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2]

Marine Kim 2020. 11. 1. 13:13

Marine story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1010) [2]

 

사령관은 한국전쟁 중 해병 제1연대가 서부전선, '장단, 사천강'지역에서 중공군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우일선대대인 제3대대 작전장교(대위)였었고 나는 그때 연대작전보좌관(중위)이었기 때문에 내딴에는 충분히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사령관은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 그에게는 과거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는 듯 보였다.

 

 

사령관의 의외의 고성은 내가 "왜 저는 연대장을 못하는 겁니까 "하고 따진데에 대한 사령관의 대답이었다. 이어 나는 "저는 누구보다 연대장을 우수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오늘까지의 저의 경력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누구하고 무엇을 하던, 경쟁해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는 "제가 그들보다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사령관의 음성보다 더 소리를 높였다. 나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이 보다 앞서 해병대학 총장을 겸직하고 있던 이봉출 장군은 해병 제1사단장으로 부임하기에 앞서 나에게 사단으로 올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사단에서 사단으로 발령 의뢰를 사령부에 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해병대 사령부(사령관: 정광호 대장)에 의해서 거부당하고 대신에 나를 해병대학 총장으로 발령을 냈었다. 이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장직이지 이런 총장직이 아니었다.

 

 

결국 이것은 연대장을 하지말라는 소리나 같게 나에게 들렸으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내가 연대장을 못한다니? 이것은 내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조차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당시 사령부에서 제시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 대령의 후임자가 없어서" 라고 사령부에서는 그랬지만 그때 나의 동기생이 해병대학의 교무처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나의 후임으로 얼마든지 임명할 수 있었고 또한 해병대학 총장은 전례대로 기지사령관을 겸직 임명하면 되는데 사령부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하지 안했다.

 

 

나는 이 해병대 사령부의 처사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할래 납득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하여 보병장교의 꽃이라는 보병연대장보직의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어떤 모멸감같은 것을 갖고 있다. 왜 내가 이래야 되는가?

 

나는 이때 오늘까지 나의 최선을 다해 근무한 해병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가 없었다. 마치 해병대에 배신당한 것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것은 나의 오늘까지의 모든 노력과 헌신이 허사로 돌아 갔기 때문이다.

 

 

거기에 새로 부임한 기지사령관은 "왜 해병대학 총장은 기지사령관이 겸직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 안하는 거야?"하면서 나에게 짜증까지 냈다. 해병대 사령관에 대한 분풀이를 나에게 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때까지도 이들의 상호 대립된 감정은 풀리지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면이었다.

 

 

19677월 내가 파월 청룡부대의 교대병력의 훈련을 목적으로 새로히 편성된 특수교육대장(1966.5-1968.6)을 한국군 최초 파월부대인 "주월 한국 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과 주월 한국군 사령부"에서 1년 간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 후 임면되어, 하고 있을 때 청룡부대의 현지 현황 파악차 1967년 여름 청룡부대를 방문하여 1주 간 머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청룡부대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를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추측건데 그것은 내가 사단 소속이니 사단장(정광호 소장)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정말 이거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편가르기의 표본이 아닌가? 그렇다해서 포병출신인 청룡부대장이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더욱 기분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의 청룡부대 출발 전날 밤 청룡부대장의 부관이 우리끼리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나를 찾아왔었다. 청룡부대장이 나와 함께 한잔하자는 전갈이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귀국 인사차 부대장실에 갔더니 청룡부대장의 첫마디는 "뭐 필요한 것 없어?"하고 나에게 물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건 완전히 상식이하의 질문이 아닌가? 심지어 부대의 P.X.장교도 나에게 "한국에서 청룡부대로 출장오면 보통 무엇을 좀 구해달라 하는데 이 대령님은 없습니까?"하고 나에게 문의했었다. 이때 나는 이들을 보고 여기서 돌아가는 분위기가 어떻다는 것을 알만 했다. P.X. 장교는 후일에 2성 장군이되었다.

 

 

그 청룡부대장이 귀국 후 진해 기지사령관으로 부임해 왔었다. 그런데 기지사령관은 진해기지 사령관으로 부임해 와서 해병대 사령관을 공공연하게 자기 집무실에서 참모들을 모아 놓고 비방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유난히 나의 어굴에 대고 하고있었으니 나는 무슨 해병대 사령관의 대리인이나 된 것같은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심지어 "내가 월남에서 돈을 좀 벌었기로서니 왜 난리들이야!"하고 혼자 분개하기도 했다. 누가 감히 장군을 보고 난리를 치고있다는 소리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러면 전장에서, 월남전선에서 해병들은 목숨을 걸고 V.C.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데 돈 벌이나 하고 있었다면 과연 그것이 잘 했다는 소리인지? 이런 소리를 상관으로부터 듣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잖는가?

 

 

그로 인하여 나는 연대장 보직의 기회를 영영 놓지고 말았다. 이때의 해병대 사령관은 정광호 대장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거절당한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거절당할 만한 무슨 결격 사유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해병대 사령관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인데 승인 않했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나는 아직껏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 사령관은 승인 않했을까?

 

 

내가 사단의 특수교육대장을하고 있을 때 정 사령관이 사단장이었었는데 나에게 2년 간 특수교육대장을 한 노고의 은혜를 갚는다하면서 해병대 사령관(강기천 대장)에게 나의 면전에서 직접 전화로 "이근식 대령이 2년 간 사단에서 고생했으니 미국 육군대학으로 보냅시다"하고 전화까지 했던 정 사령관이었다.

 

 

누구보다 특수훈련을 많이 받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었던 보병장교로서 연대장을 못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그 당시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자괴지심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잊을래 잊을 수 없는 아쉬운, 나의 치욕으로 기억되어 내 속에 남아 있다. 왜 내가 이래야 되는가? 나는 정말 묻고 싶다. 왜 내가 이래야 되는가? 나는 해병대에서 나의 최선을 다했고 남들이 못 하는 임무나 업무를 해병대에서는 나에게 담당하도록 요청하지 않았던가?

 

 

사실 나는 해병대 근무를 누구보다 더 열심히 당당하게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것은 해병대의 요구에 나는 무슨 일이든, 남들이 싫어하거나 또는 두려움울 느껴서 못하는 일들을 묵묵히 최선을 다해서 해냈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서 나에게 어느 누구도 반박하거나 반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자찬이 아니라 당시의 해병대의 누구도 인정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나는 단지 어느 개인과도 특별히 가까히 지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로 인하여 나에게는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있었음을 나도 시인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정당하게 이해하고 있는 상관은 나에게 아주 호의적으로, 마치 동생같이 대해 주었고 아첨을 좋아하는 상관은 그렇지 않았고 무관심으로 일관 했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대시까지 하고 있었다.

 

 

 

 

 

20회까지 계속

 

*출처 :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1010) by oldmarine

2007/11/16 00:17

해병대 해체(1973.10

marinekslee.egloos.com/8503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