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8]
16. 해사 11기생들의 집단 항명
1956년 여름, 해군 사관학교 2학년 생도(11기생)들이 육상훈련을 목적으로 해병학교에 4주간 의탁교육 온 일이 있었다. 이 육상훈련은 매년 정기적으로 해군 사관학교 생도들에게 해병학교 사관후보생들에게 실시하는 교육내용과 별 차이없이 해병학교에서 해병대 교관에 의해 실시하는 해군 사관학교의 연례행사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때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해병학교 사관후보생 중대장인 내가 책임 맡았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환경, 해군 사관학교 에 비해 해병학교의 열악한 환경(노고화 된 병사, 내무실, 침구 및 식당과 식사등) 에 대하여 해병학교에 입교 초부터 이들의 불편한 심기를 이들의 얼굴에 그대로 표현하고 있음을 나는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때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것은 "군인은 어떠한 악조건하에서도, 환경에서도, 살아남아야 된다"는 군인의 기본정신을 잊고 있었다. 아니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 해군 사관학교의 문제점이 있었는데 생도들의 행태를 보고 나는 해군 사관학교에서는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함정 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했다.
이들은 해병학교 사관후보생과 똑같이 매일 계속되는 육상훈련에 지쳐 훈련 중에 이들의 불만과 힘든 해병대식 훈련에 더 이상 훈련을 못받겠다고 집단 이탈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이들의 의사를 표현하였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만드는 꼴이었다.
어느날 저녁 식사 후 나의 지휘하에 단독 무장으로 진해 시내에 있는 충무공 동상까지의 왕복 구보 중 이들 전원이 약속이나 한 듯이 갑자기"이 따위 훈련은 안받아도 돼 학교로 돌아가자" 하면서 해군 사관학교로 구보 방향을 돌렸다. 나는 현장 지휘관으로서 이들에게 구보를 계속할 것을 여러번 명령했으나 이들은 듣지않았다. 이들은 이때 전원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시내로 외출 나온 이들의 후배생도를 선배에게 인사도 안한다고 구보대열에서 이탈하여 구타까지 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음은 틀림없었다.
이런 행위는 군인으로서의 기본 훈련의 부족과 정신 무장이 덜 된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생도는 영문도 모르고 시내 한 복판에서 두들겨 맞은것이다. 이때 지나가는 행인들이 이상한 눈으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의 나의 심정은 권총이라도 내가 차고있었으면 선두주자와 이들의 주모자를 사살했을런지도 알 수 없었던 그런 급박한 상황이었다.
나에게는 명령 불복종이란 있을 수 없고 또한 나는 그런 소리를 군 생활을 통해 들어 본 일조차 없었다. 이런 정신자세는 강한 훈련과 실전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이 이후부터 나는 이들이 보는 앞에서 45구경 권총에 실탄을 장진하고 구보를 항상 실시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공갈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한국 전쟁 중 소대장, 중대장을 하면서 적과 전투하던 그 전투의식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이런 나의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런 집단 행동같은 것은 전투 중 있을 수 없는 일로서 만일 이런 경우 전투 중 전투를 거부하거나 또는 적전에서 도주하는 자는 즉결처분, 즉 총살형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해병 제1연대가 중동부전선에서 전투 중 적전 도망자를 총살형에 처한 일이 있었다. 나의 이런 강경방침은 그런 전례를 이 생도들이 앞으로의 군생활을 통해서 되풀이 하지않게 하기위함이었다.
그리고 어느 나라 군대에 이런 미친 군대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당시의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미친 사람은 설득이나 회유로서는 다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경우 행동으로 다루어야 한다. 군인은 행동으로서 국가를 방위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잖는가? 이런 강한 훈련은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 이들은 마땅히 자기들의 불편한 심기를 그들의 훈육관에게, 해사 4기생출신, 그때 해병하교에 훈련 기간 중 상주하고 있었다,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집단 행동이라는 "집단항명, 훈련장 무단이탈, 및 명령 불복종" 등의 징계사유에 해당되는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들의 이런 막가는 식의 집단 행동에 대하여 나는 해군 사관학교에서의 이들의 훈련 방향과 그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사관생도들이 틀림없이 돌아올것을 확신하고 중대장실에서 구대장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밤 12시에 이들은 저녁도 못 먹고 해군 사관학교에서 해병학교까지 그 먼 거리를 구보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연병장에 들어서자 대부분의 생도들은 주저앉거나 들어 누웠다. 그들을 보는 순간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주간에 구보하다 못 끝냈으니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 했더니 이들의 한숨과 신음소리가 무슨 동물의 단말마의 신음 소리같이 나에게 크게 들렸다.
그래도 나는 계속하려했는데 내옆에서 이들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던 교수부장이 "생도들이 기진맥진하고 있으니 쉬도록 하라"는 지시로 생도들의 구보계속을 중단했다. 이때의 교수부장은 해사출신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전원 퇴교 조치해야 된다고 해병학교 부교장(김광식 중령)에게 강력히 건의했다. 부교장도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부교장도 나의 보고로 현장에서 이들을 만류했으나 이들은 막무가내 하고 사관학교로 계속 뛰어 갔다. 이때의 이들은 부끄럽게도 군사교육을 받은 그런 질서 있는 사관생도가 아니었다. 만일 이들이 전원 퇴교조치되면 이들은 사관학교를 졸업 못하게되며 결과적으로 해군 사관학교 11기생은 없어지게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해군 사관학교에서는, 학교장이 해병교육단 교수부장실에서, 나에게 선처를 부탁했으나 나는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다. 이것은 누가 용서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고 규정을 어기면 당연히 규정에 따라 조치하여야 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관학교생도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는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해군 사관학교의 훈육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학교 당국에도 책임이 있음을 나는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부교장이 갑자기 "이 소령 그 동안 사관후보생과 사관생도들을 훈련시키느라 고생 많았으니 휴가를 다녀 와" 하지않는가? 나는 깜짝 놀랐으나 영문을 모르는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1주 간의 휴가를 다녀왔다. 그런데 이 갑작스러운 부교장의 선심에는 꿍꿍이 속이 있었음을 나는 후에 알게되었다.
내가 진해를 떠나 있는 동안에 해군 사관학교에서 11기생에 대한 징계조치를 마무리 한것이다. 이때 내가 진해에 있었으면 당연히 현장 지휘관으로서 징계위원회에 참석하여 이들의 전원 퇴교를 주장할 것을 예견하고 미리 선수를 쓴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처사는 비열했지만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당시에는 생각않했지만 오랜 후에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국적이라는 이유로 작은 문제를 덮어두거나 시정하지 않으면 끝내는 더 큰 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사건의 후유증 등으로 인하여 11기생이 사관학교을 졸업 후 해병대로 전과한 인원수는 9명이었으나 이들 중에 2명은 장성(제16대 해병대 사령관, 성병문 중장과 변영화 소장)으로 진급한것은 큰 성과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해 가을에 사관학교 14기생들이 역시 해병학교로 육상훈련 목적으로 의탁교육을 왔으나 이번에는 말썽없이 열심히 육상훈련을 받고 나에게 감사하며 돌아갔다. 이들 중 49명이 해병대로 전과했다. 예정된 인원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었다.
20회까지 계속
*출처 :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by oldmarine
2007/11/16 00:17
해병대 해체(1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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