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요당리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Marine Kim 2015. 8. 12. 19:06

기도의 광장 성모상 쪽에서 본 대성당 모습.요당리 성지? 도대체 어디에 있는 성지일까? 수원교구 ‘요당리 성지’를 찾아 나서는 길, 지명조차 생소한 곳이기에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어느 때보다 설렌다.

성지 누리방(www.yodangshrine.kr)에서 내려 받은 지도를 따라 발안에서 안중 방향으로 39번 국도를 달리다 보니 발안산업단지(향남제약공단)를 지나면서 ‘요당리 성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안내대로 ‘고잔성농원’ 입구로 국도를 빠져나와 지하도 아래로 좌회전 한 후 2km쯤 시골길을 달리니 성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200년 넘게 우리들 기억에서 잊혔던 곳. 하지만 이곳만큼 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의 얼과 발자취가 스며있는 곳도 드물다. ‘느지지’로 불렸던 요당리 성지는 장주기(요셉, 1803-1866년) 성인이 태어나 신앙 기반을 다지고 주위 친척과 교우들에게 신앙을 전파한 곳이다. 또 장씨 집성촌으로써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장 토마스(1815-1866년, 장주기 성인의 6촌)를 비롯해 장씨 일가의 터전이기도 하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요당리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양간 공소라 불리던 교우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렸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길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으로,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수많은 신자들의 신앙의 요람지였습니다.

장주기 성인과 복자 장 토마스의 출생지이자 신앙의 터전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순교자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 재정 확보를 위한 전답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그 책임을 맡았던 민극가 성인과 공소회장을 역임한 정화경 성인이 활동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피신했던 성 앵베르 주교와 그분의 피신을 도운 손경서 순교자의 얼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이런 역사적 중요성으로 인해 수원교구에서는 2006년부터 전담사제를 파견해 성지 개발을 본격화했습니다. 기도의 광장 양편으로 묵주기도 길과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고, 성역화 광장에는 대형 십자가와 요당리와 관련 있는 순교자들의 의묘를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성당과 부속건물들을 완공해 다음해 5월 11일 봉헌식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