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9]
8. 해병대의 해체에 대하여 누가 책임 질 것인가?
해병대 사령부와 그 직할부대가 해체됨에 따라 많은 고급장교들이 전역하게 되었다. 전역대상은 대부분 한국전쟁 참전 장교들이다. 특히 해간 3기생과 7기생 그리고 9기생들이 위주인 것 같았다.
해간 3기생 중 장군은 7명인데 그들 중에는 하늘의 별도 있지만 편가르기에 편승해서 별을 단 똥별도 있고 개인의 심복이 되어서 별을 단 더러운 별도 있다. 이런 풍조는 해병대를 위해서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외는 전부 고참 대령들이다. 최소한 3기생은 20여 명은 족히 될 것이고 해간 7기생까지 포함하면 대략 50-60명의 대령급 장교들이 전역될 듯 했다. 이로 인하여 큰 슬픔에 잠겨있는 예하부대에 사령부(인사참모부)로 부터 전역원서를 언제까지 제출하라는 공문이 왔다.
그런데 기가 막히는 것은 만일 기일내에 제출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전역발령을 내갰다는 협박장 같은 내용의 단서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이 문서를 보고 모군으로부터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의 인사참모부장은 3기생출신 장군이었었는데 이 공문 내용은 그의 평소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해병대 해체 소식에 말 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는 우리를 이 공문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정말 소갈머리가 없는 사령부의 인사처리 방법이었다. 우리는 이 공문서를 보고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군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 뿐만 아니다. 이들은 미 육군대학(U.S.A. Command & General Staff College)에서 1년 간의 군사유학에서 돌아 온 유능한 장교를 목포막사로 보직발령을 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이런 무지하고 무책임한 참모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올바르게 해병대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자들이 해병대의 정책 입안자였으니 해병대의 꼴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하는 자소하는 생각마저 나는 들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해병대 해체는 국가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이득을 얻게 될런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도 얼마되지 않는 예산절감으로, 이건 너무나 근시안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고 또한 그로 인한 막대한 소실은 국가적으로, 그리고 해병대의 입장에서도 어떠한 액수로도 그 손실은 비교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해간 7기생들은 그 수가 해간 3기생의 수와 같이 많을 뿐더러 한국전쟁에 참전한 우수한 장교들이 많았다. 한국 전쟁 중 서부전선에서 우리(해간 3기생)가 중대장할 때 그들은 소대장으로서 적과 직접 전투하면서 해병대의 정신을 터득했고 또한 해병대 전통이 무엇이라는 것을 직접 보고 듣고 그리고 체험하며 배웠던 것이다.
그들 속에서 해병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우수한 인재들, 해병대 사령관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 될 것으로 우리는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중도에서 꽃도 피어 보지 못하고 지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이로 인하여 해간 7기생 중 장군은 2명만 됐을 뿐이다.
이때 어떻게 해병대가 이렇게 갑자기 허망하게 해체되게 되었는지 누군가 우리에게 설명헸어야 했다. 그리고 "누군가 이에 대해 책임을 졌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우리는 우리의 분노를 우리의 선배들, 특히 해병대 사령관출신들에게 터뜨렸다.
그때의 우리에게는 여기에 대한 해답이 무엇 보다 아쉬웠다. 해병대 군복을 벗드라도 그 이유나 알고 벗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 그때의 우리들의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분노가 다시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미국 해병대가 그 긴 200여 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외적과 싸운 것 보다 군 내부의 적과 더 많이 싸웠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그들로부터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그것이 남의 일로, 우리와는 관계없는 먼 이웃나라의 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와서 우리를 해체라는 절망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으니 기막힌 일이 아닌가?
이때처럼 우리에게 "유비무환"이라는 선인의 말이 그렇게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아직까지 나에게 없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없었을 것이다. "유비무환"은 어떤 구호에 끝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행동이며 또한 실천이다. 그러면 해병대 수뇌부출신들은 평소에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유비무환 못해서 유구무언인가? 대답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정중동 중에 있었단말인가?
9. 역대 해병대 사령관에의 우리의 바램
역대 해병대 사령관들은 오늘의 절망 속에 빠져있는 해병대를 보고 무어라 할 말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지휘하던 모군인 해병대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전관예우" 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주만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것이 우리가 그때, 해병대 해체(1973.10.10) 후 그들에게 묻고 싶었던 내용이었고 또한 그때의 우리의 절박했던 심정이었다.
대답을 해보라.
그런데 그들은 먼, 오래 전의 일은 제처놓고라도 근래의 그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들이 오늘까지 어떠하였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해병대 전우회 총재선출 시에 야기된 분열현상을 전임 사령관들의 개입으로 사태가 더 이상 확대되어 악화되기 전에 수습이 되었어야 했으나 그들은 이 법정 싸움을, 해병대 선배와 새까만 후배 간의 싸움을 1년 간 그대로 방관만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런 사실을 알고나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만일 모르고 있었다면 그들은 누구들 때문에 별을 달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의 해병대에 두개의 해병대전우회라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이거야 말로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을 뿌리부터 송두리채 흔들어 버리는 사건이 아닌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과연 해병대 선후배 간에 있을 수 있는지 나는 해병대 사령관출신 노장군들에게 뿐만 아니라 해병가족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무슨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고? 감투싸움을 하는 것이 해병정신이고 해병대의 전통 계승인가?
과연 "한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이라고 아직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대한 해병대의 장군출신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안할 수가 없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믈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지만 그러면 이런 있어서도 안되는, 또 웃기는 사태를 왜 방관만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도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은 전임 사령관이라는 Title에 매여 "전관예우"라는 망군적인 사고방식에서 아직 탈피못하고 있어서 정중동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정말 후배 해병들로부터 존경을 받기에는 틀리지 않았는가 하는 염려스러운 생각도 하게 된다. 그 문제가 법정으로까지 비화되어 1년 동안 선배와 후배의 끈질긴 법정싸움으로 확대되었으니 이 무슨 꼴 불견인가? 이건 해병 정신이건 해병대 정통이건 전혀 모르는 소인배의 행태같은 것이 아닌가?
20회까지 계속
*출처 :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by oldmarine
2007/11/16 00:17
해병대 해체(1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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