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의왕시를 잇는 342번 지방도 중간쯤에서 위로 올라가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밑의 터널을 지나 국사봉 등성이를 오르면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서 루도비코(볼리외, Beaulieu)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동굴이 나온다.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 중에 가장 어린 나이인 26세에 혹독한 박해의 칼날에 목을 떨군 성 볼리외 신부가 은신해 있던 이 동굴에는 박해의 퍼런 서슬에 맞서 오로지 복음 선포를 위해 낮선 이국땅에서 숨죽이고 지내야 했던 짧은 삶, 그러나 뜨거운 신앙의 열정으로 불탔던 성인 신부의 자취가 서려 있다.
조선 땅에 발을 들인 지 겨우 9개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그는 고국인 프랑스에서 이곳 조선까지 무려 10개월의 여정을 멀다 않고 찾아왔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조선 땅에서 그는 행여 누가 볼세라 상복 차림으로 산과 들길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박해의 그늘 아래 숨어 있던 교우들을 찾아 헤매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는 관헌에게 붙잡혀 새남터에서 세 차례에 걸친 회광이의 칼부림 끝에 장엄하게 순교했던 것이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와 의왕시를 잇는 342번 지방도로 중간쯤에서 위로 올라가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밑의 터널을 지나 국사봉 등성이를 오르면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볼리외 루도비코 서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동굴이 나옵니다.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 중 가장 어린 26세에, 조선 땅에 발을 들인 지 겨우 9개월 만에 관헌에게 붙잡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신앙을 증거하며 혹독한 고문 끝에 순교한 성인의 열정과 자취가 서려 있는 곳입니다. 희광이의 세 번째 칼날에 그의 목은 떨어지고 머리는 사흘 동안 효수되었다가 몇몇 교우들이 시신을 거두어 왜고개로 옮겼습니다. 이후 옛 용산 신학교 성당과 명동 성당 지하묘소를 거쳐 절두산 순교성지 성해실에 안치되었습니다. 볼리외 루도비코 신부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은신 동굴로 오르는 산길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고, 작은 동굴 안에는 성모상과 예수상, 십자가와 촛대 등이 놓인 작은 바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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