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58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8]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8] 16. 해사 11기생들의 집단 항명 1956년 여름, 해군 사관학교 2학년 생도(11기생)들이 육상훈련을 목적으로 해병학교에 4주간 의탁교육 온 일이 있었다. 이 육상훈련은 매년 정기적으로 해군 사관학교 생도들에게 해병학교 사관후보생들에게 실시하는 교육내용과 별 차이없이 해병학교에서 해병대 교관에 의해 실시하는 해군 사관학교의 연례행사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때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해병학교 사관후보생 중대장인 내가 책임 맡았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환경, 해군 사관학교 에 비해 해병학교의 열악한 환경(노고화 된 병사, 내무실, 침구 및 식당과 식사등) 에 대하여 해병학교에 입교 초부터 이들의 불편한 심기를 이들의 얼굴에 그대로 표현하고 있음을 나..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7]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7] 약 1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그 노 장군은 군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운 일도 있고 힘드는 일도 있다면서 나의 저서에서 누누히 언급한 편가르기의 폐습에 대해서도 자기가 경험했던 사례들을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즉 나의 저서 중의 주장이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자기는 그것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은 이미 지난 일들이고 이 대령의 그 해병대를 위해서 애쓴 그 모든 노력에 대한 좋은 결실을 보지 못해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에 와서 어떻게 돌이킬 수도 없고 우리도 앞으로 얼마나 살게 될런지 알 수 없으니 그 아쉬웠던 일들을 다 잊어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매일 매일 살아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나를 위하는 고마운 ..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6]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6] 나는 김 대위에게 이 어쳐구니 없는, 군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연에 대해서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자기가 영어를 잘 못하니 그들이 자기를 깔보고 그러는 것이라" 했다. 나는 이 말 한마디에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그들을 집합시켜서 그러지 말라 주의를 주었는데 전부 하나같이 묵묵 무응답이었다. 그때 나는 그들이 해병대의 기풍을 잘 몰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주의를 주고 함께 Club에 가서 환영Party를 열려했엇는데 그들의 태도에서 나는 무슨 멸시를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리고 해병대식으로 이들을 좀 손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김 대위에게, 당사자이기에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김 대위도 나의 생각에 ..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5]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5] 해병대는 이런 점에 대해서 전혀 무감각했고 무지했었다. 그것은 그때 해병대는 독불장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일수록 해병대는 내부적인 단결력과 국가에 대한 봉사정신을 대내외에 과시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우물안의 개구리같이 내편, 네편이나 따지는 근시안적인 행태 속에 있음으로서 정권내부의 이상한 기류의 흐름에 전혀 무감각하였고 또한 무지하였다. 이것이 무엇보다 아쉬운 점이다. 이 때의 해병대 수뇌부는 정권내부에서 흐르고 있던 이상 기류(?)도 감지못하고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사령관의 중임이 기쁘고 감사해서 그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계략도 모르고 설마? 하고 있다가 한방 얻어 맞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과연 사심 없이 사령관을 올바르게 보필했는지 나는..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4]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4] 과연 해병대는 국민을 위한 해병대가 아니었단 말인가? 사실 해병대도 호언장담만 하고 있지말았어야 했다. 더욱 겸손히 국민을 위한 해병대임을 보여 줬어야 했다. 이런 정책 수행은 지휘부의 몫이이며 또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우리는 "어디 갈때와 돌아 올때의 마음이 달라진다"는 속담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무슨 사연이건, 또 누구이건! 인원수는 쉽게 가감할 수 있지만 두동강이 난 해병대의 전통은 다시 접목시킨다 해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의 고위 군사정책 기획자들은 모르고 있었거나 또는 관심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떤 불안감으로 인하여 해병대를 갑자기 해체시켰을 것으로 밖에 생각 안된다. 박 정권의..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3]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3] 그것은 그의 중임이 박 정권이 해병대를 해체시키기 위한 예비 단계였음이 해병대의 해체일을 기준할 때 확실 해 졌기 때문이다. 그 해 7월 초 박 정권은 10월10일부로 해병대를 국방 예산의 절감을 이유로 해체시킨다고 발표하고 해병대 사령관(이병문 대장)의 퇴임과 동시에 해병대를 해체시켰다. 이때 해병대 사령관의 중임 기간은 1년으로 되어 있었으나 박 정권은 그를 3개월 10일만에 퇴임시켰다. 이것은 애초부터 중임시킬 계획이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심사숙고 해 보면 해병대는 그때 정부의 연막전술에 속아 넘어간 거나 다름이 없다. 즉 파월 청룡부대의 초대 부대장인 이봉출 장군의 필연적인 해병대 사령관 취임을 저지할 명분도 없고 하여..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2]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2] 정치인들은 진급을 청탁했고 보직도 관여함으로서 해병대의 인사정책에 여러가지로 부작용을 이르키기도 했다. 그들의 이런 관여는 국가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것이 아니고 그들의 어떤 개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태에 지나지 않았고 이런 그들의 행태는 해병대의 전력을 내부적으로 잠식하고 있었으나 해병대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 수록 한국의 정치인들에 대하여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로 인하여 사령관은 내부적인 원성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만일 이봉출 장군이 해병대 사령관이 되었으면 해병대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내 정치에 일대 변혁을 이르켰는지도 알 수 없..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1] 해병대에서 전투 중 육박전을 한 지휘관은 해간 3기생밖에 없었지 않았는가? 수 많은 해간 3기생 소대장, 중대장들이 누구의 명령으로 그들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희생시켰단 말인가? 해간 3기생출신들을 오늘에 와서도 그렇게 옛적에 생각하고 있던 것같은 그런 온순하고 고분 고분했던 그런 자기 부하처럼 웃읍게 봐서는 안된다. 선배는 선배로서의 위엄과 체통을 지킬줄 알아야 하며 또한 겸손의 미덕도 보일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런 면을 보고 듣기를 원하고 있음을 역대 해병대 사령관출신 장군들이 알고 있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11. 해병대 해체의 먼 원인(遠因) 해병대는 특히 육군과는 과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0]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0] 강복구 대령이 누구인가? 해병대 출신이라면 강복구 대령이 누구인지 모르는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없는 해병대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대표적인 해병대 장교가 아니었던가? 해병대 사령관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해병은 없었다. 그런 그가 주변 인물의 잘못된 보좌로 인하여 곤경에 빠져있을 때 강복구, 강복구하면서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같은 시대의 사령관출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방관만 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해병 정신도, 그들이 우리에게 전수한 해병 정신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있음도 생각하게 됬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구호 속에서만 살았단 말인가? 해병 정신은 그렇게 나약한 자기 위주의 정신..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9]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9] 8. 해병대의 해체에 대하여 누가 책임 질 것인가? 해병대 사령부와 그 직할부대가 해체됨에 따라 많은 고급장교들이 전역하게 되었다. 전역대상은 대부분 한국전쟁 참전 장교들이다. 특히 해간 3기생과 7기생 그리고 9기생들이 위주인 것 같았다. 해간 3기생 중 장군은 7명인데 그들 중에는 하늘의 별도 있지만 편가르기에 편승해서 별을 단 똥별도 있고 개인의 심복이 되어서 별을 단 더러운 별도 있다. 이런 풍조는 해병대를 위해서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외는 전부 고참 대령들이다. 최소한 3기생은 20여 명은 족히 될 것이고 해간 7기생까지 포함하면 대략 50-60명의 대령급 장교들이 전역될 듯 했다. 이로 인하여 큰 슬픔에 잠겨있는 예하부대에 사령부(인사참모..

해병정신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