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海兵隊의 6.25 動亂 參戰 [6]

Marine Kim 2021. 1. 19. 23:26

Marine story

 

海兵隊6.25 動亂 參戰 [6]

 

5. 統營地區戰鬪

 

(1) 統營作戰意義

, 人民軍의 공격도 8월에 이르러서는 점차 약화되고 전선은 洛東江을 중심으로 피아 대치하는 정도로 되었다. 東部戰線에서는 浦項을 중심으로, 中部에서는 倭館 등지에서 혈전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西部地區에서는 安義방면에서 '진동리'를 공격한 적이 '마산''진해'를 위협하였으나 이미 언급한 바와같이 해병대의 맹격에 공세는 돈좌되었다.

 

또한 그 후 UN군의 일익 치열해지는 저항으로 정면에서는 그들의 의도대로 '마산', '진해' '부산'에 침입하기 곤란함을 개닫고 거의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는 측면, 統營으로 병력을 돌려 見乃梁海峽(300m)을 건너 巨濟島를 점령함으로써 '마산'항과 '진해'항을 봉쇄할 것을 기도하였다. 사실 이렇게 되면 '마산''진해'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적의 사정거리내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적의 기도에 대비하기 위하여 해군에서는 해병대를 '통영'방면으로 파견하게 되어 다시 역전의 金聖恩부대가 또 이곳의 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2) 해병대의 상륙공격태세

815일 미명을 기하여 적, 인민군 제7사단 소속부대인 370명이 固城으로부터 統營으로 향하고 그 선두가 '통영시'북방 약 3km지점인 '통영반도'로 통하는 가장 좁은 지대인 轅門(원문)고개에 진입하였다. 이때 '원문'고개를 방어 중이던 경찰군 약 100명은 필사적인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우세한 화력지원하에 공격해 오는 적을 저지할 수 없었다.

 

치열한 교전끝에 야간이 되자 경찰군은 중과부적으로 '통영'을 포기하고 선박에 의하여 閑山島로 철수하였다. 적은 이 틈을 이용하여 81701:00'통영'시내에 침입하였다. '통영'시내에 침입한 적은 그 후소북대 300명과 합세하여 '통영'의 연해를 경비 중이던 해군소속 901정 및 302정과 교전 중에 있었다.

 

이와같은 형세하에 81617:00시 해군총참모장은 해병대 金聖恩부대를 즉시 巨濟島의 서해안에 상륙케 하여 '통영'으로부터 '거제도'에 침입하려는 적을 격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해병대는 이날 즉시 비상소집으로 출동준비를 완료하고 전장병을 512FS 平澤號에 승선케 하는 동시에 보급물자를 적재완료하고 81622:00시 통제부사령장관 및 해군사관학교장이하 다수의 장병의 환송리에 목적지를 향하여 용약 출동하였다.

 

해병대가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단독상륙전을 수행하는 것은 이 작전이 최초이므로 장병의 사기는 자못 충천하였으며 또한 임무의 중대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해병대의 출동부대를 탑재한 선단은 81703:00'통영'반도 동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紙島의 동북에 도착하여 선영을 감추고 정찰대를 소선박으로 '거제도' 서해안 見乃梁 및 이와 대치되어 있는 統營半島의 북동단 長項里에 상륙시켜 적정을 수색하게 하였다.

 

1707:00시 정찰대의 귀대보고에 의하면 적은 長坪里 見乃梁방면에 출현하지 않았으며 '통영'에 침입한 적 병력은 주력 약 350명과 후속부대 250명을 합하여 약 600명으로 추산되었으며 박격포 및 기타 중화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적정을 입수한 金聖恩 대령은 곧 중대장회의를 소집하고 작전을 토의하였다.

 

이때 부대장은 '거제도'를 방어함에 있어 소수병력으로서 길다란 '거제도'의 서해안을 방어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통영'반도에 상륙하여 일부 병력을 轅門고개에 진출시켜 적의 후속부대를 저지하는 한편 주력으로서 '통영'시내에 침입한 적을 섬멸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하여 다음과 같이 타전하고 紙島의 동해안에서 해상을 경계하면서 작전명령을 기다렸다.

 

"統營에 침입한 적은 완전 1개 대대로 추산되며 '통영'반도로부터 '거제도'에 상륙할 기도가 농후하니 '거제도'의 서해안을 방어하는 것보다 오히려 '통영'에 상륙하여 적을 섬멸하고 '원문'고개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함이 양책이라 생각되므로 '통영'공격을 감행함이 如何한가?"

 

이리하여 해상경계를 하면서 회신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81712:00'통영'해상을 초계하고 있던 砲艦 703의 함장 李成浩 중령은 '통영'방면의 적정에 대하여 "적은 '통영'해안선 일대를 비롯하여 '통영'의 북방고지에 배치되고 있으며 특히 '통영'의 동방고지인 每日峰에는 완강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내왔다.

 

金聖恩부대장도 자신의 작전복안을 703艇長에게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였다. 81717:00시 해군총참모장으로부터 '통영'부근에 있는 703, 901, 512, 302, 307, FS 平澤號를 해병대 金聖恩부대장이 통합지휘하고 '통영'공격을 감행하라는 요지의 작명이 하달되었다.

 

이제 공격부대에 남은 문제는 '통영'에 상륙하되 먼저 어느 지점에 상륙하여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Key Point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金聖恩부대장은 여러가지 복안을 수립하여 보았으나 결국 전병력을 '거제도''견내양'대안인 長坪里에 상륙시키기로 결심하고, 상륙 후 일부 병력을 '원문'고개로 진출시켜 적의 후속부대를 저지하고 주력으로서 '통영'시내에 침입한 적을 섬멸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같이 하여 81717:00시 각대에 행동할 것을 지시하렸다.

 

(3) 上陸作戰

金聖恩부대는 長坪里에 상륙하여 '통영'시내에 침입한 적을 공격하고 일부 병력은 '원문'고개로 진출하여 '고성'방면으로부터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기 위하여 부대장은 다음과 같이 작명을 하달하였다.

 

2중대는 우선 '장평리'에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하며 주력부대의 상륙작전

을 엄호하고 목표 #1을 점령할 것이며

3중대는 상륙 즉시 목표 #7을 점령하고 제2중대와의 면밀한 협조하레 적에

대한 정찰을 실시한다.

중화기중대는 제2중대 및 제3중대의 공격을 지원할 것이며

7중대는 예비대로서 '장평리'에 위치한다.

 

이와같은 작전계획에 따라 각대는 81718:00시를 기하여 제2중대부터 상륙을 개시하였다. 이미 정찰대의 정찰결과로 '장평리'부두는 수심이 얕아서 함선을 접근시키기 곤란하였음으로 발동선 2척에 분승하여 상륙하였다. 무혈상륙한 제2중대는 상륙 즉시 제1교두보선까지 진출하였으나 적정은 발견치 못하였다.

 

81719:00시 계속하여 제3중대, 7중대, 중화기중대, 및 본부중대의 순서로 무혈상륙을 완료하였다. 19:30시까지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제2중대와 제3중대가 각각 목표 #1, 7, 6을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자 우군 포함 703을 비롯한 掃海艇 302, 307'통영'남해안 일대를 포격하였고 상륙용주정 512FS 平澤號는 급거 남하하여 우군 함정과 함께 '통영'에 함포사격을 실시하였다.

 

 

 

 

이때 적은 해병대가 '통영'항구 정면에 상륙할 것으로 판단하고 야간에 고지에 배치된 병력을 철수하여 '통영'남해안 일대에 집결시키고 해안선으로 배치를 변경하였던 것이다. 공격을 개시한 제2중대와 제3중대는 각각 목표 #1, 6, 7을 접적없이 점령하였다. 이같이 상륙 및 내륙진출에 성공한 것은 지휘관의 정확하고 면밀한 적정판단으로 상륙지점의 선택이 적절하였기 때문이었다.

 

상륙부대의 내륙으로의 진출에 따라 해군함정 901'원문'고개 서방 내에깊숙히 침투하여 '통영'시내로 침입하려는 적의 후속부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고성'에서 '원문'고개로 통하는 도로를 포격하였다. 이같이 해군 함정의 포화를 '통영'시내에 집중하면서 17일 밤을 새우고 81805:30시를 기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2중대는 07:30시 목표 #4, 5를 점령한 후 '원문'고개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제3중대는 목표 #8, 7중대는 목표 #9, #10에 각각 진출하여 이를 점령하였으며 본부를 每日峰(148고지)북방 1km지점인 東大里부근에 설치하였다.

 

7중대가 '매일봉' 정상에 도착하였을 때 적 약 100명이 산정밑 100m지점에서 산정을 향하여 기어올라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적은 해병대보다 먼저 '매일봉'을 점령하려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던 것이다. 해병대가 먼저 '매일봉'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적은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때 제7중대는 호기를 포착하고 일제히 맹열한 사격을 가하였다.

 

81807:40시 태양은 아군의 배후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이 휘황하게 비치는 햇빛으로 인하여 적은 눈이 부셔 사격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위치한 곳에는 수목이 없었고 또한 이용할만한 지형지물은 전혀 없는 草原地였다.

아침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뚜렷하게 보이는 적을 하나도 놓지지 않고 제7중대 장병들은 총열이 달아오도록 맹사격을 가하였다. 적은 불의의 공격을 받자 일단 그 자리에 정지, 산개했으나 해병들의 정확한 사격은 적의 반수를 사살하였다.

 

적은 해병들의 사격 때문에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저히 每日峰을 점령할 수 없음을 깨닫고 분산, 방향을 돌려 貞梁里방면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해병들은 도주하는 적을 포착하여 계속 사격을 가하니 적은 지리멸열되어 도주할 방향조차 못찾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매일봉' 서쪽사면에는 적의 시체가 유기된채 피로 덮히고 또 덮혀 있었다.

 

이때 적, 인민군 대대장과 작전참모는 혼자만이라도 살려고 2명의 사병을 대동하고 쏘련제 찦차에 박격포 2문과 120mm포를 끌고 '원문'고개 북방으로 도주하고 있엇다. 이를 포착한 제2중대는 즉시 추격하여 적 4명 전부를 사살하고 포를 위시한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였다.

 

공격부대의 지원을 담당한 중화기중대 박격포반은 '정양리'일대를 포격하여 도주하는 적에게 명중탄을 집중시켰으며 계속하여 '통영'방면에 있는 178고지의 적을 포격하였다. 해상에서는 703이 지상부대를 지원하여 '정양리'방면으로 패주하는 적의 퇴로에 대하여 직격탄을 퍼부었다. 이리하여 '정양리'와 그 남방의 해안선일대는 회염에 휩싸였다.

 

 

계속 [1] ~ [7]까지 있음.

資料: 海兵戰鬪史(海兵隊司令部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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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海兵隊6.25 動亂 參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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