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3]

Marine Kim 2021. 1. 19. 23:22

Marine story

 

海兵隊6.25 動亂 參戰 [3]

 

搜索소대장 金鐘植 중위는 소대원 30여 명의 해병으로서 적이 사정거리내에까지 접근하는 것을 기다려 일제히 맹사격을 가했으나 적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사상자를 내면서 문자그대로 人海電術로 공격하여 왔음으로 제2중대는 즉시 1개 분대를 마 高地로 파견하여 932부대를 지원케 함으로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2중대 정면의 적은 해병대의 맹열한 저항으로 라 陵線일대에 고착되었으며 戰勢는 아군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특히 중화기중대에서는 고착된 적에게 박격포의 명중탄을 집중하니 적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72820:00시경 후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는 적 8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린 반면 해병대는 11명의 부상자와 행방불명 1명을 내었다.

 

(3) 晉州地區戰鬪

金聖恩部隊咸陽동북방에서 적을 격퇴시키자 제7사단본부로부터 "현지를 철수하여 山淸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이것은 적이 아군의 배후로 침투하여 철수로인 山淸, 晉州도로를 점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팔랑재'의 제3중대와 咸陽에 예비대로 있던 제7중대를 이동시키는 한편 제1중대와 제2중대도 山淸으로 철수시키고 932부대(수색대)에도 철수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리하여 해병부대는 23km의 거리를 불민, 불휴로 각개 중대단위로 '산청'으로 철야행군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색대가 철수할 무렵에 적은 이미 白岩山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수 중에 전투를 예상치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달이 없는 캄캄한 밤 중에 咫尺을 가릴 수 없을 뿐더러 철야행군에 피로하여 낙오병이 속출하고 또한 隊伍도 허틀어지게 되어 부부대장 金秉鎬 대위와 5명의 하사관은 부대의 후미에서 완전이동을 꾀하였다.

 

金萬洙 三等兵曺, 朴基洙 一等海兵

이렇게 하면서 험준한 智異山의 산길을 헤쳐 '산청'으로 철수 중 적 2명을 발견하였다. 이때 적은 야음으로 피아를 분별못하였는지 "동무들 수고했소"하면서 악수를 청하고 호각으로 다른 인민군과 연락하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이때 三曺 金萬洙一海 朴基洙는 대담하게도 적에게 덤벼들어 총검으로 적을 살해하므로써 철수부대는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같이 각대가 '산청'으로 철수하기까지의 위기와 스릴과 또한 피로는 헤아릴 수 없었다. 주력부대도 역시 고초를 겪으면서 72907:00'산청'에 집결하였고 수색소대는 10:00'산청'에 도착하여 주력부대와 합류하였다.

 

때마침 金大植 중령이 해군참모총장의 특사로 자동차 3대에 담배, 과자 등의 위문품을 만재하고 '산청'에 도착하였다. 이 위문품을 받은 해병들은 감격에 벅차 근 1주일 간의 도보행군, 전투와 침식부족으로 인한 千辛萬苦를 잊고 한 때 함성을 지르면서 기뻐하였다. 이리하여 사기를 회복한 金聖恩부대 전장병은 '진주'로 이동하게 되었다.

 

晉州는 과거 해병대가 반년 동안 훈련과 '지리산' 共匪討伐을 위하여 주둔하였던 곳이다. 72912:20시 부대는 金大植 중령이 가져온 차량 3대와 또다른 6대의 차량에 분승하여 '산청'을 출발하여 16:40'진주'에 도착하였다.

 

晉州에 도착한 장병 일동은 잠시나마 살벌한 戰場을 떠나 옛 故鄕에 온 것과같은 흐믓한 정서를 맛보게 되었다. 金聖恩부대는 '진주시' 금성국민학교 교사에 숙영하고 730일 미 육군 제27연대에 배속되어 이곳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날 12:00시 부대는 연대작명으로 출동준비를 완료하고 대기 중 연대본부로부터 BAR 8정과 SCR-300(통신기) 3대를 보급받았다. 이는 해병대가 미군으로부터 받은 첫 장비였다.

 

73013:40金聖恩부대장은 南江 도하에 앞서 우선 정찰대를 차출하여 南江부근 일대의 정찰을 실시하였다. 당시 적은 이미 河東'진주'를 점령할 계획하에 '하동''진주'를 연하는 도로를 타고 '진주'를 향하여 남하 중에 있었으며 부대의 선두는 '진주'서방 약 10km 지점까지 진출하고 金貴里서방 고지에 사단본부를 설치하고 일부 병력은 '남강'을 도하하여 泗川읍에 침입하였으며 주력부대는 '진주'를 서쪽과 남쪽으로 포위할 태세로 이동을 계속 중에 있었다.

 

이같은 적정아래 해병대는 '하동'방면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저지하는 임무를 받았다. 즉시 부대는 南江135.8고지 및 동쪽고지일대에 포진하였고 미 육군 제27연대는 좌일선, 즉 해병대가 점령한 고지의 남쪽 고지와 '남강'북쪽 '진주'방면 137.5고지에 포진하였다. 해병대는 제2중대를 예비대로 하고 제3중대와 제7중대에 중화기를 배속시켰으며 박격포는 제3중대를 지원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730일 오후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16:30시부터는 135.8고지에 대한 적의 세력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이때 좌일선의 미 육군부대는 벌써 교전 중에 있었고 3017:00시에 해병 제3중대와 제7중대 정면에 출현한 적은 박격포와 자동화기로서 맹열히 아군 진지를 공격하여 왔다. 해병부대는 총화력을 집중하여 내습하여 오는 적을 진전에서 저지, 격멸하였다. 야간에 비가 심하게 내리기 시작한 틈을 타서 적의 출현은 자주 반복되었으나 해병부대는 총화력을 집중하여 밤이 새도록 전투를 계속하여 진지를 고수하였다.

 

한편 73003:00시경 '남강'북쪽에서 교전하던 미군의 주력부대는 적의 진지침투로 인하여 宣寧방면으로 후퇴를 개시하였으나 이미 '남강'교는 파괴되어 미군 전차는 도하치 못하여 전차를 다리목에 유기한채 진지를 철수하였다.

 

해병부대 정면의 적은 아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공격을 단념하고 그들의 선발대는 '남강'을 도강하고 '진주'쪽으로 향하려 하였다. 해병부대는 최후까지 萬鏡山의 진지를 고수, 전화력을 집중하여 '진주'로 침입하려는 적을 맹타하였다.

 

적은 전차를 투입하여 '만경산'의 해병부대를 공격하는 한편 주력부대를 '진주'시내에 침입케 하여 73106:00시 드디어 '진주'를 점령하고 계속하여 해병부대의 진지에 공격을 가하여 왔다. 이때 해병부대는 철수명령을 받고 73109:30'진주'를 철수하여 馬山으로 향하였디.

 

이 전투에서 얻은 전과는 다음과 같다.

전과 : 사살 16명 포로 3명 따발총 1정 장총 3

피해 : 전사 5명 부상 5명 행방불명 5명 행방불명 1

 

4. 鎭東里지구전투

 

(1) 馬山집결

'진주'를 점령한 적은 그 여세로 鎭東里, '마산'방면으로 침입하여 왔다. 이로 인하여 최후 기지인 釜山, 鎭海에 대한 위협은 날로 가중되었다. 이 적의 우회공격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중부전선과 동부전선도 붕괴될 우려가 있었다. 이리하여 우군은 馬山에 집결하여 부대를 정리한 연후 반격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정세가 이러함에 따라 육군부대와 미 육군도 '진주'에서 철수하였고 해병대도 도보로 '진주'에서 群北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鎭海 海軍統制府로부터 파견된 2대의 차량과 부대차량으로서 '마산'으로 향하였다. 73116:00'마산'에 도착한 해병대는 城湖國民學校에 숙영하였다. 연일의 철수와 전투 그리고 내려쪼이는 폭염에 시달리던 해병장병은 오래간만에 하룻밤이나마 푹 쉴 수 있엇다. 이날은 특히 위문품을 수령하고 지난날의 피로를 잊고 새로운 전투에 대비할 용기를 가다듬을 수 있엇다.

 

(2) 姑舍里전투

馬山에 집결한 해병대는 서부지구전투 사령관 李應俊 소장의 작전지휘하에 들게 되었다. 8113:00시 서부지구전투사령부로부터 [海兵隊馬山을 향하여 東進하고 있는 群北북방에 배치된 육군 閔機植部隊와 협동하여 鎭東里서방에서 沮止殲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리하여 출동준비를 완료한 金聖恩部隊8118:00시 출동하여 22:30시 전원 姑舍部落에 도착하였다. 02:00시에 지휘소를 '고사리'지서에 설치하고 부대를 배치 후 정찰을 실시하였다. 적정을 정확히 파악치 못한 해병대는 계속하여 정찰대와 수색대를 투입하여 적정파악에 노력하였다.

 

이때의 적정은 명확치 않았으나 '진주'방면으로부터 우군부대들이 간단없이 포 및 전차를 선두로 '진동리'방면으로 철수하는 것을 보아 적의 공세는 매우 강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固城방면으로부터 철수한 경찰관의 보고에 의하면 적은 '고성'을 거쳐 82일에 背屯里에 침입하였으며 背屯里경찰지서는 적의 습격을 받아 다대한 손실을 입어 직원들은 기능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때를 같이 하여 해병대 제1중대도 82008:00馬山을 출발하여 부대의 주력의 주둔지인 故舍里로 출동 중 '진동리'서방 7km 지점에서 '고성'방면으로부터 북상한 적의 습격을 받아 교전 30분 끝에 9명의 부상자를 내고 작전상 일단 '진동리'로 후퇴하였다가 주력부대와 咸安에서 합류하게 된 것이 84일이었다.

 

 

계속 [1] ~ [7]까지 있음.

資料: 海兵戰鬪史(海兵隊司令部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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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海兵隊6.25 動亂 參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