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8]

Marine Kim 2020. 11. 1. 13:20

해병대 비운의 날(19731010) [8]

 

 

 

6. 내가 전임 사령관의 중임운동을 했다?

 

어느날 사령관실에서 사령관이 나에게 직설적으로 "이 대령은 전임 사령관의 중임운동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정색을 하면서 말한 일이 있었다. 나의 동기생이 사령관에게 그렇게 중상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동기생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그 동기생에게만 했으니 다른 누구도 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기생은 나와의 오랜 친교와 그의 성격으로 보아 나를 그렇게 중상할 교활한 인간은 아닌데 사령관은 나에 대한 어떤 선입감으로, 어떤 선입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선입감으로 인하여 벌써부터 나를 곡해하고 있었던 듯 했다.

 

 

나의 동기생과의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전에 사령관실에서 정 사령관에게 업무 보고 후 여담 중에 정 사령관님도 전임 사령관님이 중임하셨으니 한번쯤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이야기했더니 정 사령관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웃고 있더라."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중임운동한 것으로 변질되었는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일이 아닌가?

 

 

누군가 입이 가벼워서 말을 하다 보니 아첨이 지나쳐 오발을 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귀가 얇아서 그 아첨의 말을 듣다가 평소에 나에 대한 선입감으로 연결시켜 중임운동을 한 것으로 속단했는지 알 수 없다.

 

 

말은 할 때나 들을 때나 심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이 내용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지위가 높아질 수록 더욱 그렇다. 그것은 내가 전임 사령관과 가까웠다고 그가 해병 제1사단장을 하고 있을 때부터 그의 눈에 비쳐젔기 때문인것으로 나는 생각됐는데,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니 그는 나를 색안경을 끼고 이미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나에 대한 중상을 하지않고서야 그와 나는 나의 군생활을 통하여 한번도, 한국전쟁 시 서부전선에서 나는 제1연대 작전보좌관으로, 그는 제3대대 작전장교라는 업무상의 연관부서에서 근무한 기회이외는, 나에게나, 그에게 없었기 때문에 그와 나는 서로의 인간됨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나에 대한 사령관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해병대 사령관, 대장이라도 나에게는 그가 한국전쟁 때 서부전선에서의 제3대대 작전장교(대위)로 밖에 안보였다. 나는 그때 연대 작전보좌관(중위)이었다. 그래서 사령관실에서도 그와 언쟁을 했던 것이다.이런 현상은 어딘가, 또 뭔가 잘못 돼서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왜? 나에게 아직껏 그런 인식이 나의 머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느냐 해서 이다.

 

 

누구든 지난 일에 대해서 꽁하고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은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다. 그것은 전임 사령관의 편이라는 옹졸한 생각에서 기인된것이다. 이거야 말로 편가르기의 전형적인 표본이 아닌가?

 

 

사령관쯤 되면 마음이 대범한 면이 있고 또한 포용력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좁쌀 영감같은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 이런 망령이 오늘의 해병대 속에 아직 잔존하고 있지 않기를 나는 바랄 따름이다.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그 뿌리가 더 굵어져 깊이 땅 속으로 박혔는지? 혹은 썩어서 없어졌는지? 인데 이 둘 중 하나는 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나는 어느 개인을 위해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는 나의 직무에 그것이 무엇이였건 최선을 다 해 충실했을 뿐 이었다. 나는 나에게 위임된 일을 할 때는 남의 눈을 절대 의식하지 않고 나의 소신대로 처리했다. 그로 인하여 상관으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었으나 주변의 질시의 눈도 느낄 수 있었으나 나는 전혀 그런 것에 개의치 아니 하였다.

 

그것은 나는 원칙대로 정당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근무자세는 당시의 해병대에서는 전부 알고 있었고 그렇게 인정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그 당시 해병대가 침몰하기 직전에 해병대의 저변에 흐르고 있던 기류였다. 그러나 "적은 가까운데에 있다"는 말을 우리는 항상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7. 부사령관의 언질

 

지휘관회의가 끝나고 사령부 현관을 나오는데 부사령관을 우연히 만났다. "이 대령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지" 하면서 자기 승용차를 타라고 했다. 우리는 시내의 작은 일식점에서 간단히 식사겸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부사령관이 나에게 "이 대령 인제 옷 벗을 생각하고 좋은 직장을 알아보는게 어떤가?" 라고 청천벽력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무슨 소리인지, 또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어서 멍 해 있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앞으로 4, 5년을 더 해병대 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 말은 얼토당토한 소리로 들렸다. 그런 나에게 부사령관은 무슨 말을 할 듯 하면서 끝내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단지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구나 하고 추측만 했을 뿐이다. 이때 그가 나에게 말할 듯 하면서 말 안한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해병대의 해체였다.

 

그날 밤 숙소에서 자고있는 나에게 야밤에 사령부에서 전화가 왔다. 부대에서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아침 6시에 인천항에서 해군 함정이 대기하고 있으니 그걸 타고 부대로 즉시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음 날 새벽에 조바심하는 마음으로 해군의 구축함으로 3시간만에 백령도에 도착했다. 부두에 장교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뭐 있어?"하고 우선 나는 그들에게 급히 물었다. " 이상 없습니다"하는 그들의 대답이었다. 나는 어처구니 없었다. 그러면 무슨 일 일까?

 

 

사령관의 특별담화

 

다음 날 아침 일찍 사령부에서 전문이 왔다. 아침 10시에 사령관의 특별 담화문 발표가 있으니 전장교는 경청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대의 전 장교들을 오전 1010분 전까지 장교식당에 집합시켰다. 10시 정각 사령관의 담화문 내용이 전문으로 왔다. 나는 통신장교에게 읽게 했다. "19731010일을 기해 해병대 사령부와 직할부대를 해체한다"는 엄청난 우리가 예상도 못했던 내용이었다.

 

 

무슨 법 개정도 없이, 군조직법의 개정 없이 구두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해병대를 해체한다면 이건 완전히 독재가 아닌가? 나는 분통부터 터졌다. 무슨 놈의 나라가 이런가? 우리는 전부 어안이 벙벙해서 마치 시간이 일시에 정지한 것 같이 느껴졌다. 무슨 날벼락인가? 해서 였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묵묵히 앉아있었고 그들 중의 몇몇 장교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슬퍼서 였을까? 원통해서 였을까? 또는 앞으로가 염려되서였을까?

 

이렇게 우리 해병대는 우리가 이룩한 박정희 정부에 뒤통수를 얻어 맞고 어이 없게도 맥없이 해체되었다. 그리고 아뭇 소리도 못 했다. 참새도 죽을 때는 "" 한다는데 우리는 전부 입 가진 벙어리가 되었다.

 

그 동안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불리웠던 해병대가 입으로만 귀신을 잡고 있었단 말인가? 그랬다면 그 동안 흔히 듣던 개병대가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허풍대가 아니었던가?

 

 

사실 이런 사태는, 해병대 사령관이 뚜렷한 사유도 없이 중임되었을 때 우리는 무슨 예기치 않은 변동이 있을 것을 예측했어야 했으나, 그것은 부사령관(이봉출 장군)이 사령관으로 당연히 보임됬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게 된데에 대한 어떤 의구심을 가젔어야 했으나. 우리는 너무 근시안적이었고 또한 우물 속의 개구리같았기 때문에 신임 사령관의 취임을 아무 의구심없이 체념하고 받아드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회까지 계속

 

*출처 :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1010) by oldmarine

2007/11/16 00:17

해병대 해체(1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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