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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아닌데 욕 같은 신조어 '창렬하다' 탄생 비화 문현웅 기자

Marine Kim 2017. 2. 3. 14:35

디테일추적>'창렬 도시락'과 '혜자 도시락'의 차이는 무엇

  • 입력 : 2017.02.03 11:56 | 수정 : 2017.02.03 12:35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흔히 가격 대 성능비(가성비)가 영 좋지 못한 상품을 ‘창렬하다’고 표현한다. 가수 김창렬(44)에서 유래한 용어로, 그를 광고모델 삼아 출시한 식품이 매우 창렬한 퀄리티를 보이자 네티즌이 그의 이름을 과대포장의 대명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헬조선에는 비싼 주제에 내용물은 졸렬한 상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창렬’은 금세 유행을 탔다.

당사자 입장에선 이런 상황이 유쾌할 리 없다. 때문에 김씨는 부실한 상품을 팔아 자신을 가성비 쓰레기의 대명사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유로 식품업체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5부(부장 이흥권)는 1심 판결에서 김씨에게 패소를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식품 질이나 양은 둘째치고 라도, 애초에 사람들이 김씨를 별로 좋게 보지 않고 있으니 ‘창렬’에 부정적 의미가 생긴 면도 있다”는 이유였다.

기왕 사법기관에서도 ‘창렬’에 대해 ‘생길 만하니 생긴 표현이다’는 해석을 내렸으니 이 기회에 ‘창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혹여나 장차 2심 판결에서 판결이 뒤집혀 원고 승소가 되면 ‘창렬’을 거론하기 어려워지니 빨리 알아보자.

◇창렬 비긴즈

‘창렬’ 표현의 원흉은 지난 2009년 세븐일레븐에서 자체 개발 브랜드(PB) 상품으로 출시한 ‘김창렬의 포장마차’다. 사진으로 상태를 확인해 보자. 참고로 순대볶음 가격은 4900원이었다.
/인터넷 캡쳐
이어지는 제품은 편육과 족발 세트다. 가격은 7000원이었다.
/인터넷 캡쳐
한국에서 짬밥이 어느 정도 쌓인 분들이라면 익히 알겠지만, 사실 우리나라 웬만한 편의점 음식 수준이 대개 이 정도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하필이면 이걸 샀다가 제대로 빡친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야갤) 유저가 제품 사진을 찍어 ‘애미창렬.JPG’ 게시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창렬’이 유행을 탔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의외로 ‘창렬’ 표현은 김창렬의 포장마차 출시 전에도 쓰였다. 한때 인터넷 최악의 개막장 집단으로 불렸던 디시인사이드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코갤)에서였다.

지난 2007년 한창 미쳐 돌아가던 코갤에서는 거의 모든 인사와 대화가 패륜성 욕설(패드립)이었다. 덕분에 고소전이 불붙으며 다수 갤러리 유저가 변호사들 ATM으로 전락하자, 판사님이 무서워진 패드리퍼들은 점차 직접적인 욕을 피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코갤에서 흔히 쓰이던 욕설인 ‘니애미창년’이 ‘니애미창렬’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오래지 않아 코갤이 멸망하자 코갤 유저들은 다른 갤러리와 커뮤니티로 호적을 옮겼다. 이후 야갤에서 불현듯 ‘애미창렬’이라는 표현이 튀어나오자,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 숨어 있던 코갤 유민들은 열렬히 호응을 보냈다. 본인들이 매일같이 남들 안부 물을 때 쓰던 말이니. 그렇게 ‘창렬’은 쉽사리 인터넷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사실 야갤에서 ‘애미창렬’을 쓴 유저도 코갤 실향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여하간 ‘창렬’은 욕이 아닌데도 왠지 욕 같은데다 꽤나 입에 찰지게 붙는 표현인지라 일반인에게도 금세 퍼졌다. 실제로 연예인 이수근이 선전한 제품이나 야구선수 양준혁 이름을 내건 상품도 비슷한 시기에 팔리며 가성비가 나쁘다 욕을 먹었지만, 이들 이름을 쓴 ‘니미수근’이나 ‘준혁푸드’ 등의 표현은 어감이 좋지 않아 금방 잊혀졌다.

◇‘창렬경제’의 시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한창 ‘질소과자’로 대표되는 과대포장 상품이 판을 치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창렬경제’, ‘대창렬시대’ 등 갖가지 응용표현이 쏟아져 나왔다. 이 와중에 디시인사이드는 ‘창렬밀도’까지 개발했다. 공식은 \/g로, \은 가격(원화), g은 과자의 중량(그램)이다. 다음은 디시인사이드에서 제시한 창렬밀도 기준과 이에 따른 과자 분석이다.
/인터넷 캡쳐
‘김창렬의 포장마차’ 브랜드는 지난 2015년 계약이 만료되며 사라졌지만, ‘창렬’ 표현은 아직도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최근엔 식품뿐 아니라 가격에 비해 품질이 나쁜 상품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장됐다. 덕분에 명사형 ‘창렬’, 형용사형 ‘창렬스럽다·창렬하다’, 서술어 형태 ‘창렬이다’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창렬’의 아치 에너미 ‘혜자’

창렬의 안티테제, 즉 반대 포지션에 있는 용어는 ‘혜자’다. 연예인 김혜자의 이름을 빌린 ‘김혜자 도시락’이 편의점 음식치고 상당히 준수한 퀄리 티를 보여서다. 이 때문에 ‘창렬’에 대항해 ‘갓혜자’, ‘마더 혜레사’ 등의 표현이 탄생했다.

여담이지만 김창렬의 포장마차 중에도 ‘혜자’가 있긴 있다. 김씨 브랜드 상품 중 하나에서 기준치의 1.8배를 초과하는 대장균이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해당 상품은 다른 건 몰라도 대장균 하나는 혜자 못지않게 풍부하다는 의미로 ‘바이오혜자드’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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