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 미해병 제1사단과 "장진호(長津湖) 전투"[4]

Marine Kim 2021. 1. 2. 10:33

Marine story

 

미해병 제1사단과 "장진호(長津湖) 전투"[4]

 

"F중대의 혈전"

 

세계의 2대동기 전투의 하나인 "장진호(長津湖 Chosin Reservoir)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미 해병 제1사단제7연대제2대대 F중대가 중공군의 대병력의 포위 속에서의 혈투상황을 소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음.

 

19501126122일 간 함흥북방 55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장진호(長津湖)'지역일대의 영하 -30(C)가 되는 혹한의 산악지대(1,500~1,600m의 눈 덮힌 산악지형)에서 미 해병 제1사단제7연대제2대대 F중대가 65일 간 중공군(59사단 예하부대)에 포위되어 감행된 혈투상황.

 

 

Capt. William E. Barber

 

 

1. 상황

 

중공군 제9병단 예하 8개 사단(6만 명)'장진호' 서북지역 일대에서 한만 국경선으로 진출 중에 있는 미 해병 제1사단을 포착, 섬멸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었다. 미 해병 제1사단은 112510:00, 해병 제5 7연대를 전방에, 해병 제1연대를 예비대로 하여 공격을 개시하여 '유담리'에서 '용림동'을 향하여 진출 중에 있었다.

 

2. 작전경과

 

1128'윌리엄 바버' 대위가 지휘하는 제F중대는 미 해병 제1사단의 주력 2개 연대가 적과 대치하고 있는 '유담리'와 예비연대 및 지원부대가 위치하고 있는 '하갈우리'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덕동고개'에 대한 방어임무를 부여받고 눈덮힌 준령에 방어 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바버 '대위는 이날 오후, 중대원들이 계속된 전투와 혹한으로 지쳐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임무의 중요성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중대원들을 독려하여 진지 구축 작업을 감행하였으며, 야음이 깔릴 무렵에는 각기 구축한 개인호에 들어가 적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적은 예상대로 야음을 이용하여 연대 규모 병력으로 공격해왔으나 중대원들이 용전분투한 결과 적은 450여 구의 시체를 유기한 채 물러갔다. 29일 아침, '바버' 대위가 전투 결과 보고와 함께 공중보급을 요청하였을 때, 대대장으로부터 중대는 즉시 현 위치에서 철수하여 남쪽으로 철수하게 될 대대와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바버' 대위가 판단하기에는 만일 그의 중대가 철수하게 된다면 '유담리'에 있는 2개 연대는 완전히 고립될 뿐만 아니라 '하갈우리'의 예비 연대 및 지원부대 역시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에 따라 '바버' 대위는 명령의 변경을 건의하기로 하고 무전교신을 시도했으나 교신이 되질 않았다. 그는 후일 명령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한이 있더라도 '유담리'에 있는 8,000명의 병력이 철수를 완료할 때까지 '덕동고개'를 사수하기로 독단 결심했다.

 

그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유담리'2개 연대는 적의 강력한 압력에 봉착하였으며 '덕동고개'의 중대는 완전히 적의 포위 속에 빠졌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바버' 대위도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나 들것에 실린 채로 진지를 순회하면서 중대원들을 격려하였다. 이러한 '바버' 대위의 강인한 의지와 용기에 감동한 중대원들은 영웅적인 용기를 발휘하여 우세한 적의 포위망 속에서도 6일 간이나 '덕동 통로'를 확보하였다.

 

122일 해병 제7연대제1대대가 '유담리'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천신만고 끝에 F중대와의 연결에 성공하였을 때 220명의 중대원 중 겨우 87명만이 피로 물든 '덕동고개'를 걸어나왔다. 바버 대위는 철수명령은 지키지 않았으나 사단 전체작전에 기여한 전공이 인정되어 후일 미국 최고훈장(Congressional Medal of Honor)을 받았다.

 

 

3. 교훈

 

중대장 '바버' 대위는 대대명령에는 위반했지만 그가 직접 당면한 상황을 볼 때 '유담리'에 남아있는 2개 연대의 우군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판단하고 독단으로 유일한 철수로의 확보를 계속했다. 직접 대치하고 있는 지휘관은 그가 수령한 명령이 명령하달 후의 상황 변동 때문에 시행이 어렵고 또한 명령의 수정건의를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적절한 독단행동을 취해야 한다.

 

 

(1) '덕동고개' 점령

 

'유담리'-'하갈우리'를 연결하는 도로는 암석으로 된 단 하나뿐인 일차선도로이며 대략 중간지점에 '덕동고개'라는 중요한 요충지가 있고 노면은 동결된 상태였다. 이 도로는 '유담리'2개 연대 전투단으로서는 유일한 보급로였다. 미 해병 제1사단은 이 도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덕동고개'와 그 서북방 약 3km 떨어진 무명고지에 보병 1개 중대(F중대)를 배치하여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11271130, '하갈우리'의 제7연대제2대대 F중대장('바아버' 대위)'덕동고개'로 전진하여 진지를 점령하고 주보급로를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F중대장은 각 소대장을 동반하고 현지에 미리 가서 지형을 정찰하고 '덕동산'의 서남방 약 1km 떨어진 '신흥리' 도로 북쪽고지에 진지를 선정했다. 저녁 때 중대주력이 도착하여 바로 진지구축을 시작, 21시경에 진지편성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 무렵, 중공군 제79 및 제89사단은 '유담리'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고, 59사단은 '유담리''덕동고개' 사이의 도로를 차단하고 F중대진지에 접근하고 있었다. '덕동고개' 서북쪽 무명고지는 제7연대제1대대 C중대(1개 소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C중대진지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은 280230분부터 시작되었다.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서 날이 밝았을 때는 이미 C중대는 전사 15, 부상 44명이나 되었고 완전히 포위되어 1419고지의 중공군으로부터 감제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무전기도 파괴되어 코르세아전투기의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60밀리박격포탄도 다 소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자 28일 저녁때 제7연대제1대대가 도착하여 C중대를 구출했다. 그러나 이 대대는 F중대 위치까지는 도착하지 못했다. F중대도 280230분경부터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수일간 포위되어 분전하면서 고개를 확보하고 있었다.

 

 

(2) '덕동고개'부근의 전투

 

'유담리'-'하갈우리' 간의 최대 요충지인 '덕동고개'27일 저녁부터 미 해병 제7연대제2대대 F중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중대장 'E. 바아버' 대위는 117일에 중대장으로 임명되어 겨우 20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는 19403월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공정부대의 병사로 2년 간 근무한 후 태평양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194311월 소위로 임관했다.

 

 

그 후 '유황도'에서의 전공으로 '은성훈장(Siver Star Medal)을 받은, 전투경험을 통해서 단련된 베트란 장교였다.'바아버' 중대장은 '덕동고개'의 진지점령'시 천막설치를 뒤로 미루고, 즉시 진지구축을 개시하도록 했다. 복장이나 무기 손질에 대해서는 특히 엄격하고 꼼꼼했다.이때 중대에는 제2대대 화기중대의 중기관총반과 81mm 박격포반이 배속되어 있어서 그 병력은 240명이었다. '하갈우리'에 있는 미 해병 제11포병연대제3대대의 H포대(105mm 곡사포)가 이 중대를 직접 지원하도록 되어 있었다.

 

F중대는 고지 정상에서 북쪽을 향해서 1개 소대(2개 분대를 1,·1개 분대를 2), 서쪽과 동쪽방향으로 각각 1개 소대(각각 3개 분대 병력)를 배치하여 '아치'형의 중대진지를 편성했다. '아치'의 다리 부분은 반사면이었는데, 이 부분은 중대본부와 3.5"로케트포반으로 연결됐고, 그 아래 도로 가까운 곳에 중대 지휘소와 60mm 81mm 박격포를 배치시켰다.

81mm박격포는 북서쪽의 암산에 대해서 시험사격을 실시했다. 그러나 '하갈우리'105mm포는 '유담리'에서 '하갈우리'로 가는 제1자동차수송대대의 차량종대가 08시가 좀 지날 때까지 엔진 소리를 내며 고갯길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하여 시사를 하지 못했다.

 

이때 하늘은 맑고 달빛은 밝게 비쳤으며 기온은 영하-29도였다. 이 무렵 중공군 제 79 ·892개 사단이 '유담리'에 대해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59사단은 '유담리''덕동고개' 사이의 도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F중대진지로 육박해 오고 있었고 1개 연대는 소리도 없이 이미 F중대의 진지를 포위하고 있었다.

 

F중대 3소대장은 01시가 좀 지나 진지를 순찰했는데, 돌처럼 얼어붙은 진지에서 수하하는 자가 없었다. 곧 분대장을 집합시켜 호통을 쳤다. "너희들은 왜 멍청히 잠만 자고 있느냐, 눈을 크게 뜨고 경계하라." 그러나 분대장들이 병사들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며 "정신 차려 경계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02시경, 소대장이 다시 순찰을 했을 때는 각 진지에서 활기있게 수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무렵 '유담리'방향에서도 격렬한 공방전의 총포성이 울리고 있었다.

 

계속

 

*자료출처: "장진호 전투(덕동고개 전투)": 한국전쟁 전투사(12)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미 해병 제1사단과 "장진호(長津湖) 전투" by oldmarine (사진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