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ne story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5]
이 특진의 영예를 축하하는 해군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의 찬사는 다음과 같다.
金聖恩 大領部隊 貴下
金聖恩 大領部隊의 燦爛한 功勳은 높이 讚揚되어 있으며
그 赫赫한 武勳을 衷心으로 祝賀함. 특히 出動部隊 全將
兵이 一階級 特進함에 對하여 祝賀하며 앞으로의 健鬪를
祈願함.
海軍參謀總長
또한 申鉉俊 해병대 사령관의 찬사는 다음과 같다.
金聖恩大領 貴下
今次 貴官以下 將兵一同이 慶南地區作戰에 參加하여 小數兵力
으로서 온갖 惡條件을 克服하고 굳은 團結과 一致된 行動으로
赫赫한 戰果를 올리고 海兵隊의 傳統과 씩씩한 모습을 滿天下에
宣楊하여 준 功勳에 對하여 衷心으로 感謝와 敬意를 表함. 特히
大統領閣下의 特命으로 出動將兵의 特進을 無限히 기뻐하며 今
後 一層 奮發하고 더욱 自重하여 大統領閣下와 國民一般이 크게
期待하는 바에 附合되도록 奮鬪努力을 바람.
現今 濟州島에서는 新兵 1,600名에 對한 入隊式을 마치고 戰線에
參加하기 위하여 將兵一同이 合心 猛訓練을 繼續 中에 있음.
海兵隊司令官
(5) 第二次 鎭東里地區戰鬪
馬山에 집결한 해병대는 미 육군 제24사단에 배속되었다. 서부지구전투사령부 작전명령 제8호에 의하여 해병대는 육군 閔機植部隊(미 제25사단 배속)와 경찰관 崔天이 지휘하는 警察部隊와 협력하여 이 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金聖恩部隊는 다시 진해 통제부로부터 155명의 보충을 받아 부대를 증강한 후 馬山을 출발하여 8월7일 19:00시 '진동리'에 도착하였다. 부대는 도착 즉시 배치되어 수색정찰에 임하였으나 접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8월9일 11:00시부터 적은 아군진지에 맹열한 포격을 가해왔으며 8월10일 03:00시 적은 해병대 진지를 향하여 전면적으로 공격을 가해왔다.
먼저 적병 약 200명은 '진동리'지방 4km지점인 鎭東里와 咸安을 연하는 고지로부터 포의 지원하에 제3중대 및 제7중대의 정면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만반의 태세를 갖춘 해병대는 적이 유효사정내에 이르자 일제사격을 가하여 치열한 교전 끝에 10일 05:30시 적을 완전히 격퇴하였다.
8월 10일 03:00시 해병대는 현진지를 미군에게 인계하고 '진동리'에 집결하였다. 제3중대와 제7중대의 공격에 고배를 마신 적은 후속부대의 지원을 받고 재차 '진동리'서방으로부터 우군진지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의 해병대의 공격임무는 적의 후속부대의 기선을 제압하여 이를 공격, 격퇴하고 좌일선인 미 해병여단과 협동하여 적을 서쪽으로 구축하는 것이었다.
金聖恩부대장은 사단의 공격명령에 따라 다음과 같은 작전복안을 수립하였다. 즉 제2중대는 목표 #1, 209고지와 목표 #2, 435고지를 점령하고 西北山까지 진출할 것이며 제3중대는 제2중대의 서측 夜半山을 점령하고 계속하여 557고지(鷲峰)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제7중대의 좌일선이 되어 전진하고 368고지를 점령할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8월 10일 13:00시 집결지를 출발한 장병은 전날 밤부터 식사를 하지 못하고 대용식 건빵을 먹으면서 작전에 임하였다. 더욱이 혹서는 심하게 계속되었으나 사기는 자못 왕성하였다.
작전계획에 따라 부대는 전진 중 제2중대가 목표 #1 부근에서 적 약 60명과 조우하였으나 제2중대는 곧 전투배치하여 교전 끝에 적을 격퇴하였다. 적이 북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자 제2중대 장병의 사기는 더욱 충천하였으며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서북방면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전진을 계속하였다.
제3중대는 夜半山을 공격, 점령하고 鷲峰(557고지)을 점령하였으나 '취봉'전방 50yds지점에서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쳐 상호 치열한 수류탄전을 전개하였으나 적의 우세한 화력으로 인하여 공격이 일시 頓挫되었다. 제3중대가 점령한 위치는 극히 험준하고 전부가 암석으로 되어 있었으며 적이 사격하는 박격포탄은 아군진지 일대에 떨어져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한편 제7중대는 368고지를 점령하고 계속 50yds 더 진출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하여 치열한 교전을 계속하던 중 일몰이 되자 공격을 중지하고 점령한 위치에서 야간경계에 임하엿다.
제2중대는 계속 공격을 감행하여 목표 #2를 점령하였고 8월10일 18:20시에는 '서북산'을 완전히 점령하고 야간경계에 임하였다. 이와같이 각중대는 일몰 전에 각기 공격목표를 완전히 점령하고 차기 명령을 대기하였다. 그러나 이때에 기동력이 약한 해병대는 후방과의 연락이 순조롭지 못하여 식량의 추진보급을 받지 못한채 밤을 새웠다.
8월 11일 08:00시 해병대는 계속 공격을 감행하여 제3중대는 13:00시에 공격목표인 '취봉'(鷲峰)을 점령하였고 제7중대는 368고지에서 우군, 포병의 지원하에 공격을 개시하여 전방의 400고지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이렇게 하여 해병대는 '서북산'에서 남쪽을 직선으로 연하는 능선 일대를 완전히 점령하고 '마산'으로 통하는 보급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8월 12일 06:00시 해병대는 점령, 확보한 진지를 미 육군 제25사단에 인계하고 일단 '진동리'에 집결하여 식사를 마친 다음 차량으로 차기 작전을 위하여 中岩里로 이동하였다. 해병대에서 수행한 이 작전의 성공으로 인하여 '마산'으로 통하는 도로에 위치한 작전상의 요지인 鎭東里는 완전히 확보되었다.
이 전투의 전과는 다음과 같다.
戰果: 사살 43명 포로 2명 권총 3정 칼빙 2정
BAR 8정 대전차포 1문 장총 6정 따발총 8정
被害: 전사 14명 부상 42명 행방불명 3명
(6) 中岩里地區戰鬪
8월 12일 中岩里에 도착한 해병대는 즉시 공격작전을 시작하였다. 해병대가 西北山 남쪽일대의 능선일대를 제압함으로써 후퇴한 적은 그 수가 2,000명이며 '서북산'능선 전방 4km 지점인 筆峰 및 五峰山 일대에 집결하고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적은 '함안'을 경유하여 '진동리'북쪽으로 돌아 동진하여 馬山을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해병대의 임무는 '진동리'에서 '함안', '중암리'일대에 포진하여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미 육군 제25사단과 합동작전으로서 수행할 이 작전을 보다 훌륭히,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면밀한 계획하에 金聖恩부대장은 예하부대에 다음과 같이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즉 해병대의 각 중대는 미 육군 제25사단(좌측에서 남쪽으로부터 공격)과 연계를 지으면서 제2중대는 좌일선이 되어 목표 #1을 점령하고 제3중대는 우일선으로서 목표 #2를 점령할 것이며 제7중대는 예비대로서 砂忖里에 위치하여 별명을 대기하고 제1중대는 제2중대의 공격을 직접 지원케 하였다.
8월 12일 14:30시 공격개시 시간이 되자 제2중대 및 제3중대는 각기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2중대는 예상외로 완강한 적의 저항을 받았으나 우군 항공기의 적절한 지원과 제1중대의 지원으로서 이날 18:00시에 목표 #1을 완전히 점령하였으며 도한 제3중대도 우군의 지원으로 무난히 목표 #2를 점령하였다. 이 적은 남쪽으로 도주한 후, 統營에 침입하였을 때도 해병대에게 분쇄되었다.
이 전투의 전과는 아래와 같다.
戰果 사살 19명 박격포 2문 따발총 2정
被害 전사 3명 부상 12명
(7) 해병대 鎭海로 凱旋
해병대는 전선으로 출동한 이래 계속되는 철수작전과 치열한 공격작전 등으로 인하여 장병들의 피로는 극도에 달했다. 특히 鎭東里作戰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수행한 불민불휴의 전투였다. 金聖恩부대장은 부하들의 사기진작과 차기작전을 위하여 부대휴식이 필료함을 느꼈으나 이때의 치열한 전선의 제반 양상은 해병대의 계속 적인 감투를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8월 13일 해병대는 미 육군 제25사단장으로부터 현지를 미 육군에 인계하고 大邱로 육군의 閔機植 대령부대와 같이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8월13일 08:00시 해병대는 진지를 미 육군에게 인계하고 中岩里 정류장까지 도보로 이동을 시작하여 10:00시에 승차를 완료하고 대기하였다.
이때 부대장 金聖恩 대령은 자동차로 '마산'에 급행하여 馬山憲兵隊에서 전회로 해군총참모장에게 이 이상 더 휴식없이 전투에 계속 참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는 休息의 필요성을 진언하였다. 뒤이어 '중암리'에서 해병대를 싣고 온 기차는 '마산'역에 도착하였다. 때마침 해군총참모장으로부터 부대는 '진해'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리하여 8월13일 22:40시 鎭海統制府에서 차출된 金剛號외 3척의 선박에 분승하여 '마산'을 출항하여 02:30시 '진해'에 입항하였다. 鎭海 海軍統制府 司令官이하 장병 다수의 환영을 받으면서 하선하여 즉시 防備隊청사를 숙소로 정하고 배낭을 풀었다.
8월 15일 祖國光復 50周年記念日을 맞이하여 이날 15:00시부터 해군총참모장, 해군통제부 사령관이하 많은 장병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거행한 후 閱兵分列式이 있었다. 특히 지난 날의 용전을 고무, 격려하는 해군총참모장의 훈시가 있엇으며 또한 표창장이 수여되었다. 뒤이어 장병들은 해군병원에 입원 중인 부상전우들을 위문하였다.
계속 [1] ~ [7]까지 있음.
資料: 海兵戰鬪史(海兵隊司令部發行)
oldmarine
출처: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해병정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7] (0) | 2021.01.19 |
---|---|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6] (0) | 2021.01.19 |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4] (0) | 2021.01.19 |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3] (0) | 2021.01.19 |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2] (0) | 2021.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