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7]
약 1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그 노 장군은 군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운 일도 있고 힘드는 일도 있다면서 나의 저서에서 누누히 언급한 편가르기의 폐습에 대해서도 자기가 경험했던 사례들을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즉 나의 저서 중의 주장이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자기는 그것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은 이미 지난 일들이고 이 대령의 그 해병대를 위해서 애쓴 그 모든 노력에 대한 좋은 결실을 보지 못해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에 와서 어떻게 돌이킬 수도 없고 우리도 앞으로 얼마나 살게 될런지 알 수 없으니 그 아쉬웠던 일들을 다 잊어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매일 매일 살아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나를 위하는 고마운 위로와 충고도 나에게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저서를 통해서 누구로부터도 어떤 위로도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리고 지금 위로를 받는다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은 하나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저서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저서를 통해서 모든 해병가족들이 옳바른 군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무엇보다 이 저서 속에서 소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의 식사는 끝나고 그는 "갈데가 있어서"하면서 일어섰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것은 그는 나에게 한마디도 이야기를 할 시간을 안주었고, 오늘의 약속도 여비서가 나에게 두번 씩 먼저 전화로 약속해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 계획을 조정했을 것인데 그는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이 대령 이야기를 듣지"하고 떠났다.
그를 배웅한 나의 기분은 개운치 않았고 또 매우 씁쓸했다. 만나지 말것을, 하는 후회감마저도 순간 스쳤다. 너무나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그의 지난 날의 무슨 무용담이나 비화를 듣기 위해서 그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심혈을 기울여서 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지난 날의 상사의 위치에서 나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는 느껴졌다. 이것 역시 나에게는 서글프게 생각되는 대목이 아닌가?
나는 나의 저서 속에서 아직도 우리를 지난 날의 고분 고분하던 그런 자기 부하로 생각지 말라고 했다. 그는 나의 책을 읽었다 했지만 잠깐 흝어 본 것으로 많은 것을 빠뜨린 것 같았다.
우리의 대화는 나로서는 옛상사로부터 듣는 고마운 이야기임에는 틀림 없었으나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수긍할 수 없는 면이 있었다. 물론 그의 면전에서 나는 내색은 않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그는 나의 저서의 진정한 의도를 모르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과 나의 의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3성 장군, 해병대 사령관이 되었으니 결국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 볼 수 있으니 지금에 와서 무슨 할말이 있을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해병대 해체"로 인하여 대령으로 군생활을 끝냈을 뿐만 아니라 그 편가르기의 폐습이 어떠하였음을 폭로하였으며 동시에 해병대 정책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또한 해병대 해체에 대한 그들의 해명을 그 저서 속에서 요구했었다. 그는 나의 그런 요구에 언급했어야 했다.
내가 나의 저서에서 강력히 주장한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실상을 우리의 후배들에게 확실히 알려서 다시는 같은 잘못은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지난 일들이니, 하고 잊어 버리거나 체념한다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아무리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노년기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잘못한 것을, 그리고 그 알고 있는 것을 모른척 하고 그대로 우리의 후배들에게 물려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사실대로 정확히 알려서 그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저서의 목적이라고 나는 그 속에서 여러번 언급했었다. 전사연구는 왜 하는가?
물론 나도 그 내용을 쓰면서 혼자 격분하기도 했고 어떤 내용에서는 울기도 했다. 옛부하들이 생각이 나서였고 특히 전투 시 나의 잘못된 전투지휘로 인하여 그들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희생한 해병들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나의 속죄의 마음에서의 눈물이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어떻게도 할 수 없으나 그런 일들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우리의 후배들에게 사실대로 정확히 알려 줘야 한다는 것이 나의 논리의 근거이다.
그것은 전투에서 뿐만 아니라 평시의 군생활 중에서도 내가 겪은 것같은 잘못된 일들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다시는 나와같은 해병이 생겨서 노후에 이런 저서를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는 이런 사실 등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게 될 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내가 쓴 이 저서의 내용으로 인하여 과거에 매여 있거나 또는 억울해 하거나 아직껏 기분이 상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내 속에 응어리 지어있던, 나도 느끼거나 알지 못하고 있던, 지난 날의 일들이 완전히 풀린 기분이다.
특히 나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장로로서 매일 매일 기쁘고 즐거운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다. 오늘의 나의 생활은 지난 날을 극복하고 남음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오늘까지 나를 도와준 그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다.
나는 과거에 매여서 이 책을 저술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과거의 실상을 그대로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다. 나는 나의 이 저서내용에 대해서 이의가 있는 자는 누구건 만날 용이가 돼 있다. 그럴 경우 나는 더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3, 4년 후에, 길게 잡아서 80대에 들어서기 전에 이번 저서의 내용보다 더 구체적인 사실들을 쓸 계획이다. 그것은 어떤 폭로기가 아니라 참회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옛상관에게 한 없는 나의 존경을 표하고 싶고 두고두고 나는 그 지난 날의 상관에게 감사할 것이다.
지난 주(2005년 8월 첫주) 나는 어느, 우리가 존경하는 사령관출신 노 장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의 저서 "해병대 전투 해병대 해체"를 읽고 나를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저서에 대한 첫반응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의외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나의 저서는 어느 누구의 비리를 캐서 세상에 폭로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해병대의 편파적인 편가르기식 인사, 운영정책을 내가 관찰한 그대로 기록한 것이지 나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그리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있는 어떤 특정인의 비리내용을 사실인양 기록한 그런 저서는 아니었다.
나의 저서의 목적은 다시는 우리시대에 느끼고 당했던 것같은 그런 불행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오늘의 해병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20회까지 계속
*출처 :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by oldmarine
2007/11/16 00:17
해병대 해체(1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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