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29 03:00
[영화 '연평해전' 100만명 돌파]
7000여 개인·단체의 성금·후원금으로 탄생한 '연평해전'
본편 끝난후 12분간 엔딩 크레디트… 관객도 쉽게 자리 안떠
검은 스크린에 흰 글자들이 올라온다. 가보연 강경연 강기현 강나원 강남욱 강대영…. 누군지 알 길은 없다. 소속도 직책도 없는 이름들이 파도처럼 가나다순으로 밀려올 뿐이다.
'연평해전'은 본편 상영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12분 길이의 엔딩 크레디트가 눈길을 붙잡는다. 엔딩 크레디트란 제작에 참여한 이를 영화 끄트머리에 기록한 명단이다. '연평해전'에는 제작진 말고도 개인과 단체 이름 7000여개가 담겨 있다.
'연평해전'은 본편 상영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12분 길이의 엔딩 크레디트가 눈길을 붙잡는다. 엔딩 크레디트란 제작에 참여한 이를 영화 끄트머리에 기록한 명단이다. '연평해전'에는 제작진 말고도 개인과 단체 이름 7000여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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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연평해전’본편 상영이 끝나고 올라오는 엔딩 크레디트. 후원자 7000여명의 이름이 담겨 있다. 닉네임으로 성금을 낸 명단 마지막에‘영원히 잊지 않습니다’가 보인다. /로제타시네마 제공
영화 본편이 끝나면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희생된 고(故) 윤영하 대위(참수리 357호 정장)의 생전 모습을 당시 TV 화면으로 만날 수 있다. 그는 항해 중인 고속정 위에서 "(저희는)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더 크죠. 부상을 입었더라도 어쨌든 저는 살아남았으니까"(갑판병 권기형) "고맙고 많이 생각나고 많이 보고 싶습니다"(통신장 이철규) 같은 357호 생존 장병의 영상도 이어진다.
2002년 월드컵 태극전사 23명에 이어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이 한 줄에 17명씩 빼곡하게 올라온다. '이 영화는 꼭 완성돼야 한다'는 소망 또는 집념을 담은 서명(署名) 두루마리처럼 풀려나온다. 12분 동안 붙박인 듯 앉아서 그 '이름의 파도'를 눈에 담는 관객도 있다. 한 영화관 홈페이지에서 닉네임 '잔디23'은 "엔딩 크레디트에 나온 생존 장병 인터뷰, 윤영하 대위의 생전 뉴스 인터뷰에 다시 눈물이 났다.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연평해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국군장병 모두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드린다"는 평을 남겼다.
'연평해전' 제작진은 7000여명의 이름을 어떻게 배열하고 담을지 고심했다. 해군 바자회를 통한 후원자, 크라우드 펀딩 후원자 순으로 하되 기업을 먼저, 개인은 나중에 배치했다. 김학순 감독은 "후원자 대부분이 개인인데 기업 이름이 나중에 나오면 웅장함의 여운이 흐려질 수 있다. 닉네임은 길이가 달라 미학적으로 좀 혼란스러울 수 있어 뒤로 돌렸다"며 "누락이나 오자는 없는지 여러 번 점검했다"고 말했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국군수도병원에서 박동혁 상병을 치료한 군의관 '이봉기', 357호와 한 편대를 이뤘던 358호 정장 '최영순'도 들어 있다. 김 감독은 두 이름과 더불어 닉네임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를 기억에 남는 이름으로 꼽았다. 수소문해 보니 그는 경북 상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성민(25)씨였다. 한씨는 28일 통화에서 "사회에 나와 받은 첫 월급이라서 의미 있게 쓰고 싶었는데 이름 알리기는 민망해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로 적었다"면서 "벌써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또 이봉기(46) 강원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영화를 보면서 동혁이 생각이 많이 났다"며 "많은 관객이 영화로 그 죽음을 기억하는 것보다 유족에게 큰 위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학순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 12분에 대해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예우"라며 "'연평해전'은 그분들과 함께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는 오락이면서도 예술의 영역에 속합니다. 바로 일어서지 말고 끝까지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편에 넣지 못한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10분쯤 더 앉아서 얻게 될 감동의 가치는 기다림 이상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