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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말이 너무 길거나 짧다고 느껴질 때

Marine Kim 2021. 5. 25. 22:46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56] 상대의 말이 너무 길거나 짧다고 느껴질 때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 2021.05.25 00:00

 

 

 

 

외계인이 지구인을 보면 먹고 자고 그리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종족으로 묘사할 거란 우스개를 들었다. 우린 정보 교환을 위한 수단으로 소통을 활용하지만 때론 소통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소통은 외로움을 이기고 사회적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실제 따뜻한 소통은 몸과 마음의 건강 그리고 장수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서비스 기업에서 흔히 발생하는 민원 중 하나가 불충분한 설명이다. 달리 말하면 만족할 만큼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반대로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선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고객이 어렵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만 대화 길이의 불만족을 경험하는 것일까.

최근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시행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린 일상의 소통에서도 대화의 길이에서 불만족을 경험한다. 한 주에도 여러 번 대화를 나누는 지인과의 대화에 대해 ‘소통이 내가 원하는 때에 끝나느냐'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세 명 중 두 명은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고 했고, 나머지 한 명은 부족했다고 답했다.

지인이 아니라 처음 만난 사람을 대상으로 대화를 나누도록 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특히 상대방이 대화를 그만두고 싶은지 대부분 알지 못했고, 소통에 대한 욕구에서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소통 기술이 부족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일상적으로 상대방은 그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는 더 하고 있거나, 나는 그만 듣고 싶은데 상대방은 더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우선 각자 대화 욕구 또는 목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은 가볍게 인사하고 싶은데 상대방은 자신의 의견을 설득하거나 외로움을 위로받고 싶다면 기대하는 대화의 길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소통을 끝낼 때 서로 불편하거나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이유는 상호 의사 전달을 통한 협조(coordination)의 문제다. 내가 소통을 더 하고 싶은지 아니면 마치고 싶은지 정확히 소통하는 것이 관계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정확히 소통하지 않다 보니, 서로의 마음을 몰라 양쪽 모두 대화의 양을 불만족스럽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좋은 소통이 보약이라면 불만족스러운 소통은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를 준다. 대화가 더 필요한지, 아니면 오늘은 이 정도로 대화를 마치기 원하는지 먼저 묻는 것이 소통에서 상대방에 대한 큰 배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읽어주는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