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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한 대로 1년만에 빚 2억원 청산, 매출 80억원 '트럭장사꾼' 배성기

Marine Kim 2016. 11. 15. 22:32

트럭 한 대로 1년만에 빚 2억원 청산, 매출 80억원 '트럭장사꾼' 배성기

  • 글 jobsN 최슬기 인턴
  • 입력 : 2016.11.15 09:25

트럭과일장사⟶빚 2억 청산
'국가대표 과일촌' 물류센터⟶연매출 80억
책 '국가대표 트럭장사꾼' 3000권 넘게 팔려

“가난하게 태어나는 건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늙는 건 죄다”

'국가대표 과일촌' 대표 배성기(42)씨 좌우명이다. 자칭 '트럭장사꾼'이다. 중고트럭 한 대로 과일을 팔기 시작해, 연매출 80억원 농산물물류센터의 주인이 됐다.

2011년 서울 강남역 앞에 작은 과일가게를 열었다. 강남역에 홍수가 난 해다. 침수는 면했다. 대신 가게 앞으로 피해복구 공사가 시작됐다. 손님이 끊기고 적자가 났다. 남은 건 빚 2억원과 트럭 한 대.

트럭에 과일을 싣고 서울 곳곳을 누볐다. 트럭에서 하루 1시간씩 쪽잠을 자며 과일을 팔았다. 뛰어난 장사수완으로 1년 만에 빚을 갚았다. 현재 서울·경기에 가게 6곳, 물류센터 1곳이 있다.

사업에 실패하고 벼랑 끝에 몰린 아빠들을 돕는다. 트럭장사노하우를 알려주고 재기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트럭장사꾼이 배 대표를 만났다.

경기도 광명 '국가대표 과일촌' 물류센터 1호를 오픈한 배성기씨 / 잡아라잡

◇처음 오픈한 과일가게 망해⋯ 빚더미 올라

-처음부터 장사 하셨나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기아자동차 생산관리팀에 입사했습니다. 비행기에 관심이 생겨 아시아나 카고팀으로 이직했어요.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때 서른살이었는데, 회사에 젊음을 바친 40~50대 아빠들이 해고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회사 안믿고 장사 하기로 했죠. '밑바닥부터 배워야한다'는 생각에 ‘총각네 야채가게’를 찾아갔어요. 월급이 30만원도 안됐지만 열심히 배웠어요."

-과일 장사는 언제 시작했나요?
"2011년 드디어 제 과일 가게를 차렸어요. 10년 넘게 장사를 배웠으니 자신감이 넘쳤죠. 그런데 오픈한지 한달 만에 홍수가 나서, 포크레인이 가게 앞을 가로막았어요. 손님이 뜸해지더니 망해버렸죠. 가게, 집 모두 날리고 빚 2억원과 트럭 한 대만 남았습니다. 와이프와 두 자식 데리고 부모님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했나요?
"가족과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아 한강으로 갔어요. 며칠이고 있을 작정이었죠. 3일때 되던 날, 교각에 쓰인 낙서가 눈에 들어왔어요. ‘당신의 인생은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러시아 시의 한 구절이었어요. 그때부터 실패를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죽기 살기로 다시 해보자' 결심했죠. 오기가 생긴 거예요. 남은 트럭 한 대로 과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배성기 제공

◇‘죽기로’결심하고 트럭장사 시작

-잘 되던가요?
"처음 한 달은 거의 한 푼도 못 벌었습니다. 다른 트럭장사의 텃세, 단속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았어요. 점원 시절을 포함하면 나름 꽤 오래 과일을 팔았는데, 세계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절망적이었겠어요?
"그때 처음 자살을 생각했어요. 트럭 몰고 160km 넘는 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를 달렸죠. 그런데 중앙분리대를 받으려는 순간 걱정이 스쳤어요. '나는 살고 차만 부서지면 어쩌지', '죽어도 보험료가 안 나오면 가족들은 어쩌지' 차를 세우고 못 팔고 남아 썩은 참외를 마구 먹었어요. '내일도 못 팔면 내가 다 먹어야한다' 울면서 다짐했죠. '죽기 살기'가 아닌 '죽기'로 다짐하고 장사하기로 했죠."

-어떤 변화를 줬나요?
"나만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물건은 깐 만큼, 떠든 만큼, 맛 보여준 만큼 팔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파100단을 팔고 싶으면 300단을 깔아요. 그럼 남을까봐 어떻게든 팔려고 더 노력합니다. 적어도 200단은 팔게 돼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계속 인사했어요. 트럭장사의 주 고객층은 아줌마에요. 친절하게 다가가면 호의적으로 상품에 관심을 보이죠. 그럼 과일을 잘라 나눠드립니다. 아줌마들은 맛을 봐야 믿고 사거든요. 그리고 과일을 직접 골라가도록 해요. 바구니에 담아 팔면 믿음이 떨어지거든요."

아침마당에 출연한 배성기씨와 가족 / 배성기 제공
-하루 일상이 어땠나요?
"낮부터 저녁까지 지하철역 앞에서 장사했어요. 지하철이 끊기기 시작하는 밤 11시쯤 동대문상가로 옮겨 갔습니다. 남은 참외를 몽땅 캐리어에 넣어요. 동대문에서 일하는 상인인척 연기하며 경호원 눈을 피해 시장으로 들어가죠. 그렇게 상인들에게 참외를 팝니다. 새벽 4시가 되면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물건을 떼서 단체버스를 타고 돌아가요. 버스 출발 직전 올라 타 과일 맛 보여주며 팔았습니다. 내려가는 동안 깎아드시라고 과도를 함께 줬더니 잘 팔렸어요."

-그때 퇴근 했나요?
"아뇨. 새벽 6시에 기사식당, '24시간 감자탕'이 모여 있는 서울 응암·신길동으로 갔어요. 새벽에 쉬고 있는 식당 이모들에게 과일을 팔았죠. 그 장사가 끝나면 트럭에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지하철역 앞에서 장사 했어요. 그렇게 1년을 지내니 빚을 다 갚더라구요."

-1년 만에 빚 2억원을 갚았다구요?
"네. 버는 대로 통장에 넣었어요. 잔액 확인은 하지 않았죠. 너무 큰 액수라 확인하면 지칠 것 같았거든요. 어느 날 확인해보니 통장에 30만원이 있었어요. 돈이 바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남아 있을리 없는 잔액이 있는 거예요. 다 갚았다는 뜻이죠. 그 날 와이프와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사무실 입구에 붙어있는 좌우명 / 배성기 제공

◇“트럭장사는 3년 이상하면 안돼요”

거짓말 같은 반등은 빚 갚은 후에도 지속됐다. 곧 사업을 확장해 서울·경기에 가게를 냈다. 현재 가게 6곳, 물류센터 1곳이 있다. 연 매출액이 80억원에 이르고, 경험을 담아 펴낸 책 '국가대표 트럭장사꾼'은 3000부 이상 팔렸다. 유명세를 얻어 TV 출연도 했다.

-지금도 트럭장사를 하나요?
"기본적으로 가게 6곳에 집중합니다. 가끔 재고 쌓일 때만 트럭 끌고 나가요. 물류센터를 통해 도매도 하고 있습니다. 생산지나 직판장에서 물건을 떼서 트럭장사하는 분들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팔아요."

-'트럭장사사관학교'는 뭔가요?
"트럭장사를 준비하는 아빠들에게 장사노하우를 알려주는 거예요. 트럭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트럭으로 돈 벌어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트럭장사는 마지막 직업이 아니라 꿈을 향한 수단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주로 무엇을 강조합니까?
"'슬리퍼 신지 말 것, 깨끗하게 씻고 깔끔하게 입을 것, 밝게 웃을 것'을 강조합니다. 트럭에서 물건 파는 것도 서비스니까요."

'트럭장사관학교' 회식 모습 / 배성기 제공
-앞으로 계획은요?
"전국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리고 싶습니다. 유통과정을 대폭 줄여 농부와 장사꾼 모두 이익 보게 하고 싶어요. 꾸준히 트럭장사하는 아빠들을 도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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