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정신 58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8]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8] 6. 내가 전임 사령관의 중임운동을 했다? 어느날 사령관실에서 사령관이 나에게 직설적으로 "이 대령은 전임 사령관의 중임운동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정색을 하면서 말한 일이 있었다. 나의 동기생이 사령관에게 그렇게 중상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동기생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그 동기생에게만 했으니 다른 누구도 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기생은 나와의 오랜 친교와 그의 성격으로 보아 나를 그렇게 중상할 교활한 인간은 아닌데 사령관은 나에 대한 어떤 선입감으로, 어떤 선입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선입감으로 인하여 벌써부터 나를 곡해하고 있었던 듯 했다. 나의 동기생과의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전에 사령관실에서 정 사..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7]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7] "이상한 소문?" 나는 기가 막혔다. 이 이상한 소문은 틀림없이 보안부대장이 아니면 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순간 생각되었다. 그것은 이 두사람이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장군쯤 되면 입이 무거워야하고 사려도 깊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들은 추측컨대 "너 잘 걸렸다"고 속으로 무척 좋아 했을 것이고 그 결과로 아직 확인도 안된 내용을 소문으로 퍼뜨린 것이다. 정말 소갈머리가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이 왜곡된 보안부대의 보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중에 회의에 늦게 참석한 관리참모부장이 "내가 자세히 알아보니 그 보고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으니 거기에 대한 것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나..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6]

Marine story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6] 장군쯤 되면 비록 내가 타군 장교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관심과 아량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나는 놀라면서도 역시 대육군이라 다르구나 하고 나는 그 육군 장군을 보면서 부럽게 생각했다. "나도 이왕이면 육군으로 갈걸"하고 순간 생각하기도 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해병대 장군은 어떤가? 그때까지만 해도 해병대에서는 이런 특수전 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특수전과정을 마치고 해병대 예하부대를 순회하면서 교육(Counter Guerilla Operation)했으나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결국 나는 해병대의 필요에 의해서 군사유학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해병대에 배정된 Quota 때문에, 그 Quota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부랴부랴 군..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5]

Marine story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5] 4. 부대지휘의 장애요소 나는 이번 보직이 해병대에서의 마지막 보직으로 생각하고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예상치도 안했던 나의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었는 방해자가 나타난 것이다. 아니 미리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 그들은 사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방해자는 지구보안대였다. 나는 부대장 취임 후 상당기간 지방 유지들을 만나지 않고 부대업무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구보안대에서 부대장이 매일 지방 유지들과 술만 마시고 제대로 근무도 하지않고 있다고 엉뚱한 보고를 보안부대 본부에 하여 해병대 사령부에서 장군을 단장으로 한 20명으로 구성된 "전투준비 태세 검열단"까지..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4]

Marine story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4] 육지로 나온 후 부 신부는 한강성심병원 9층에 그의 사무실을 차렸다. 병원의 이사장과 각별히 친한 사이일 뿐 아니라 병원확장에 적극 참여하여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후원금도 지원받게 해서 오늘의 한강성심병원을 이룩한 대들보같은 역할을 했지만 병원 이사장과의 불화로, 여기에 자세히 기재할 수 없지만, 결국 한강성심병원 이사장과 결별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들에게 이용당한 셈이다. 그러나 부 신부는 자신과 부양가족을 위하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는 1974년 봄 지금 국내에서 성업 중인 D.H.L.(문서송달회사)를 '홍콩.에 위치하고 있는 D.H.L.극동지국과 손잡고 문서송달 사업을 시작했다. 최초 ..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3]

Marine story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3] 그것은 내편이 아니면 네편, 즉 적이다라는 당시의 해병대 저류에 오래 전부터 흐르고 있던 부대의 단결을 파괴하는 편가르기의 엉뚱한 논리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사실을 그때부터 오랜 후에 해병대 사령관 출신, 내가 평소에 존경하고 있던 "도솔산 전투" 때의 상관이었던 노 장군으로부터 직접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도 그것 때문에 해병대 사령관 시절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나에게 실토했었다. 신임 사령관(이병문 대장)과는 한국 전쟁 중 내가 연대본부 작전보좌관(중위)을 하고 있을 때 신임 사령관은 제3대대 작전장교(대위)였던 관계로 업무상 한두번 마찰은 있었겠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지냈었다. 그 후 나는 지..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2]

Marine story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2] 사령관은 한국전쟁 중 해병 제1연대가 서부전선, '장단, 사천강'지역에서 중공군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우일선대대인 제3대대 작전장교(대위)였었고 나는 그때 연대작전보좌관(중위)이었기 때문에 내딴에는 충분히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사령관은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 그에게는 과거는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는 듯 보였다. 사령관의 의외의 고성은 내가 "왜 저는 연대장을 못하는 겁니까 "하고 따진데에 대한 사령관의 대답이었다. 이어 나는 "저는 누구보다 연대장을 우수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오늘까지의 저의 경력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누구하고 무엇을 하던, 경쟁해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해병정신 2020.11.01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

Marine story 해병대 해체: 해병대 비운의 날(1973년10월10일) [1] 해병대의 해체와 우리의 생각 1. 개 요 이 글은 필자(이근식 대령, 해병 도서부대장)가 1973년 1월 5일부로 해병 도서경비부대장으로 취임한 이후 부대지휘 중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고 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용과 필자가 해병대 근무 중(23년 간) 필자에게 일어났던 여러 정황에 대한 내용과 그에 대한 필자의 입장, 그리고 그에 대한 심경 등을 솔직하게 기술한 내용이다. 또한 생각할 수록 분통을 참을 수 없었고 슬펐던 우리의 모군인 해병대의 돌연한 해체에 따른 30여 년 전 그 당시의 우리들의 울분과 심경 등을 사실 그대로를 솔직하게 오늘의 현역 해병들과 이미 현역 근무를 마치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해병가족들에..

해병정신 2020.11.01