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순례의 길

안성 성당(구 구포동 성당)

Marine Kim 2015. 7. 9. 18:35

안성 본당 초대주임 공베르 신부 흉상.경기도 지역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현 수원교구 소속. 경기도 안성시 구포동 80-1 소재. 1900년 10월 19일, 충청도의 공세리 본당(貢稅里本堂)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착한 의견의 모친. 관할 구역은 안성시 동쪽 지역과 보개면 · 서운면 · 금광면 일부.

공소 시대  안성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이미 박해 시대로,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를 전후해서는 이웃의 죽산(竹山)과 안성군 소촌만면(所村萬面, 현 대덕면)의 모산리와 명당리, 서리면(西里面, 현 안성시)의 계촌 등지에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 중 몇몇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러나 이들 공동체는 박해로 와해되어 버렸고, 훗날 순교자들의 후손이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신자들이 모여 새로 교우촌을 이루게 되었다. 기록에서 이들 교우촌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1883년으로, 당시 충청도와 경기도 남부 지역을 담당하던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가 그 해 안성 지역을 방문하고 ‘바울 공소’(현 안성시 미양면 馬山里의 岩洞)를 설립하였다. 두세 신부는 이때 죽산과 직산(稷山) 등지에도 공소를 설립하였고, 다음해에는 ‘궁말 공소’(현 충남 천안시 성환읍 安宮里)를, 1887년에는 ‘선바위 공소’(현 안성시 금광면 梧山里의 立岩)를 설립하였다.

 

 

모바일용 요약 설명

박해시대에 이미 복음이 전파된 안성 지역은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해서 여러 곳에 신자들이 거주했습니다. 그러나 박해로 공동체가 와해되고 훗날 순교자들의 후손이나 다른 지역 신자들이 이주해오면서 새로 교우촌이 형성되었습니다. 1883년 두세 신부가 안성 지역을 방문하여 바울 공소를 설립하고, 죽산과 직산 그리고 궁말과 선바위 공소를 차례로 설립했습니다. 1900년 1월 뮈텔 주교가 이 지역을 방문한 후 본당 설립 운동이 시작되어 안성읍내에 현 부지를 매입한 후 기와집을 성당으로 개조하여 그해 9월 드비즈 신부의 집전으로 낙성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어 10월 19일 안성 본당이 설립되었습니다.

초대주임으로 임명된 공베르 신부는 1909년 사립 초등학교인 안법학교(현 안법고등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자비로 운영했고, 1912년 여자부를 신설하며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교사수녀를 초빙했습니다. 또 공베르 신부는 1919년 3 · 1 운동에 참여했다가 왜경에게 쫓기던 사람들을 성당으로 받아들이고 프랑스 국기를 게양해 왜경의 진입을 막기도 했고, 프랑스에서 모금한 기금으로 전답을 매입하여 소작 농민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가난한 농민들을 도왔으며, 흉년이 들면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등 빈민 구제 활동도 벌였습니다.

1922년 공베르 신부는 신자들의 협력을 얻어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해 그해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첫미사를 봉헌하고, 10월 4일 드브레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성당은 한식(내부)과 바실리카 양식(외부)을 절충한 형태로 토착화의 양식을 잘 보여줍니다. 1936년 제4대 주임 이복영 신부는 안법학교 교사를 증축하고 4년제에서 6년제 초등학교로 발전시켰으며, 다음해 4월 정규 보통학교로 인가받았습니다. 1947년 9월 김제근 신부는 안법중학교를 인가받아 개교하였고, 1955년 임세빈 신부는 고딕식 벽돌조로 성당 종탑부를 증축하고 독일에서 주문한 종을 설치했습니다.

안성 본당은 1970년에 대천동 본당을 분할하면서 구포동 본당으로 개명되었고, 1985년 6월 성당이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성당을 대대적으로 보수했습니다.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을 전개하면서 2000년 1월 1일 본당명을 안성 본당으로 다시 변경하고, 그해 10월 3일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식 및 기념성당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성당은 붉은 벽돌의 옛 성당 모습을 살리기 위해 전혀 다른 노출 콘크리트 기법의 흰색 건물로 건립되었습니다. 또한 2005년 5월 안성 성당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