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3]
그것은 그의 중임이 박 정권이 해병대를 해체시키기 위한 예비 단계였음이 해병대의 해체일을 기준할 때 확실 해 졌기 때문이다. 그 해 7월 초 박 정권은 10월10일부로 해병대를 국방 예산의 절감을 이유로 해체시킨다고 발표하고 해병대 사령관(이병문 대장)의 퇴임과 동시에 해병대를 해체시켰다.
이때 해병대 사령관의 중임 기간은 1년으로 되어 있었으나 박 정권은 그를 3개월 10일만에 퇴임시켰다. 이것은 애초부터 중임시킬 계획이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심사숙고 해 보면 해병대는 그때 정부의 연막전술에 속아 넘어간 거나 다름이 없다.
즉 파월 청룡부대의 초대 부대장인 이봉출 장군의 필연적인 해병대 사령관 취임을 저지할 명분도 없고 하여 의도적으로 이병문 사령관을 임시 유임시킨 것으로 나는 생각되었다.
그리고 해병대를 전격 해체시키기로 결정하고 7월 초에 공표하고 3개월 후 1973년 10월10일에 해병대 사령관의 톼임과 함께 해병대를 해체시켰으나 실은 해병대 해체와 동시에 해병대 사령관을 퇴임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그들의 궁색한 면을 위장하였다.
그러나 이때 해병대 사령관에게는 8개월이라는 잔여 중임 기간이 남아 있었다. 결국 그들은 해병대 사령관을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이용한 것밖에 안된다. 그렇지 않았으면 당연히 박 정권은 해병대 사령관의 중임 발표와 동시에 해병대 해체도 공표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었던 이유는 해병대의 동요를 의식해서 였는지 알 수없으나 그 수법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아주 교활한 수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이병문 사령관의 임기는 6월30일까지 였다.
박 대통령과 정 사령관의 단독면담
이보다 앞서 1971년 여름, 그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는데 정 사령관은 하정복을 입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진해의 대통령 별장으로 정광호 사령관을 호출했기 대문이었다. 이때 나는 해병대학 총장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정 사령관을 수행하여 대통령 별장까지 수행했었다. 이때 별장에서의 박 대통령과 해병대 사령관과의 대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직후 정 사령관의 표정이 몹시 굳어 있었다.
그때 정 사령관은 내용의 일부를 말했었는데 박 대통령이 "나밖에 이 일을 할 수 없으니.."하면서 정 사령관에게 이야기한 내용의 일부만을 말했었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전혀 몰랐었다. 단지 무슨 중요한 내용이 있었구나하고 짐작만 했을 뿐이었고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후일에 생각해 보니 그 내용이 해병대 해체에 관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때의 정 사령관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후에도 얼마 동안 대화 내용보다 그의 심각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먼 후일에 그의 측근으로부터 들은 내용은 그때 정 사령관은 해병대 해체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대통령에게 표했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러히 생각나는 것은 박 대통령이 말했다는 그 내용"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그 말이다. 그래서 당시 정 사령관의 표정이 그렇게 심각했었던 것을 이해할 만하다. 그 후 정 사령관은 6월 말에 퇴임하고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만일 그렇다면 후임사령관인 이병문 사령관은 해병대 해체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계획을 정 사령관으로부터 듣고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알고 있었을 것임에는 틀림 없었을 것이다. 그렇타면 이병문 사령관은 과연 이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과거의 잘못된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므로서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일을 그대로 덮어두게 되면 다시 같은 잘못을 뒤풀이 하게 된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빤하지 않는가?
과거는 잊되 잘못 된 부분은 잊지 말고 개선하기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사를 연구하고 또한 역사공부도 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 일이라 해서 쉬쉬 해 버리는 자는 반드시 그 과거로 인하여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만일 그렇지 않다는 자가 있으면 그자야말로 멍청한 자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13. 해병대 전통의 와해
해병대의 해체는 병력감축(지휘부)에서 기인되는 부대의 약화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해병대의 전통을 중단시키는 큰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이다. 해병대의 전통은 어떤 서적이나 이론을 통해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해병대의 전통은 이론이 아니고 그것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정신과 그 전통은 그 전통을 계승,유지하고 있는 인물을 통해서만 정확히 전수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수 많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모방하는데 끝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이 없는 시체나 다름이 없으며 그것은 또한 해병대를 모방한 마네킹(Mannequin)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박 정권은 해병대의 힘의 중심 역활을 하는 허리의 중간을 짤라버린 거나 다름이 없다. 허리가 짤린 동물은 죽은 시체다. 설사 다시 그 허리를 접합시킨다 해서 과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느 바보가 그렇게 생각할까? 이들은 결국 해병대를 다시 온전하게 회복될 수 없는 불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어떡하다 해병대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것은 정권에 의해서 마음대로, 위정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군 조직법도 개정될 수 있다는 단적인 예를 우리에게 보여 준 실례이다. 어떻게 몇몇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이런 엄청난 무리수를 둘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엄청난 일은 미 해병대가 그랳듯이 우리에게도 다시 이런 일이 앞으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특히 해병대의 수뇌부에서는 명심하고 항상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어야한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해병대 수뇌부의 몫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 그런 망국적인 국가예산의 절약이라는 미명하에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를 통한 병력 감축은 막았어야 했고 앞으로도 막아야 한다. 이것은 해병대의 몫이 이며 또한 국민이 하여야 할 일이다. 그것은 해병대의 약화는 국가의 방위력의 약화를 의미하며 해병대는 국가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전쟁 중 우리가 국가 방호에 우리 자신을 희생하며 전투하고 있을 때 "무적 해병대, 귀신잡는 해병대"하며 환호하며 성원하던 그 국민들은 이때 우리 해병대를 방관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투에서 승전할 때마다 대서특필하던 언론조차도 묵묵 아무 소리 없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군대이며 또한 누구를 위하여 싸웠단 말인가? 나는 그런 국민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20회까지 계속
*출처 :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by oldmarine
2007/11/16 00:17
해병대 해체(1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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