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2]

Marine Kim 2021. 1. 19. 23:21

Marine story

 

海兵隊6.25 動亂 參戰 [2]

 

한편 '군산'을 포위한 적은 점차 '군산'시내로 침입함으로 인하여 수색대도 철수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金鐘植 중위는 끝까지 시내에 잔류하여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적의 침입을 최대한으로 지연케 할 각오였으나 이때의 주위의 형세는 극히 불리하게 전개되어 가고있었다. 적은 이미 경찰서를 점령하고 물 밀듯이 시내로 침입함으로 인하여 분통을 참을 길 없었으나 눈물을 먹음고 철수하여 본부와 합류하고 721木浦에 도착하였다.

 

한편 적은 720'함열'을 점령하고 '이리'를 향하여 남하하고 있었으나 '이리'로 전진한 金秉鎬 대위가 지휘하는 제3중대는 '이리'북방 1km 지점에서 유격, 교전하여 적 16명을 사살하고 50명을 사상시켰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는 15명의 전사자와 17명의 부상자 그리고 7명의 행방불명자를 내는 등 피해를 입었다.

 

이같이 제3중대는 적의 신장비에 비할바 못되는 구식장비로서 강력한 적과 조우하였으나 해병들은 용전하면서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철수명령에 의거 '목포'로 향하는 철로를 따라 질서있게 철수를 개시하여 721일 철수를 완료하고 집결지인 '목포'에 도착하였다. 이리하여 高吉勳 부대는 73118:00'목포'에서 '여수'로 향하였다. 이는 새로운 작전에 필요한 신장비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3. 咸陽地區, 晉州地區戰鬪

 

(1) 부대의 신편성

高吉勳부대는 신장비를 갖추기 위하여 72208:00'여수'에 입항하였다. 한편 해병대 사령부 참모장 金聖恩 중령은 제주도에 잔류하고 있던 병력 중에서 1개 중대(7중대)를 지휘하여 FS 堤川號로서 72606:00시 제주도를 떠나 동일 18:00시에 '여수'에 입항하였다. 여기서 高吉勳부대의 3개중대와 제주도에서 도착한 제7중대는 통합 신편성되어 이를 金聖恩 중령이 지휘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총병력은 371명이었다.

 

이리하여 해병대에서 창설초기부터 대망하던 M1소총 및 박격포 등이 해군본부로부터 FS 永登浦號에 실려 '여수'에 도착하게 됨으로써 새 장비를 보유하게 된 장병들의 사기는 절정에 달하였다. 이렇게 하여 장비는 일신되었으나 해병들은 이때까지 신무기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해병들은 수송선 갑판 위에서 신무기의 조작과 분해, 결합 방법 그리고 성능과 구조 및 취급상의 주의 등에 대하여 교육을 받게 되었다.

 

金聖恩 부대가 수송선에서 차기작전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때 해군본부로부터 "南原에 있는 陸軍 7사단에 편입되라"는 명령을 받았다. 즉시 해병대는 수송선에 실려 있는 탄약과 기타 군수물자를 철야 작업으로 기차에 옮겨 싣고 72303:00'여수'를 출발하여 동일 10:20'남원'에 도착하였다. 이때 裡里지구전투에서 전사로 오인되었던 金漢壽 소위(해간 1)이하 4명이 곤경을 돌파하여 '남원'으로 귀대하였다.

 

당시 육군 제7사단은 서부지구전투사령부 예하에 있었다. 서부지구전투사령부와 金聖恩 부대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西部地區전투사령부의 편성은 사령관에 육군 소장 申泰英, 참모장 준장 元容德이었고 제7사단은 사단장에 閔機植 대령이었으며 예하에 吳德俊 대령 부대(주로 학도병으로 편성 약 700), 李英圭 중령 부대(靑防, 경찰로 편성 약 500), 金聖恩 부대가 있었다.

 

 

(2) 咸陽地區戰鬪

南原에 있던 육군 제7사단은 72316:00시 서부지구 전투사령부 작전명령을 받고 2403:00시를 기하여 '전주'를 공격하고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해병대는 기차편으로 '남원'을 출발하여 '임실'에 도착한 후 '전주'를 공격할 계획으로 있었다.

 

그러나 적은 이미 '전주'를 통과하여 '남원'서방 7km지점인 '창순'을 점령하고 '남원'을 공격 중에 있었고 '남원'에 잔류한 사단예비대인 육군부대가 출동하여 '남원'북방 4km지점에서 적과 교전 중에 있었다. 이때의 피아의 포탄의 작렬하는 소리는 '남원'시내까지 들려왔었다.

 

 

任實에 도착한 해병대는 이와같은 적정을 입수하지 못하고 '전주'를 공격하기 위하여 대대공격명령을 하달하고 공격개시선을 향하여 부대를 이동시키기 위하여 '임실'에서 하차하였다. 그러나 72402:00시 사단사령부로부터 '전주'공격을 중지하고 기차편에 급히 '남원'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때 이미 '임실'에서 하차를 완료하였던 해병부대는 다시 승차하여 '임실'을 출발, 두시간 후인 2404:00'남원'에 도착하여 곧 역부근에 경계병을 배치하고 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72409:00시 사단본부로부터 "육군부대는 雲峰으로 철수하고저 하니 해병대는 '남원'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고지일대를 점령하여 육군부대의 철수를 엄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따라 해병대는 즉시 행동을 개시하였으나 이때 적의 포탄은 이미 '남원'시가와 정차장부근 일대에 낙하하기 시작하자 육군부대와 경찰을 실은 기차는 곧 '운봉'을 향하여 질주해 버렸다.

 

海兵隊는 적을 저지하기 위하여 '남원'의 동방쪽고지를 점령하려 하였으나 이때 이미 우군부대는 '남원'시가에서 완전히 철수하였고 적의 일선부대는 시내일각에 돌입하고 있었으며 '남원'의 동쪽고지 일대를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해병대가 계속 '남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적에게 완전히 포위당할 뿐만 아니라 철수로를 차단당할 우려가 농후해 졌음으로 해병부대는 고지점령을 포기하고 도보로 '남원'을 철수하기 위하여 '운봉'을 향하여 행군을 개시하였다.

 

이같이 해병대는 우군부대의 철수작전으로 인하여 단독으로 적과 접적할 수 없어 탄환을 일발도 쏘지못하고 麗水를 떠난지 三晝夜를 폭염 속에서 식사와 수민을 제대로 취할 수 없이 이동만을 계속하였으니 장병들의 피로는 극심하였다.

 

더욱이 雲峰으로 철수하는 길은 智異山의 기슭이라 이 험준한 산길을 헤치고 30여 리나 행군하게 되니 낙오병이 속출하는 형편이었으나 서로 격려하면서 목적지인 '운봉'에 전원이 무사히 도착한 것은 72413:30시였다. 이리하여 해병대는 사단예비대로서 하룻밤을 쉬게 되었으나 다음 날 25일 다시 사단작전명령에 따라 吳德俊부대와 협동하에 '운봉'지구 방어에 임하게 되었다.

 

726일 해병대는 제3중대를 예비대로 '운봉'의 사단지휘소 부근에 위치케 하고 제1중대 및 제2중대는 '운봉'서쪽의 1304고지, 7중대는 809,7고지를 점령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내습에 대비하였다.

 

72620:00시경, 사단으로부터 "해병대는 현진지를 철수하여 '운봉'의 동쪽지점에 있는 목장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해병대는 즉시 이동을 개시하여 약 2시간 후 목장에 집결하였다. 또 다시 "해병대는 '팔랑재'로 철수하라"는 명령으로 72702:20시 현지로 이동을 완료하고 南原, 雲峰으로부터 내습해 오는 적을 수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철수명령을 받고 제3중대만을 '팔랑재'에 잔류케 하고 주력부대는 12:20시 집결지인 咸陽에 도착하였다.

 

金聖恩부대가 육군 제7사단에 배치되어 철수를 거듭할 때 해병들은 연일 계속되는 철수작전으로 그 피로는 극도에 달해 있었다. 이때 해병들은 자기들의 부대장도 피로할 것이라고 믿고 행군 도중 닭을 잡아 부대장에게 권하였으나 부대장은 해병들이 먼저 먹는 것을 보고난 뒤에야 비로서 식사를 하였다.

 

部隊長은 해병들이 식사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식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같이 식사할 때마다 지휘관의 온정에 접한 전 장병들은 "이러한 지휘관과 함께 있으면 싸우다 죽어도 이 없다"는 신념을 더욱 굳게 하였다. 이같이 모든 곤궁과 역경에 처해있으면서도 이를 극복하여 상하단결의 아름다운 戰友愛는 날로 높아만 갔다.

 

이리하여 金聖恩부대가 咸陽에 도착하였을 때 적은 이미 '함양'동북방 居昌, 安義를 점령하고 있었고 727일에는 '함양'동북방 6km 지점까지 침투하고 있었다. 동일 육군의 吳 部隊 및 미군 1개중대가 '안의'에서 적과 교전 중 적에게 포위당하고 있었으며 전투사령부와의 연락이 두절상태에 있었다.

 

이 부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해병대는 제7중대를 '함양읍'에 잔치시켜 사단예비대로 하고 주력으로서 '함양''안의'를 연하는 도로를 따라서 '안의'를 공격, 점령하게 되었다.

 

728金聖恩부대는 육군 吳 部隊 및 미군 1개중대와 연계를 지으려고 부대장 지휘하에 제2중대, 본부중대 및 중화기중대순으로 '안의'를 향하여 출동하였다. '함양'동북방 약 4km 지점에 이르렀을 때 '안의'방면으로부터 남하 중인 적 1개대대와 조우하였다. 해병대는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고 72815:10시 제1중대가 '함양'동북방에 있는 가 高地와 나 高地를 공격, 점령하고 수샏소대는 白岩山 앞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때 제1중대(화기중대)는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은 이때 이미 라 陵線까지 진출하여 제2중대가 진출하고 있는 고지를 탈환할 목적으로 가, 高地에 대하여 박격포, 기관총, 소총 및 따발총 등으로 사격을 가하면서 논밭을 건너 나 高地에 접근하여 왔음으로 제2중대는 일제히 이 적에게 전화력을 집중하여 맹사격을 가하였다. 해병대의 사격에 더 이상 전진을 못한 적은 완전히 공격을 저지당하였다.

 

이때 적은 해병대가 점령하고 있는 가, 高地를 정면공격으로는 점령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예비대를 동원하여 932부대(부대장 金鐘植 중위)가 점령하고 있는 마 高地를 향하여 전술종대로 접근하여 왔다.

계속 [1] ~ [7]까지 있음.

資料: 海兵戰鬪史(海兵隊司令部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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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海兵隊6.25 動亂 參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