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이제 야당이 대통령·여당 福 누릴 때 됐다
세대교체 바람, ‘老壯靑 협력 방식 변화’란 뜻
밝혀야 重鎭 壁 넘어 야당 당대표, 센터포워드 아니라 2002년 월드컵 홍명보 선수 역할
입력 2021.05.29 03:20
오랜만에 새 소식이 헌 소식을 밀어냈다. 서른여섯 살 이준석씨가 국민의힘 당대표 예비경선에서 1위를 했다는 뉴스가 홍장표·김오수라는 우중충한 이름을 덮어버렸다. 이 뉴스는 새바람 새 물결의 힘과 정치에도 반전(反轉)의 재미가 필요하다는 오래된 진실을 새삼 일깨웠다. 국민의힘 예비경선은 당원과 일반 국민 상대 여론조사 결과를 5 대 5로 합산(合算)해 순위를 정한다. 이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 낙선 경력만 있는 0선(選)이다. 이런 그가 4선·5선의 중진들을 일반 국민 상대 조사에서 큰 차이로 누르고 당원 상대 조사에선 박빙(薄氷)의 승부를 겨뤘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28일 오후 대구 수성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아 야구팬 가족과 사진을 찍고 있다. /김동환기자
당대표 선거 본선은 당원과 일반 국민 조사의 합산 비율(比率)이 7 대 3으로 달라진다. 당심(黨心)이 민심(民心)보다 훨씬 크게 작용한다. 국민의힘 당원의 72% 가까이가 50대 이상 나이다. 영남 당원이 전체 당원의 55%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더불어호남당’이라면 국민의힘은 ‘영남의 힘’이자 ‘나이 지긋한 이들의 당’이다. ‘이준석 효과’는 이런 정당에서 서른여섯의 젊은 피가 지역 연고(緣故)를 앞세우지 않고 거둔 승리라는 데서 발생했다. 그의 등장으로 국민의힘은 잠시나마 나이는 젊어지고 지역색은 옅어지고 정치색은 실용·온건·중도의 빛을 머금게 됐다.
28일 국민의힘 당대표 예비경선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전 의원, 이준석 전 최고위원, 조경태 의원, 주호영 의원, 홍문표 의원(사진왼쪽부터 가나다순) 5명이 본경선 진출자로 정해졌다./국회사진기자단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의 55%가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다. 차도(車道)를 누비던 아스팔트 보수가 인도(人道)로 걸어 올라와 젊어지고 옅어지고 실용의 길을 뚫는 변신을 통해 비호감(非好感)의 벽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당대표 본선 결과는 당원들이 이 같은 전략적 효과에 고개를 끄덕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년 3월 대선의 키워드는 북진(北進)이다. 여야 어느 쪽이 남쪽 본거지를 벗어나 수도권을 차지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2000년대에 들어서 각종 선거의 수도권 득표 추세는 보수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오세훈 후보의 시장 당선은 오래전에 잃었던 땅을 되찾은 실지(失地) 회복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전략도 보나 마나 수도권 탈환(奪還)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야당 복(福) 하나는 타고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야당이 못났었다는 말이다. 바람의 방향이 달라졌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복(福)·여당 복을 누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준석 효과는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낡고 늙고 누추한 586 정당, 지치지도 않고 끼리끼리 돌려가며 해먹는 부족(部族) 정당, 단물은 자기네가 짜먹고 빚은 후손들에게 떠넘기는 염치없는 정당,·· 특권을 대대손손 물려주려는 봉건(封建) 정당, 과학을 거부하는 반(反)과학 정당이란 뚜렷한 도장을 찍었다.
정권은 집없는 사람과 자영업자를 벌거벗겨 벌판으로 내몬 소득 주도 성장 설계자를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임명하고 여러 범법자(犯法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물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태세다. 야당의 대통령 복·여당 복이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국민의힘은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은 갈라 치고 흩어 놓는 배제(排除)의 정치에 지쳤다. 포용(包容)의 정치에 목마르다. 대한민국 역사를 지우는 단절(斷切)의 정치 대신 계승할 건 계승하고 수리할 건 수리하는 연속의 정치가 보고 싶다. 정치에서 앙갚음은 돌고 도는 윤회(輪廻)의 업(業)에 제 발로 올라타는 짓이다. 복수하는 대통령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 순수 혈통(血統)을 따지고 출신 성분을 감별하는 정당은 전제정치 국가의 정당밖에 없다. 순수(純粹)가 아니라 다양성이 힘 있는 보수를 만든다. 국민의 힘은 대동(大同)과 동행(同行)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 야당의 당대표는 강슛을 날리는 센터포워드 역할이 아니다. 상대 수비가 빈 곳에 공을 넣어주는 미드필더나 리베로의 역할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1974년과 1998년 월드컵 정상에 올랐을 때 프란츠 베켄바워와 지네딘 지단이 해낸 그런 역할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홍명보 선수도 그랬다. 훌륭한 투수는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공을 잘 꽂는 투수가 아니라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를 넘나들며 타자(打者)를 유인할 줄 아는 투수라고 한다. 류현진 선수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타고난 자질에 경기의 흐름을 읽고 탈 줄 아는 노련미가 보태져야 한다.
정치권 세대교체는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노장청(老壯靑)의 협력과 역할 분담 방식의 변화다. 서른여섯의 이준석 후보가 세대교체의 의미를 더 깊이 읽고 중진의 벽(壁)을 넘어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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