음은 진정한 고통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천진암성지 전경.
복자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쳐다보며 죽는 것이 낫다”면서 하늘을 바라본 채로 참수당했다. 이때가 1801년 4월 8일,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성인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천진암성지
천진암강학이 열렸던 천진암성지(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는 우리나라 초기교회의 신앙선조들을 현양하는 성지다. 성지 창립성현 묘역에는 우리나라 초기교회를 이끌던 복자의 묘가 조성돼있다.
※ 문의 031-764-5994 천진암성지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7년 5월 14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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